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꼬치·생과일주스·떡갈비 파는 청년들…전통시장에 부는 젊은 바람

  • 이효설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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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8   |  발행일 2015-06-18 제17면   |  수정 2015-06-18
창업하는 젊은이들 증가 추세
초기비용 적고 수익 보장 장점
아이디어와 성실함으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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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이 젊어지고 있다. 위쪽부터 서문시장 명물이 된 대학생 상인 박재우씨와 ‘오빠야에이드’의 황근태씨, ‘150 만세 떡갈비’의 주인장 박은지씨.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서문시장에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들어 평생 직장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고 많은 이들이 취업의 좁은 문을 선택하기보다 창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청년층에 대한 희소성이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초기 비용과 쏠쏠한 수익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전통시장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 젊은 상인들이 가게를 내면서 손님들도 점점 젊어지고 있다. 젊은 상인들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성실함으로 무장하고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복학 대신 선택한 장사가 대박

대학생 박재우씨(24·영남대 사범대)의 별명은 서문시장 ‘대박 청년’이다. 그가 두 달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노점 ‘문꼬치’(문어 꼬치)를 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주말 점심시간엔 노점 앞으로 70~80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지난 12일 오후 3시쯤 만난 박씨는 수십여명이 줄을 서있는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며 “메르스만 아니었어도 지금 시간이 딱 손님 몰릴 땐데…”라며 아쉬워 했다.

‘사장님’이란 호칭이 아직 어색하다는 그는 지난 2월 군에서 제대한 새내기 상인이다. “대학 졸업하면 평범한 직장인밖에 더 되겠느냐”면서 복학 대신 장사를 하고 싶다는 아들을 부모님은 한동안 말렸다. 하지만 박씨가 유명 업체를 방문해 프랜차이즈 사업권까지 받아오자 두손을 들었다. “유럽 배낭여행 보내주는 셈 치고 초기비용만 대주겠다”며 입장을 바꾸었다.

문어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발라 만든 문어꼬치는 하나에 3천원. 박씨는 이 꼬치를 하루 200~300개 정도 판다. 어떨 땐 물량이 떨어져 다른 시장에 들러 재료를 급조할 정도다. 장사가 잘돼 손이 부족하자 박씨의 학과 친구들은 물론 엄마까지 나와 일을 돕고 있다.

그는 “가게 여는 데 들어간 초기비용이 100만원이 채 안 되는 데다 월 임차료도 하루이틀 장사하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굳이 밖에서 수천만원 돈을 들여 장사 시작할 필요가 없다. 돈 없는 청년에게 시장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라며 웃었다. 박씨는 앞으로 몇 달 안에 시장내에 점포 한 곳을 더 내는 것은 물론 서문시장 야시장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겠다며 열심이다.

◆땀으로 승부하는 전통시장에 매력

황근태씨(34)는 10년 가까이 하던 의류 관련 사업을 접고 서문시장으로 들어왔다. 정장 입고 출근하다 6.6㎡남짓한 점포에서 하루종일 잔돈을 주고받으며 몸을 부대끼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남들 눈도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그는 어느 때보다 하루가 짧다고 생각한다. 아진상가와 4지구 건물 사이 골목에서 생과일주스 전문점 ‘오빠야에이드’를 운영 중인 그는 “몸을 바쁘게 움직이니 그만큼 돈이 들어온다. 일 마치고 통장잔액 확인하는 재미에 산다”고 말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전통시장 창업에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무엇보다 먹거리 사업은 서문시장이 딱이라는 것이다. 도시철도 개통으로 젊은 인파가 하루가 다르게 몰리는 데다 기존 먹거리 골목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일단 입점만 하면 ‘서문시장 효과’를 톡톡히 본다는 것이다.

황씨는 “전통시장에선 괜찮은 아이템이 있고 몸만 열심히 움직이면 최소한 피해는 안 본다”면서 “남 보기 버젓해 보이려고 선뜻 장사에 도전 못하는 사람들에게 과감히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모님 점포 물려받은 여성 상인

부모님이 30년째 운영하던 노점을 물려받은 젊은 여성도 서문시장 장사꾼이 됐다. ‘150 만세 떡갈비’의 주인장 박은지씨(34) 얘기다. 어머니가 분식을 팔던 가게를 리모델링해 떡갈비 가게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직접 사온 고기를 믹서에 갈아 동글동글하게 빚은 뒤 기름에 튀겨낸다. 이 떡갈비를 선보인 지 겨우 7개월이 지났지만, 인터넷 포털에선 ‘서문시장 만세’를 검색하면 수십여개의 맛집 블로그가 쏟아진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도 유명세를 톡톡히 떨치고 있다. 박씨는 “매일 150개 파는 게 목표였는데 훨씬 잘 팔린다”고 자랑했다.

젊은 손님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는 그는 “전체 손님의 30~40%는 외지에서 ‘먹방 찍으러’ 온 2030 손님들”이라면서 “특히 도시철도 3호선 개통 후 젊은 손님이 계속 늘고 있는데 어린 친구들이 ‘이모’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줘 일할 맛도 난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상인이 되면서 인생의 참맛도 알아간다. 한번은 가게 앞에 손님들이 늘어서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지나가던 상인이 “젊은 사람이 자기 욕심만 채운다”며 혀를 찼다. 예전 사업할 때 같았으면 같이 핏대를 세웠겠지만 “죄송하다”고 몇 번씩 사과했다. 이런 일로 몇 번 고개를 숙였더니 나중엔 줄이 길어져도 “은지씨 가게 잘되면 우리 가게도 사람 많아져 좋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억울해도 참고, 함께 살아가는 맛을 전통시장에서 배운다”는 말에서 장사꾼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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