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뢰한’ 술집 마담役 전도연 “살인범의 여자, 여우인 줄 알았는데 애잔한 곰이더라”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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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01   |  발행일 2015-06-01 제24면   |  수정 2015-06-01
한때 잘나가는 ‘텐프로’에서 남자 때문에 인생을 망친 여자
촌스럽게 풀어내 더 흥미로워…칸의 여왕? 응원으로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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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뢰한’으로 돌아온 전도연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 경험 후 한가지 길을 집중해서 가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무뢰한’에서 전도연은 또 한번 자신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한때 강남 ‘텐 프로’에 속할 만큼 잘나갔지만, 지금은 퇴물 취급 당하며 지방의 단란주점에서 마담으로 일하는 김혜경 역을 통해서다. 김혜경은 그녀의 말마따나 “열쇠 7개 가질 사주인데 남자(박성웅) 때문에 인생을 망친” 여자다. 그런 그녀에게 형사 신분을 숨긴 채 자신을 술집 영업상무로 소개한 재곤(김남길)이 나타난다. ‘무뢰한’은 이처럼 형사와 살인자의 여자라는 두 극단의 남녀가 만나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를 따라간다. ‘킬리만자로’(2000) 이후 15년 만에 컴백한 오승욱 감독은 누구보다 전도연의 캐스팅에 환호했다. 시나리오를 완성해 놓고도 확신이 서지 않았던 김혜경의 이미지화를 그녀 덕에 비로소 완성했으니 감독으로서 이만한 행복이 또 있을까 싶다. 전도연이 아니면 다소 힘들었을 영화 ‘무뢰한’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폭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차원의 깊이를 더해가는 배우 전도연. ‘무뢰한’은 그 점에서 전도연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더욱 공고히 다지게 만든 의미있는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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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칸 영화제 입성이다. 이젠 익숙해졌을 듯하다.

“가도 가도 익숙해질 수 없는 곳이 칸인 것 같다. ‘주목할 만한 시선’ 진출은 나도 처음이라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했는데 경쟁 부문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오승욱 감독님은 칸에 오기 전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올드 보이’는 7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고, ‘밀양’도 비슷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내심 기대를 하셨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자마자 관객들이 우루루 나갔다.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는데 칸이 처음인 감독님과 (김)남길씨는 오죽했을까 싶다. 다음날 리뷰 기사에 영화에 대한 호평들이 나와서 겨우 안심을 하긴 했다. 알고 보니 그 날 영화가 늦게 끝난 게 이유라고 했다.”

-아직도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러운가.

“예전에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떨쳐버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국내에선 연기의 정점에 달한 전도연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칸에서는 내 작품에 대한 지속적인 팔로업을 하면서 저 배우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를 더 궁금해하고 관심있게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는 떨쳐낼 게 아니라, 계속 안고 가야 한다고. 지금은 뭔가 작품적으로, 연기적으로 나에게 동력이자 활력이 되는 격려같고 응원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뢰한’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일단 시나리오가 좋았다. 누아르나 하드보일드라고 하면 남성 중심의 영화를 생각하게 되는데, ‘무뢰한’은 그 거친 중심 안에 있는 멜로, 사랑에 대한 거친 감정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만 혜경이 다소 평면적이었고 대상화되듯이 표현되는 부분이 좀 아쉬웠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남자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또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만 보이는 여자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여자를 그려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감독님도 깊이 공감하셨다.”

-평범한 역할보다는 늘 감정과 내면 연기를 요하는 인물을 선택해왔다. 혜경도 그 연장선에 있는데 일종의 도전인가.

“도전은 아니다. 일부러 어려운 역할을 선택한 것도 물론 아니다. 사실 쉽다, 어렵다의 기준을 잘 모르겠지만, 취향껏 작품을 선택할 만큼 여배우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물론 내가 어려운 작품을 선택한 건 도전보다는 호기심과 궁금증에 가깝다.”

-혜경을 어떤 여자라고 생각했나.

“되게 여우같고 강한 여자로 보이지만 실은 곰같은 여자다.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게 다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는 여자다. 마음이 가는 대로 진실되게 사는 여자이지, 머리를 굴려서 사는 여자는 아니다. 그래서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실 나도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김혜경이 어떤 여자인지를 알게 됐다.”

-자신의 색깔과 장점을 부각시키기 보단 이젠 감독의 색깔을 자신에게 입히고 싶다고 말했는데 오승욱 감독의 색깔은 어땠나.

“촌스럽다.(웃음) 그런데 그 점이 되게 좋았다.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남자 영화들이 많은데 ‘무뢰한’은 그런 영화들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선 영화 같았다. 하지만 그런 촌스러움과 우직함의 힘이 굉장했다. 알다시피 ‘무뢰한’은 감독님의 15년 만의 복귀작이다. 그런데 신인 감독님보다 더 신인 같았다. 흥미로웠다. 이분이 찍는 전도연은 어떨까가 아닌, 감독님과 내가 만들어낼 김혜경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가 말이다.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김남길과의 호흡도 궁금하다.

“처음에는 재곤이라는 인물과 제대로 매치가 될지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기우였다. 연기할 때 집중력이 매우 좋았다. 그가 재곤을 연기한 덕분에 김혜경이 조금 더 여자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좋은 배우들은 상대방이 빛이 나야 나도 빛이 난다는 걸 알고 있다. 남길씨 역시 그걸 잘 아는 현명한 배우였다.”

-배우 전도연을 스스로 평가해본다면.

“평가는 아니지만 내가 어떤 배우인지를 생각해본 적은 있다. 연기적으로 조금은 전투적이고 집요하고 치열한 편인데 이런 점들이 요즘하고 맞지 않는 건 아닌가,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먼 배우처럼 느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협이 필요하다면 어디까지 해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다. 그런데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갔다오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출품된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타협도 필요하지만 한가지 길을 집중해서 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가지 길이 뭔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내 길을 가다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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