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16] 채옥주 전 경북도의원과 이정호 경북도의원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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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1   |  발행일 2014-10-21 제24면   |  수정 2015-03-25
밀어주고 끌어주고…정치무대서 다시 손잡은 ‘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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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옥주 전 경북도의원(오른쪽)이 제자인 이정호 경북도의원과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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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전 의원과 이 의원이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채옥주 전 의원

"초롱한 눈빛·또랑또랑 말투 기억이 선해
道 의정활동도 역시 빨리 익히더군요
이런 똑똑한 제자를 둔 것이
함께 의정활동 하면서 자랑스러웠죠
시골아저씨처럼 무던·넉넉한 성격에
성실하고 통 커 정치인으로 대성할 겁니다”

◆ 이정호 의원

"중학시절 기억 속엔 늘 엄한 담임선생님
다시 만났을 땐 푸근한 어머니처럼 달라져…
뒤에서 표나지 않게 얼마나 저를 챙기는지
진짜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정치인으로서는 제가 선배지만
오히려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 더 많죠”

채옥주 전 경북도의원(70)은 1971년부터 딱 10년간 교직에 몸 담았다. 교사로 부임하던 첫 해에 포항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는데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채 전 의원이 맡았던 이 반의 실장은 이정호라는 학생이었다.

“실장이 아주 똑똑했어요. 처음 교사생활을 하다보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서 시작해야 하는데 똑똑하고 성실한 실장 덕에 담임생활이 수월했지요. 아직도 반짝이는 눈빛과 단정한 옷차림, 또랑또랑한 말투가 기억에 선합니다.”

그 학생이 바로 이정호 현 경북도의원(57)이다. 이 의원의 경우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인 포항을 떠나 서울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듯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까지 그곳에서 하게 되니 자연히 고향을 찾기가 힘들고, 고향에 계신 분들을 만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2006년 채 의원이 경북도의원이 된 뒤 서울에서 열린 한 정치행사에서 스승과 제자는 우연히 만나게 됐다.

이 의원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87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98년 포항시의원이 됐다. 시의원으로 3선을 한 뒤 2010년 경북도의원에 도전, 새롭게 도의원 배지를 달게 됐다.

스승과 제자 모두 정치인이다 보니 행사장에서 자연스럽게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들의 만남은 잦아지게 됐다. 2010년부터 4년간은 도의원으로 의정활동도 같이 했다. 사제가 모두 도의원을 하게 된 것이다.

30년 넘게 세월이 흐른 뒤 스승을 다시 만나게 된 이 의원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학교 다닐 때는 무서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수학을 가르치셨는데, 아이들이 숙제를 안해오면 큰 벌을 받았지요. 떠드는 것도 용서를 안하셨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암독사’였습니다.”

이렇게 웃으며 말하자 채 전 의원이 손사래를 치면서 “그건 말하지 말지. 내가 아무리 엄해도 암독사가 뭐야”라며 “제가 부임하기 전에 ‘독사’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과장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보다 더 독하다며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 의원이 채 전 의원의 말을 이어받는다. “그래서 선생님을 사회에서 다시 만나기 전에 제 기억 속에 있던 선생님은 너무나 엄한 수학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났을 때 선생님이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푸근한 어머니 같았지요. 인상도 변한 것 같았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이 의원은 채 전 의원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아직도 엄한 선생님이 그렇게 자상한 어머니처럼 변한 게 잘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눈빛에서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마치 어머니를 대하듯 정이 넘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기자는 채 전 의원을 “의원님”이라 부르는데 이 의원은 늘 “선생님”이라 불렀다. 의정활동할 때도 의원들 앞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렀느냐”고 이 의원에게 묻자 “한 번 선생님은 평생 선생님이다. 제게는 지금도 중학교 때의 엄한 담임선생님”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사제지간에 의정활동을 하니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하지만 이들은 같이 의정활동을 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채 전 의원은 “행정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출마했을 때 이 의원이 표시 나지 않게 많이 도와줬다. 특히 심적으로 든든함을 느끼게 해줬다. 역시 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채 전 의원은 2010년 선거 때의 에피소드도 하나 이야기해줬다. “그때 이 의원과 제가 같은 선거구에서 출마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지요. 제자와 어떻게 경선을 하나 싶어 제자가 출마하면 그냥 의원 출마를 포기하려 했는데 지역구가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출마해서 당선이 됐지요.”

의정활동 측면에서만 보면 이 의원은 채 전 의원의 선배격이다. 이 의원이 98년 포항시의원부터 시작한 데 비해 채 전 의원은 2010년 경북도의원부터 시작했다. 의정활동으로 보면 10년 이상 대선배이다. 하지만 경북도의원은 채 전 의원이 4년 먼저 시작했다. 채 전 의원이 이 부분에서는 선배다.

“전반적인 의정활동에 대해서는 제자에게 많이 배우면서도 경북도의 의정활동에 있어서는 제자에게 조언도 많이 해줬지요. 학교 다닐 때 똑똑하더니 의정활동을 하는 데도 역시 빨리 익히고 잘 따라하더군요. 이런 똑똑한 제자를 둔 것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자랑스러웠습니다.”

채 전 의원의 제자에 대한 칭찬이 끝나기도 전에 이 의원이 “오히려 내가 선생님께 더 배우는 게 많았다”며 “표시나지 않게 얼마나 제자를 챙기시는지 모른다. 진짜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배려하고 칭찬하는 모습까지 갖추니 제자가 아니라 마치 내 스승 같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아들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의원의 말에 이렇게 화답을 하는 채 전 의원의 제자 자랑은 끝이 날줄 몰랐다. “정치활동을 해보니 제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의원 같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나라가 올바로 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긴 것이 똘똘해 보여 깍쟁이 같은 느낌도 주지만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무던하고 완전히 시골 아저씨처럼 넉넉하지요. 이렇게 대인 관계가 좋고 통이 크니 정치인으로 대성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인연’ 시리즈의 취재를 하기 위해 채 전 의원에게 좋은 인연을 가진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마자 바로 이야기한 사람이 이 의원이었다. 스승의 마음에는 제자가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칭찬하는 스승을 이 의원은 최근 자주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선생님께 좀 더 자주 전화드리고 식사라도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포항에 선생님 제자분들이 공무원, 교사 등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자주 뵈어야 하는데 각자 살기 바쁘다보니….”

인터뷰를 마치고 간단히 식사를 하자고 이 의원이 제안을 했다. 인터뷰 전에 각자 점심을 먹고 바로 인터뷰에 들어가자고 했기 때문에 식사는 전혀 예상을 안했는데 이 의원이 거듭 이야기를 해 중국 요릿집에서 간단한 것을 먹기로 했다.

이 의원이 대구에서 온 기자에게 식사라도 대접해야겠다는 배려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점심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인터뷰하면서 눈치를 챈 때문이었다. 기자는 그냥 듣고 넘어간 이야기를 이 의원은 하나하나 다 챙겨서 새겨 들었다.

“선생님이 샌드위치 드셨다고 하시니 간단히 요기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이가 드실수록 끼니를 잘 챙겨드셔야 하는데, 빵 한 조각 드셔셔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채 전 의원은 “이 의원은 행사장에서 먹고 바로 여기에 왔다며?”라고 제자에게 말한다. 제자는 이 말에 “한 번 더 먹으면 되지요. 그러니 선생님도 식사를 하세요”라고 한다.

서로 간에 극진히 챙기는 모습이 마치 어머니와 자식이 끼니 챙겨 먹이려는 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 사이가 너무 친근해 은근히 샘이 난다”고 기자가 말하자 채 전 의원은 자랑스러운 듯 이렇게 답한다. “부럽지요. 이 의원 같은 제자 때문에 지금도 의원보다는 선생님이라 부를 때가 더 좋지요.”

채 전 의원은 현재 정치판을 떠났지만 여기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한다. 든든한 제자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정치를 잘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은 그 자리를 관두면 금세 잊히기 쉽지만 스승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제자들의 마음에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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