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서중하와 김신자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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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17   |  발행일 2015-04-17 제23면   |  수정 2015-04-17

여성의 이름은 늘 역사의 언저리에 서있다. 기억 한가닥을 걸치고 편린처럼 떠돌고 있을 뿐이다.

서중하와 김신자. 낯선 이름이다. 이들 역시 역사에 잘 드러나지 않은 여성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력을 들춰보면 역사 속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하다.

서중하.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다. 추기경을 성직자의 길로 이끈 이가 바로 서중하 여사다. 남편과는 일찍 사별했다. 포목 행상을 하며 가족을 책임졌다. 여장부로 불릴 만큼 억척스러운 삶이었다. 그러면서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독실한 신자였던 서 여사는 대구 시내에서 열린 사제 서품식을 본 뒤 자식들을 신부로 키우겠다고 마음 먹었다. 당시 김수환은 신부가 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장사꾼이 꿈이었다. 하지만 서 여사의 뜻에 따라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김수환이 일제의 학도병으로 끌려갔을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구 남산동 성모당에 나가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다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사제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서중하 여사가 있었던 덕분이다.

김신자. 민족시인 이상화의 어머니다. 역시 남편과는 일찍 사별했다. 상화 시인이 여덟살 때였다. 아들 넷 모두를 존경받는 인물로 키웠다. 일제의 침탈이 가속화될 당시에는 계몽운동에 적극 나섰다. ‘교육부인회’ 창립에 참여했고, 여성교육을 위해 설립된 ‘부인야학교’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근대적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다. 문학적 소양도 뛰어났다. 그녀가 쓴 행장록 중 남편의 1주기 때 올린 제문은 여류문학 이상의 수준이다. 문체가 수려한 것은 물론 문학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상화 시인의 민족성향과 문학적 재능은, 김신자 여사의 정신적 유산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구여성가족재단과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지역여성에 관한 삶을 재조명하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최근 들어서는 ‘대구, 섬유 그리고 여성’과 ‘하고 싶은 말은 태산도 부족이라’는 두권의 책도 내놓았다. 여성 역사를 재조명하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백승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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