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과 전쟁’보다 더 자극적인 종편채널 가족프로그램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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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5   |  발행일 2014-08-25 제22면   |  수정 2014-08-25
가족간의 갈등 부각에 초점 “이러다 큰싸움날 판”
드라마 ‘사랑과 전쟁’보다 더 자극적인 종편채널 가족프로그램
채널A 웰컴 투 시월드
드라마 ‘사랑과 전쟁’보다 더 자극적인 종편채널 가족프로그램
JTBC 화끈한 가족
드라마 ‘사랑과 전쟁’보다 더 자극적인 종편채널 가족프로그램
JTBC 고부스캔들


‘화나지만 끈끈한 가족의 엽기발랄한 갈등과 유쾌한 화해(?).’ 가족의 화해를 표방했지만 갈등만을 부각시킨 작금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가족 관련 프로그램을 정의하자면 그렇다. 종편은 출범 이후 리얼에 초점을 맞춘 가족의 생활 모습과 고부간의 토론을 설정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대거 등장시켰다. 하지만 지상파에 비해 방송심의 제약에서 자유롭다보니 드라마 ‘사랑과 전쟁’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는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이하 여성민우회)는 최근 대표적인 종편 4개의 프로그램(JTBC ‘고부 스캔들’ ‘화끈한 가족’, 채널A의 ‘웰컴투시월드’ ‘집나간 가족’)을 모니터했고, 이를 토대로 이들 프로그램이 보여준 갈등과 차별을 살펴봤다.

전근대적 성역할에 천착
고부간의 입장차이 전달
문제 해결에는 도움안돼

방송심의 제약 거의 없어
지상파보다 수위 높은 내용
가족 화합 기획 취지 실종
오히려 ‘트러블메이커’변질

#가족 안에서의 역할만 부각되는 여성 출연자

‘웰컴투 시월드’를 제외한 3개 프로그램은 스타 가족의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설정으로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스타의 가정을 배경으로 일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스튜디오에서 토론형식으로 진행되는 ‘웰컴투 시월드’ 역시 스타 가족의 가정사, 특히 여성의 가정 내 역학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다를 게 없다.

문제는 이들 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여성만의 가사와 육아, 내조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기획의도에서도 드러내고 있듯 스타 며느리거나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전문인으로서 연예인의 직업적인 모습은 모두 등한시한 채, 전근대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만 천착한다. 엄마와 아내,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지를 먼저 따지고, 며느리의 직업은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게 하는 좋은 구실이거나 ‘부업’정도로 다룰 뿐이다.

상대적으로 이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남성 출연자는 가사노동에서 자유로운 것은 물론이고, 가정 안과 밖에서의 모습이 비교적 균형적으로 그려졌다. 최근 종영한 ‘집나간 가족’의 배우 김학철과 아들 편의 내용이 그 예다. 늦둥이 아들과의 갈등과 소통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아빠로서의 역할과 배우로서의 역할을 병행하는 것의 어려움과 한계를 적절히 토로했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엄마의 가치 재생산

이들 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있는 가족의 갈등은 주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달라진 역할과 그에 따라 재편성되는 역학관계에서 기인한다. 시어머니는 이전과 달리 며느리에게 물려줄 ‘곳간 열쇠’가 없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듯하고 남편 역시 여성 상위시대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들의 박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보니 전원주와 같은 대표 시어머니를 통해서 옛 정취와 효의 미덕을 강조하며 신세대 며느리의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시어머니 세대는 며느리 세대와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일과 가정 안에서 완벽해지길 요구받으며 슈퍼우먼이 되어야만 하는 며느리 세대도 시어머니 세대 못지않은 고충을 겪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근대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시어머니 세대가 여성의 미덕을 강조하며 며느리 세대를 탓하는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건 가족의 문제, 더 나아가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게 지난 5월15일 방송된 ‘웰컴투 시월드’다. 이 날 방송에서는 기존 고정 출연자 며느리 대신 한의사, 박사, 변호사 며느리를 출연시켜 이른바 ‘가방끈 긴 며느리’ 논쟁을 본격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잘난’ 며느리들이 기세등등하게 자신의 일과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초반 몇 분에 불과했다. “내 며느리가 만약 공부하겠다면 나는 반대” “내 아들 기죽을까봐 (아들보다) 모자란 며느리가 더 좋다”는 시어머니들의 발언과 패널로 출연한 변호사 박지훈의 “남편 입장에서 똑똑한 여자는 피곤하다” 등의 발언까지 이어지자, 이야기의 흐름은 가정에 소홀한 그녀들의 잘못으로 귀결됐다. 이 과정에서 진행자의 의견 조정이나 며느리 측의 입장 표명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여성 간,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

이제 여성은 높아지는 이혼율과 가족 해체, 부모 부양, 고부갈등, 경제적인 문제까지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버렸다. 주목할 건 가족 화합 유도라는 미명 아래 기획한 이들 프로그램이 애초의 기획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이러한 사회문제들을 여성간의 문제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에 함께 등장하는 남편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고부갈등에 무관심하거나, 무관심한 척 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고부갈등에서 남성 요인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이렇게 남성은 외면한 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대명제 아래, 시어머니들은 당신도 시집살이로 어려운 시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했으니 너도 해라”는 요구를 지금의 며느리에게 하고 있다. 부당한 성차별과 자신의 인권에 대해서 눈뜬 여성들에게 가부장제의 수혜세력인 남성이 여성의 변화에 대하여 말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들 출연자 가족이 국민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평균적이지 않다는 것. 그들은 평균적인 국민의 경제력을 훨씬 상회하는 연예인 가족이다. 시청자에게 비쳐지는 모습 역시 돈 많은 집 여자가 돈 한 푼 벌지 않으면서 살림도 제대로 하지 않는 무책임한 인간으로만 간주될 뿐이다. 때문에 이들 며느리가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기보다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입장에서 공감하게 된다. 연예인 가족이라는 특성상 시청자들의 왜곡된 수용을 방지하기 위해 더욱 치밀하게 기획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무신경하게 ‘갈등’에만 눈을 맞춰 시청률을 올리자는 안일함의 결과다.

이외에도 리얼 관찰카메라를 표방하고 있지만 설정된 내용이 너무나 뻔한 ‘고부 스캔들’, 자극적인 에피소드에 편승하는 듯한 ‘화끈한 가족’도 갈등만을 부각시키는 모습에서 탈피해야 한다. 여성민우회의 관계자는 “여성의 지위 변화를 두고 벌어지는 성대결, 고부갈등을 이용하여 시청자를 현혹하고 있는 해당 프로그램들은 원래의 기획 취지로 돌아가 각 프로그램이 이 사회, 특히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방송사와 제작진의 절실한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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