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진심을 담은 ‘사과·용서의 말’로 마음을 치유하세요”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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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4 08:00  |  수정 2016-10-24 08:00  |  발행일 2016-10-24 제18면
용서하는 태도 따라 네 가지 유형
상대에 대한 미움·증오 품지 말고
마음의 흉터까지 어루만지는 사람돼야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진심을 담은 ‘사과·용서의 말’로 마음을 치유하세요”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시인 유치환은 ‘행복’이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고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데도 사람들은 이 구절에 공감하고 감동합니다.

이 시에서 ‘사랑’이라는 낱말을 ‘용서’라는 낱말로 바꾸어 본다면 그 감동의 깊이는 어떨까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생전에 하지 못해 후회하는 말 중에 하나가 “용서합니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용서하는 것이 용서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라는 말도 마음에 간직하고 한 번씩 되새겨 볼 소중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용서하는 태도에 따른 네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사과하지 않아도 용서해 주는 사람입니다. ‘흥부전’에 등장하는 ‘흥부’가 그런 사람입니다. 흥부가 굶주리고 있는 자식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온 자신에게 주걱으로 뺨을 때린 형수나 매를 때린 형을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은 것은 형과 형수가 사과를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소설 ‘장발장’에 나오는 ‘미리엘 신부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쳤는 데도 그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은촛대마저도 주는 은혜를 베풉니다. 흥부나 미리엘 신부님처럼 사과를 하는 것과 상관없이 용서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용서하는 삶은 바로 이런 삶일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본보기로 삼고 그들을 닮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사과하면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학교폭력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여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회의에서 폭력피해를 입은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한 친구가 어떤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느냐고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 친구가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용서해 주고 싶어요.” 대부분의 피해 학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와 똑같은 고통을 받게 해 주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학생들입니다.

폭력을 당한 학생의 마음속에는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자리 잡게 되는데, 그 얼음덩어리가 녹아야만 상대방이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사과하는 말’은 그 얼음을 녹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과하면 용서해 줄게”라는 말은 “네가 내 마음속의 미움과 분노를 녹여준다면 내가 용서해 줄게”라는 말과 같습니다. 내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생겼으니 네가 사과의 말로 나를 치유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과를 받고 용서해 주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상대방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사과를 해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으로는 조선시대 영조 임금을 들 수 있습니다. 영조 임금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해 달라는 사도세자를 뒤주(곡식을 담기 위해 나무로 만든 상자)에 가두어 죽게 만듭니다. 사과를 하는 데도 끝까지 용서를 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용서를 하지 못하는 자신은 물론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고통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넷째, 사과를 바라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자신도 똑같이 당한 대로 갚아주겠다는 사람과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관계를 끊으려고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당한 대로 갚아주겠다는 사람의 예로는 이솝우화 ‘두루미와 여우’에 나오는 ‘여우’를 들 수 있습니다. 여우는 두루미가 자신을 초대해 놓고 주둥이가 긴 병에 음식을 담아 와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을 때 두루미의 사과를 바라기보다는 자신도 똑같이 갚아 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결국 두루미와 여우는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것입니다. 이 둘이 예전의 관계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화해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화해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회를 마련해 주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관계를 단절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여려서 더 큰 상처를 받는 사람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말과 상대방의 여러 차례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다면 이러한 사람도 결국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용서를 하지 않고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치유해 주는 것이 사과하는 말입니다. 사과하는 말과 용서하는 말은 우리 모두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행복의 나라로 가게 해주는 열쇠입니다. 다만, 사과의 말과 용서의 말을 했다고 해서 모든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 법이니까요. 마음의 흉터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아름다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장수<대구성서초등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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