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줌인] 교육청-“지방 교육재정 파탄 날 지경”…정부-“무상급식 줄여서라도” 맞대응

  • 백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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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01 07:29  |  수정 2014-11-01 07:29  |  발행일 2014-11-01 제6면
시교육청 내년 1897억 부담 2년새 600억원 더 늘어나
도교육청 2171억 지출 부담 특별교부금 지원 등
특단의 조치 마련돼야
예산편성 거부 초강수에도 정부 "교육감 권한이자 의무"
학생·학부모에 피해 고스란히
[토요 줌인] 교육청-“지방 교육재정 파탄 날 지경”…정부-“무상급식 줄여서라도” 맞대응

“예산 1천억원을 확보하려면 1억원짜리 사업 1천개를 줄여야 합니다.”

지난달 21일, 이영우 경북도 교육감이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이다. 만 3~5세의 유아 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이른바 정부의 ‘누리과정’ 사업을 둘러싼 논쟁의 여파였다. 일선 시·도 교육청은 예산이 부족하다며 아우성인 가운데,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정상적으로 편성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시행 3년 만에 지방교육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는 정부의 누리과정 사업의 실체와 쟁점을 짚어본다.



◆지방교육 재정 부담 눈덩이

누리과정의 적용 대상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만 3~5세다. 그간 관련법에 따라 유치원 학비는 교육청이, 어린이집 보육료는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해 왔다. 정부는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보육·교육과정을 제공한다는 등의 이유로, 어린이집 보육료 또한 지방교육 재정으로 부담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각 지역 교육청이 부담하는 부분을 늘렸는데, 이 때문에 지역 교육청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지게 된 것이다.

지난해 대구지역의 총 누리과정 예산은 1천727억원에 달했다. 이 중 시교육청이 1천307억원(유치원 861억원 포함)을 부담했다. 대구시가 420억원(만 3·4세 어린이집 소요 예산의 70%)을 지원했다.

올해는 누리과정 전체 예산이 1천831억원으로 늘었고, 대구시의 지원(192억원·3세 어린이집 소요 예산의 70%)은 오히려 더 줄었다.

여기다 내년부터는 시교육청이 모든 어린이집 예산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누리과정 총 예산은 1천897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불과 2년 새 600억원 정도나 부담이 커진 셈이다.

경북도교육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도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으로 △2013년 1천327억원(유치원 871억원·어린이집 456억원) △2014년 1천790억원(유치원 1천130억원·어린이집 660억원)을 부담했다. 내년에는 무려 2천171억원(유치원 1천118억원·어린이집 1천53억원)의 예산을 누리과정에 쏟아부어야 한다.

문제는 누리과정 예산의 근거가 되는 ‘보통교부금’의 세입분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즉, 세입은 한정적인데 지출 부담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어 결국 지방교육 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진후 의원(정의당)이 공개한 ‘2012~2014년 보통교부금 세입과 누리과정 예산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대구시 및 경북도 교육청의 보통교부금 세입분 가운데 누리과정 예산이 차지한 비중은 각각 8.7%와 6.2%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5%와 1.8%의 비율을 감안하면 급증한 셈이다.

각 시·도 교육청은 보통교부금을 통해 △교직원 인건비 △교육과정 운영비 △방과후사업비 △학교시설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의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다른 사업을 축소하거나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교육청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직접적 배경이다.



◆해법 보이지 않아

지난 7일,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나아가 정부 차원의 특단의 조치를 요구했다. 절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21일 진행됐던 시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은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으로 1천9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선 학교에 투자성 경비로 제공할 수 있는 돈은 2천억원에 불과하다. (누리과정 때문에) 전체 교육예산을 맞출 수 없을 정도”라고 항변했다.

이영우 경북도 교육감도 “교원 명퇴예산을 삭감하고, 원어민 보조교사도 없앴지만 역부족이었다. 특별교부금 지원 등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누리과정 운영이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차갑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각 시·도 교육감의 ‘권한이자 의무’라고 맞받아쳤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세수가 부족해져 지방교육 재정이 어렵게 된 건, 각 지역교육청이 재량지출 사업을 급속히 확대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 재정상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재량지출의 구조조정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사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무상급식 재고’를 공개적으로 요청(27일)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무상 급식을 줄여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을 정상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결국 피해는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볼 수밖에 없다. 전체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어느 한 쪽의 사업에 치중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소홀한 부분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교육 복지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교육 당국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누리과정=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공통의 보육·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0~2세 표준보육과정의 연계성을 고려해 ‘신체운동’ ‘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자연탐구’ 등 5개 영역으로 구성됐다. 2012년 3월, 만 5세 누리과정을 시작으로 지난해 3월부터는 3~4세까지 확대됐다. 누리과정을 통해 어린이집, 유치원 구분 없이 동일한 내용을 배우는 것은 물론, 기존 소득하위 70%에만 제공됐던 보육료와 유아학비가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 제공된다. 매달 지원액은 △2013년 22만원 △2014년 24만원 △2015년 27만원 △2016년 30만원 등으로 매년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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