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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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0   |  발행일 2016-10-20 제30면   |  수정 2016-10-20
20161020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자본주의 문제 해결책으로
마을의 가치가 재조명받아
결혼식도 마을단위로 치러
지역경제에 환원효과도 커
공동체의 협력이 미래 희망


‘마을하자’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주민이 참여해서 함께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자’라는 뜻을 한 단어로 압축한 표현이다.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책이 있다. 미래 세계의 희망은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쓴 책이다. 원제는 ‘마을 스와라지(Village Swaraj)’이지만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처럼 거창한 제목을 달게 됐다. 이 책에는 비폭력, 자립, 자치의 가치가 일관적으로 관철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마을공동체 운영 전반에 대한 간디의 고민이 그대로 담겨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간디의 스와라지 사상이 중세적 보수주의 경제사상쯤으로 여겨져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오늘날 21세기 사람들이 새롭게 ‘마을’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마을’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살아나는 한 예를 들어보자. 서울 성북구에서는 새로운 결혼문화로 마을웨딩을 실험하고 있다. 성북구청을 비롯한 성북문화재단, 구립미술관 등이 웨딩장소를 제공하고 있고, 친환경웨딩을 진행해오던 사회적 기업이 전체 마을웨딩의 기획을 맡고 있다. 기획을 맡은 사회적 기업이 처음 마을웨딩을 시작한 계기는 결혼식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과 대형웨딩기획사 같은 사업자 중심의 웨딩시스템이 결혼문화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비용을 낮추면서도 마을 전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결혼문화의 방식이 무엇일지, 또 마을에 터 잡은 업체(가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를 고민하다 ‘스드메(스튜디오촬영, 드레스, 메이크업)’로 대변되는 웨딩시장의 관습과 방법을 새롭게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부터 일반 청첩장 대신 재생용지에 콩기름으로 인쇄한 청첩장이 등장하고, 신부는 예식 후 평상복으로도 활용 가능한 천연 소재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 앞에 나선다. 메이크업, 헤어, 꽃 장식은 모두 성북구에 소재한 업체에서 하며 사진도 동네사진관, 피로연 음식도 동네 맛집에서 제공한다. 결혼식 홍보는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맡아서 하고 있다. 신혼여행으로 공정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제일 감동적인 것은 성북구 장수마을 할머니들이 손수 만든 음식이 잔칫상에 오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살림과 음식 경력만 수십 년인 장수마을 할머니들은 새롭게 혼례음식 만드는 법을 교육받았고, 마을웨딩이 시작되면서 정당한 보수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업체의 음식과는 정성과 맛이 다를 것이 분명한 일이다.

이러한 마을웨딩의 사례는 마을결혼식으로 발생되는 경제효과를 지역경제로 환원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을웨딩이 잘될수록 그 지역이 잘사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웨딩기획사가 아닌 지역플래너가 마을을 대상으로 마을업체 간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웨딩을 진행함으로써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회의론도 있다. 기획을 맡은 해당 사회적 기업이 가수 이효리의 에코웨딩을 주관해 유명해진 곳이라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고, 대다수 예비신부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친환경 드레스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모든 사람이 마을웨딩을 할 필요는 없다. 호텔웨딩을 하든 하우스웨딩을 하든 선택의 문제이다. 하지만 작은 결혼식, 친환경 결혼식을 웨딩문화의 대안으로 생각한다면 마을공동체가 함께 참여하고 경제적 효과도 나눌 수 있는 마을웨딩을 대구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한다.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고 한다. 꿈꿔보라. 마을웨딩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마을육아, 일가정양립기업에서 확장된 일가정양립마을, 마을이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심마을…. 마을은 주민이 만든다. 세상은 결국 마을하는 주민이 구한다. 마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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