[전원 속 예술가들 .48] 도예가 연봉상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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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0-15   |  발행일 2013-10-15 제24면   |  수정 2013-10-15
“은은하면서도 때론 강렬한… 달항아리 두 매력에 빠져들다”

1962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경성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2001년 대덕문화전당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2차례 개인전을 더 개최했다. 한국·일본교류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획전 ‘차문화 특별전’ 등 단체전에 다수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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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흙을 구입해 벽돌을 찍어서 만들었다는 장작가마 앞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던 중 활짝 웃고 있는 연봉상 도예가.

도자기 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를 만드는 도예가들도 힘들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 커피의 폭발적 수요 급증으로 인한 한국 전통차시장의 위축 등 다양한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많은 도예가들은 도자기 시장이 어려워지는 이유의 하나로 전통을 답습하고 현대적 감각을 살리지 못하는 도예인들의 실험적인 노력 부족도 꼽는다. 전통의 맥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인들의 의식구조, 생활 등을 감안한 작품도 만들어야 도자기 시장이 활성화된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실험적 시도, 나만의 작품 만들다

이런 점에서 도예가 연봉상은 지역 도예계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 중 한명이다. 실험적 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란 평을 받기 때문이다. 흔히 작가마다 잘 하는 분야가 있다. 이 작가는 백자, 저 작가는 달항아리 등으로 작가를 대표하는 도예장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봉상 작가하면 어떤 작품이라는 것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장르에 한정되기보다는 꾸준히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다보니 그를 생각하면 요즘은 또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되기도 한다.

작가 스스로도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싶지만 기존 도예작품을 답습, 재연하고 싶지는 않다. 이보다는 이 시대에 맞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맞는 도자기는 무엇일까. 예전의 그릇도 될 수 있고, 대중이 좋아하는 그릇도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시대에 필요한 도자기를 만들려 한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그도 모른다. 다만 스스로가 이에 대해 고민하면서 실험적인 작품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용진요’를 운영 중인 그는 도예 대가의 제자로 한 작업을 이어가기보다는 자신이 끊임없이 개발한 작업을 선보여왔는데, 이렇다보니 판매에는 신경을 덜 써온 게 사실이다.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일반 차인들에게 먹혀들지 못한 점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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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한켠의 차실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활짝 웃고 있는 그의 등 뒤로 다양한 감각의 작품들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실 옆에 있는 차실은 그야말로 다양한 감각의 도자기들이 가득하다.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모양이 색다른 작품을 비롯해 유약의 빛깔, 도자기 표면의 질감 등에서 일반 도자기들과는 차별화된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그는 20년 전에 이미 검은색 천목사발을 만들고 10여년 전부터는 유약을 사용하지 않은 검은색의 현천(玄天)사발도 제작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유약을 이중으로 시유하는 기법, 전통옹기 기법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향토를 유약에 섞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기법 등을 개발해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달항아리의 매력에 푹 빠져 2년 가까이 달항아리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이 달항아리도 그만의 색깔과 형태가 있어 역시 연봉상 작품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2년 전, 달항아리 작업에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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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미를 붙여 만들고 있다는 달항아리를 앞에 두고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 작가는 팔공산 자락에 작업실을 짓고 작업한 지 20년 넘었다. 그 사이 두번 작업실을 옮겼으며, 세번째 작업실은 현재 대구 동구 신용동에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작업실을 몇차례 옮기면서 그는 작업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 흙 등으로 직접 유약을 만들었다.

부산 경성대에서 도예공부를 하던 그는 대학 재학 중에 집이 대구로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곳에서 도예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대학 졸업 후 다른 도예공방에서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팔공산 부인사 밑에 첫 작업실을 얻어 독립했다. 그곳에는 포도나무가 많았는데 포도나무를 이용한 유약을 만들어 사용했다. 현재 작업실은 원래 복숭아밭이었다. 그렇다보니 아직도 작업실 주변에는 복숭아나무가 많다. 이 작업실에서 그는 복숭아를 이용한 유약으로 작업을 많이 한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유약은 또 있다. 바로 콩으로 만든 것이다. 콩을 태운 재로 유약을 만들면 부드러운 느낌의 흰색을 만들 수 있다. 이 색이 좋아 그는 청도에서 엄청난 양의 콩나무를 사들여 유약을 만든다. 요즘 이 유약이 특히 요긴하게 쓰이는 데가 바로 달항아리다.

2년 전 우연히 지인 한 분이 달항아리를 만들어달라고 주문을 해 만들었는데, 그 형태와 색상에 그가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달항아리는 여성스러움과 남성다움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게 매력적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섬세함이 살아있는 달항아리는 그 색상까지도 너무나 아름답지요.”

현재 한국에서 많은 도예가들이 달항아리를 만들고 있는데, 그가 만드는 달항아리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작가는 “남성적인 달항아리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달항아리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기운찬 남성의 어깨를 떠올리게 만들지요.”

그러면서도 그의 달항아리는 부드러운 흰색이 여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콩재로 유약을 만들면 깊이있는 흰색이 만들어집니다. 잡티나 잡색이 없으면서도 부드러움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은은한 아름다움을 주지요.”

그는 이처럼 끊임없는 실험적 시도를 이끌어내는 요인 중 하나로 자연 속에 작업실을 둔 것을 꼽았다. 도예가는 전통장작가마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자연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가마를 설치하는 공간도 있어야 하고, 가마를 땔 때 나오는 연기 때문에 시내에서 작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팔공산 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했지만 그는 주변의 재료를 이용해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작업실을 산에 두다보니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특히 아이들의 학업이 문제였다. 학교 때문에 오랫동안 시내에 있는 집과 팔공산의 작업실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했던 그는 2005년 현재의 작업실을 만들면서 가족들을 모두 팔공산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 당시 두 자녀가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늘 아내가 아이들을 시내 학교에 등하교를 시켜주었는데, 아내와 아이들 모두에게 미안했다. 지금은 둘 다 대학생인데 아직도 아내가 등하교를 시킨다.


묵언, 가마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다

“딸애가 자기 별명이 ‘촌년’이라고 하더군요. 촌에서 산다는 의미도 있지만 팔공산까지 들어오려면 무조건 밤 9시쯤 되면 친구들과 함께 했던 자리를 털고 나와야 되니 마치 촌사람처럼 산다는 것이지요.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고, 때로는 제가 하는 일을 옆에서 도와도 주는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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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굽는 데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 가마를 땔 때 묵언한다.

연 작가는 가마 불을 땔 때 묵언을 하는 작가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가마에서 도자기가 구워지는 동안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꼭 필요한 말은 종이에 글을 써서 전한다.

“묵언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도자기 구울때 저의 정성을 하나로 모은다는 의미이지요. 말을 하면 정신이 분산되니까요. 초창기 때 자신감에 넘쳐 불을 때면서 말을 많이 하다가 도자기 굽는데 완전히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후로는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의미에서 묵언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 제작에만 매진하느라 작품 발표에는 소홀한 감이 없지않았던 그가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 준비도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작품 제작에 더욱 마음이 바쁘다.

“2004년 경북대 박물관 초대개인전을 연 후 쉬었습니다. 내년 수성아트피아에서 4번째 개인전을 엽니다. 오랜만에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준다고 하니 더욱 새로워진 모습, 완성도 있는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부담감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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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상 도예가가 그의 팔공산 작업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그는 현재의 작업실이 앉아있는 자리가 명당이라 했다. 집 앞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도 너무나 아름답다고도 했다. 이런 좋은 조건에서 작업하는데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자신감도 보였다. 하지만 판단은 관람객들이 할 일이다.

그는 “그저 열심히 할 뿐”이라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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