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대구 간판정비, 보여주기식 일회성 사업…도시 디자인 실종

  • 이연정,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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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04 07:38  |  수정 2015-11-04 07:38  |  발행일 2015-11-04 제6면
장기적 안목 없이 일부만 정비
도심이미지 제고 큰 효과 없어
市, 정체성 확립에 적극 나서야
주먹구구 대구 간판정비, 보여주기식 일회성 사업…도시 디자인 실종
주먹구구 대구 간판정비, 보여주기식 일회성 사업…도시 디자인 실종
대구시내 간판 정비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도시 이미지와 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구시 북구 고성네거리에서 원대오거리 사이 옥산로(위쪽)의 상가 간판은 개선작업이 이뤄져 산뜻한 이미지를 풍기지만, 이곳에서 300m 떨어진 오봉오거리에서 원대오거리 사이 침산남로의 간판들은 노후된 데다 디자인과 서체,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지난달 30일 오후 1시 대구시 북구 고성네거리에서부터 원대오거리에 이르는 옥산로에는 많은 점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종합기계상사와 지게차수리점, 철물점 등 취급하는 품목과 업종도 다양했다. 특히 똑같은 크기의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 업체 로고와 상호가 양각된 채 통일성을 띠고 있었던 것. 깔끔하게 정비된 간판 덕분에 거리 전체가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반면, 이날 오후 3시쯤 찾은 북구 침산남로(오봉오거리~원대오거리)의 분위기는 옥산로와 사뭇 달랐다. 크고 작은 종합기계상사의 간판은 노후된 데다 디자인과 서체, 크기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두 거리는 불과 300m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다른 도시에 와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때마침 길을 지나던 주민 이모씨(63)는 “이 도로는 1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저녁 늦은 시각이나 밤에 이곳을 걸을 때면 스산한 분위기에 겁이 날 때가 많다”고 했다.

이처럼 간판 정비는 도시 미관을 효과적으로 개선시키는 사업 중 하나다. 개발사업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사업에 소요되는 시간도 짧은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기초단체들은 장기적인 안목 없이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단기간 도심 이미지 개선이 필요한 곳 위주로 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 대다수 사업이 보여주기식, 일회성에 그치는 이유다.

실제 대구지역 8개 구·군에 따르면, 2013년부터 최근까지 3년간 대구시내에서 진행된 간판정비사업 25건 중 18건이 도시철도 3호선 개통과 세계에너지총회를 대비해 이뤄졌다. 나머지 7건도 중구 대구시민회관 주변, 달성군 비슬로 간판시범거리 조성·비슬산 음식문화거리, 북구 칠곡중앙대로 간판시범사업 등 개별로 진행된 사업이었다.

김철영 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는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구시가 간판 규제에 대한 전반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등 관리 방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초단체별로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도시 전체 이미지 제고와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목소리도 높다. 통일성이나 연계성 없이 정비가 이뤄져 시너지효과가 떨어진다는 것. 한 구청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디자인과 실행능력, 단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선정하지만, 업주의 반대로 간판 디자인이 수정되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대구시는 간판개선 사업에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다. 2008년 ‘대구 간판 가이드라인과 표준디자인’ 제정 이후 간판개선과 관련해 별다른 방침을 두고 있지 않은 것.

대구시 관계자는 “표준디자인 등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며, 일부 업체는 국토부나 한국옥외광고센터의 간판개선사업 관련 지침에서 간판 디자인 등을 참고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간판정비사업은 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한 부분이다. 대구시가 큰 안을 잡고, 구·군별로 지역적 특색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은 채 유럽 등 선진국의 디자인만 따라가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정호 경북대 교수(건축학부)는 “무조건 옛것을 버리고 선진국의 디자인을 따라가는 것은 오히려 규격화·획일화를 부를 우려가 있다. 서구에선 오히려 한국의 무질서한 디자인을 특색 있게 바라본다. 도시 디자인에 대한 각계의 원론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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