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사로 본 대구경북 여성의 삶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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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16   |  발행일 2015-04-16 제22면   |  수정 2015-04-16
침묵하고 배제됐던 이시대 어머니의 ‘진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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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구의 면방직공장에서 평생을 보낸 김상태 어르신.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파란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치고 들풀처럼 살아온 이 땅의 여성들의 삶을 구술사를 통해 들여다본 책이 나란히 발간됐다. 대구여성가족재단과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대구, 섬유 그리고 여성’과 ‘하고 싶은 말은 태산도 부족이라’가 그것이다. 여성이 직접 지난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두 권의 구술사 책이 조명한 이 시대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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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잠종을 육성해 경북도청으로 납품하던 ‘나방이 공장’ 칠성산업사의 맏며느리 정말분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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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집안에 시집와 평생 잠 한번 제대로 못 잤다고 말하는 심산 김창숙의 자부 손응교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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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비지미골에서 200년 된 투방집을 지키고 살고 있는 김통분 어르신.


◆ 여성구술사의 가치

그동안 역사는 남성 엘리트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노동사나 정치사에서는 남성 중심의 담론이나 역할이 강조되었으며, 독립운동사에서도 여성은 누구 집안의 아내 혹은 며느리의 위상 속에서 다루어졌다. 특히 여성의 높은 문맹률은 개인적인 기록물을 남기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역사와 사회적 중심에 등장하지 못한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시대의 정치 지형 속에서 제대로 발화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여성의 경험은 오랫 동안 역사 속에서 ‘침묵’ 혹은 ‘배제’되어왔다. 여성 스스로 시대의 권력과 남성중심의 지배 구조로부터 소수자로 구조화하거나 배제시킨 측면도 있다. 이런 가운데 여성의 경험을 역사 속으로 불러오기 위한 연구방법의 하나로 197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여성구술사’가 새롭게 등장했다. 그동안 역사 서술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로 역사의 흐름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노인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경험하며 체득한 지혜와 경륜이 도서관 하나와 맞먹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여성구술사는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회고한다는 의미가 있다. 박승희 영남대 교수는 “구술 증언이나 생애사에는 어릴 때 우리가 본 영웅 서사 속 환상은 없다. 오히려 한 생애 속에 담긴 개인의 희로애락과 생몸살 같은 삶의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혹은 살아갈 진짜 역사일지 모른다. 교과서 속에는 없지만 진짜 내 생애이자 흔적인 것들, 여성구술생애사는 바로 그 증언의 기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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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공장 맏며느리로…
요절한 독립운동가의 아내로…
근현대사를 헤치고 살아온
지역 여성들의 파란의 삶 담아

 

◆ 구술로 엿본 여성들의 삶

대구여성가족재단이 발간한 ‘대구, 섬유 그리고 여성’은 대구에서 섬유산업에 종사한 5명의 대구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2007년에 나온 구술생애사 1권에 이은 두 번째 작업으로 나온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의 ‘하고 싶은 말은 태산도 부족이라’에는 다양한 계층과 직능의 경북 여성 10명의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조각조각 맞추어 나가다 보면 한국사회가 걸어온 지난 족적, 그리고 그 속에서 파란의 삶을 살아온 대구·경북 여성들의 삶이 또렷하게 살아난다.

대구·경북 지역 견직물 산업의 핵심 원료인 원잠종을 육성해 경북도청으로 납품하던 ‘나방이 공장’ 칠성산업사의 맏며느리 정말분 할머니(83)는 지금도 일제 시대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가옥에 살고 있다. 해방 무렵 시아버지가 일본총독부 직원으로부터 잠종사업을 인수하게 된 상황과 칠성산업사로 시집온 후 지역 섬유산업이 한창 번창하던 시기에 맏며느리로 집안 식구들과 200여명 공장 직원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희도초등 재학 당시 달성공원 신사에 도장 찍으러 다니던 기억, 미나카이 백화점에서 근무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대구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다.

김상태 할머니(77)는 의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구의 면방직공장에서 평생을 보냈다. 남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어려운 직조 관련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워 ‘통경사’라는 숙련노동자로 살아왔다. 시집와서 평생 비산동에서 살면서 달서천에 빨래하러 가던 기억, 달성공원 근처 샘에서 물을 길어 먹던 기억 등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의 자부 손응교 할머니(98)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녀는 17세에 심산의 둘째아들 김찬기와 혼인했다. 모진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되어 감옥에서 풀려난 시아버지를 평생 그림자처럼 따르며 수발했다. 시아버지를 도와 어린 아들을 업고 비밀문서를 포대 안에 넣어 독립운동가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함께 산 시간이 열두 달도 못 되는’ 남편은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가 조국해방을 보지 못하고 서른한 살에 그곳에서 요절하고 말았다.

영양군 비지미골 김통분 할머니(82)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우리 시대 대다수 어머니들이 살아온 삶을 보여준다. 7남매 장남에게 시집온 신부는 방 두 개, 부엌 하나 딸린 투방집에서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 사촌시동생까지 모두 11명 대식구의 큰며느리로 살았다. 산골 생활은 늘 첫닭이 울기 전에 시작됐다. 방아를 찧어서 밥을 하고, 밭을 일구고, 산에서 나물을 캐야 하며, 틈틈이 베를 짜고 삼을 삼아야 했다. 한겨울이면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해야 해 손이 트고 피가 나기 일쑤였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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