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신의 한 수·천번의 굿나잇

  • 윤용섭
  • |
  • 입력 2014-07-04   |  발행일 2014-07-04 제42면   |  수정 2014-07-04

신의 한 수 (장르:액션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바둑과 액션 누아르가 만나 통렬한 복수 그리다

20140704

‘신의 한 수’는 바둑을 소재로 한 통렬한 복수극이다. 가장 심오하고 정적인 두뇌 게임과 액션 누아르의 만남. 좀처럼 어우러지기 힘든 소재를 조화롭게 엮은 ‘신의 한 수’는 한국 액션영화의 스케일을 한 뼘 더 넓히고 싶었던 ‘퀵’(2011)의 조범구 감독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프로 바둑기사 태석(정우성)은 내기 바둑판에서 살수(이범수)의 음모에 의해 형을 잃는다. 살수는 내기 바둑판 최고의 꾼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유린하고 이를 즐기는 냉혈인이다. 형의 살인 누명까지 쓰고 교도소에 복역중인 태석은 와신상담하며 바둑은 물론, 무술까지 갈고닦는다. 출소하자마자 태석은 살수와의 대결을 위해 전국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모은다. 맹인바둑의 고수 주님(안성기)을 비롯해, 외팔이 기술자 허목수(안길강), 바람잡이 꽁수(김인권) 등이 태석의 조력자로 뭉친다. 반면, 이들에 맞서는 살수팀은 도하아시안 게임 바둑 금메달리스트 출신 배꼽(이시영)과 승부조작 전문브로커 양실장(최진혁)이 버티고 있다. 태석은 살수 주변 인물을 하나씩 제거해 가면서 큰 판을 짜기 위한 포석을 다진다.

바둑판의 크기는 비록 45㎝에 불과하지만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만큼 무궁무진한 드라마가 이 안에 담겨있다. 대마불사, 정석, 포석, 장고, 사활 등 일상에서 종종 사용되는 용어들은 모두 바둑에서 유래됐다. 그래서일까. 인생을 바둑에 비유한 이 영화의 접근 방식은 신선했고, 바둑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겠다는 점 역시 유의미한 포석으로 읽혀진다. 관건은 정신과 육체가 절정에 이른 바둑 기사들의 싸움을 얼마나 제대로 보여줄지다. 두뇌 싸움은 기본이고, 화끈한 액션과 내기 바둑의 스릴과 서스펜스까지 녹여낸 진짜 싸움 말이다.

이는 ‘신의 한 수’가 기획 단계부터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범구 감독은 바둑의 정신적인 영역과 액션의 육체적 다툼은 ‘사활을 걸었다’는 점에서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판단했고, 이 과정을 마치 무협영화의 그것처럼 리드미컬하게 펼쳐간다. 형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주인공이 힘든 상황에 놓이지만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실력을 쌓아가고, 마침내 복수를 이루게 되는 과정은 결과적으로 익숙하지만 공감하기 쉬운 서사로 다가왔다. 특히 비슷한 형식의 장르물인 ‘타짜’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타짜’가 케이퍼 무비의 성격이 짙었다면 ‘신의 한 수’는 바둑을 빗댄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그 과정을 강렬한 액션활극으로 버무려냈다는 점에서 나름 신선하고 의미있는 시도다.

최근 한국영화의 트렌드라 할 수 있는 마초적 남자들의 땀 냄새 나는 액션은 ‘신의 한 수’에서 정점을 이뤘다는 느낌이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정우성이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액션을 잘 하는 배우는 정우성”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맨몸 액션이 돋보인 냉동창고에서의 얼음 액션과 살수와의 슈트 액션 등 정우성의 새로운 발견이라 할 만큼 인상적인 액션연기를 선사한다. ‘짝패’ 이후 9년 만에 악역으로 돌아온 이범수도 주목할 만하다. “뱀의 이미지가 떠올려졌다”는 그의 말처럼 예리한 칼날처럼 파고드는 냉혈한 살수의 모습은 악역 연기도 남다른 아우라가 있어야 함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다.

그만큼 관전포인트가 많은 ‘신의 한 수’는 바둑을 모르는 관객이라도 별 부담감 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울의 곳곳을 스토리가 묻어나는 공간으로 활용한 점도 흥미롭다. 살수의 아지트로 사용된 노량진 수산시장, 태석의 복수 공간이 된 장위동 흑백기원, 그리고 주님의 생활터전인 관철동 뒷골목 등은 실제 우리가 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활력이 느껴진다. 덕분에 5년의 프리프로덕션이 소요된 ‘신의 한 수’는 어떤 작품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순도 100%의 창작품임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을 만큼 조범구 감독에게도, 이를 마주하게 될 관객에게도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완성됐다.


천번의 굿나잇 (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생과 사 넘나드는 종군 여기자 ‘일이냐 가족이냐’

20140704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인 레베카(줄리엣 비노쉬)는 분쟁지역 전문 사진기자다. 그녀는 자살폭탄 테러를 시도하려는 한 무슬림 여인을 취재하던 중 차량폭발로 커다란 부상을 입게 된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레베카. 하지만 매번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가족은 불안하고 힘들다.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에 반했던 남편 마커스(니콜라이 코스터 왈도)마저 이제 불안해하는 두 딸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그녀가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레베카 역시 가족을 잃지 않기 위해 일을 그만두려 한다. 그러던 중 케냐 난민캠프 촬영의뢰가 들어온다. 처음에는 관심을 갖지 않던 그녀는 이에 흥미를 느낀 큰 딸의 요청으로 함께 그 곳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 발생하고, 직업의식이 발동된 레베카는 딸을 남겨놓은 채 또 다시 위험한 현장으로 달려간다.

생과 사를 오가는 분쟁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종군기자들은 직업적 의무와 윤리 사이에서 종종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천번의 굿나잇’은 분쟁지역의 아픔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모습뿐 아니라,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마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에 주목한다. 레베카는 늘 죽음의 공포와 마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상에서 회복된 레베카를 보며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했느냐”고 묻는 남편의 질문에도 그녀는 덤덤히 “본능 같은 것”이라고 답한다.

‘천번의 굿나잇’은 이 영화를 연출한 에릭 포페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출생의 에릭 포페는 로이터 사진 기자로 80년대 당시 전쟁터에서 활동했고, 이후 광고 사진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영화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주인공을 여성으로 치환해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남들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었던 종군기자로서 품었던 사명감을 그녀의 입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사실감이 더해진 이야기는 현실적인 고민과 숙제를 안긴다. 2차대전 이후 최대 희생자인 5백만명이 바로 분쟁 지역에서 죽었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의 위태로운 상황을 알리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레베카는 그래서 평범하게 사는 게 더욱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레베카의 그런 남다른 사명감은 아내와 엄마로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가족의 바람과 종종 파열음을 일으킨다. 그녀는 가족의 이해를 바라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스스로에게 구원과도 같았던 사진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공포와 고통을 느끼고 반응하길 바랄 뿐이다. 이는 에릭 포페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녀에게 현명하고 옳은 선택일까. 영화는 이에 대한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극 중 인물들의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포착하는 것에 천착한 카메라는 전쟁터와 평화로운 가정을 오가며 그들의 정서와 심리, 갈등과 아픔을 애잔한 스토리로 담아간다. 그녀의 직업이 종군기자라는 점을 배제하고 본다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뇌하는 레베카의 모습은 일하는 현대 여성의 삶을 투영하고 대변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아직도 빈번하게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분쟁지역의 실상을 실제에 가깝게 담고 싶었던 감독은 케냐,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그리고 카불 등 실제 장소의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영화의 사실감을 더했다. 특히 이 영화가 주목되는 이유는 레베카 역으로 분한 줄리엣 비노쉬의 빛나는 감성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에릭 포페 역시 “그녀와의 작업은 한마디로 완벽 그 자체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만큼 그녀는 탁월한 연기력과 치밀한 분석력으로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또 한번 확장시켰다. ‘천번의 굿나잇’은 에릭 포페 감독이 종군기자 시절 느꼈던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들을 향한 아름답고 숭고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