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두 번째 스물·로스트 인 더스트

  • 김명은
  • |
  • 입력 2016-11-04   |  발행일 2016-11-04 제42면   |  수정 2016-11-04

두 번째 스물
마흔 살에 다시 마주한 옛사랑


20161104

마흔여덟의 영화감독 민구(김승우)와 마흔의 안과의사 민하(이태란)는 한때 뜨겁게 연애하던 사이다. 두 사람은 한날한시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기내에서 민구가 먼저 민하를 발견하고 알은체하지만 민하는 애써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옛사랑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마주치게 될 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상상해보게 된다. 또 상대의 얼굴을 보게 되는 순간 표정은 어떻게 바뀔지도 궁금하다.

민구는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민하에게 반가움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민하는 정색을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처럼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심리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찰나 같다. 물론 ‘누가 더 사랑했느냐’ ‘누구 때문에 헤어졌느냐’ ‘헤어지는 방식이 어땠느냐’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알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불같은 사랑, 이별, 그리고 13년 만의 우연한 재회
중년 남녀가 여행지서 벌이는 일주일간 일탈 그려
김승우·이태란 연기호흡과 伊 곳곳 풍광 보는 재미



마흔 살의 다른 말인 ‘두 번째 스물’은 사랑했다 헤어지고 13년 만에 재회한 남녀가 남들 시선에서 다소 자유로운 먼 이국땅에서 지나간 추억을 되짚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겉으로 보기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불륜이다. 민구는 한국에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있고, 남편과는 사별했지만 민하에게는 이탈리아에서 유학 중인 성인이 다 된 딸(남편이 민하와 재혼을 해 딸은 민하가 낳지 않았다)이 있다. 영화제 심사와 학회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에 간 두 사람은 2006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토리노에서 우연히 만나 옛 감정을 되살리지만, 거기까지다. 그저 한순간의 일탈일 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며 서로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뜨거운 눈물과 함께 가슴 깊이 묻어둔다.

민구와 민하는 누군가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끌렸고, 미치도록 불타는 연애를 했다. 하지만 좋은 집안 출신의 의사인 여자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영화 조감독으로 일하던 남자는 끝내 결혼까지 할 수는 없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속절없는 비탄을 남길 뿐이다. 영화는 이처럼 평범한 진리를 말하려는 듯하다.

민구와 민하가 일주일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나누는 대화 내용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들의 사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술이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갖춘 두 사람은 예술에 대해 꽤나 수준 높은 대화를 이어간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의 대표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은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살인, 투옥 등 세속적인 삶을 살았으나 끊임없이 속죄와 종교에 대한 그림을 그리며 ‘빛의 화가’ ‘이중성의 화가’로 일컬어진 카라바조의 그림을 통해 두 사람은 인생의 전환기인 40대를 맞아 삶과 죽음, 사랑과 인생,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을 담은 대화를 나눈다.

남녀 주인공이 대화로 과거를 복기하고 철학적 깊이가 있는 예술을 때로는 장황하게 설명하는 식이어서 영화는 흐름이 다소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김승우는 인간미 있는 중년 남성을 자연스럽게 연기했고, 이태란은 자신감 넘치는 전문직 여성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영화는 이탈리아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재미를 안긴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베드신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장르:로맨스·멜로, 등급: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116분)


로스트 인 더스트
토비 형제가 은행을 터는 이유


20161104

이혼 후 홀로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돌보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가던 토비(크리스 파인).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가족의 유일한 재산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 소유권마저 은행 차압 위기에 놓이게 된다. 벼랑 끝까지 내몰리게 된 위기의 상황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토비는 농장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물림되는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한 토비는 냉정하고 치밀한 판단 끝에 은행 강도 계획을 세운다.

야성적이고 불같은 성격에 두려움을 모르는 토비의 형 태너(벤 포스터). 교도소에서 10년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온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범죄자로 낙인찍힌 문제적 인물일지 몰라도 동생 토비의 부탁이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든든한 형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 토비로부터 범행 계획을 듣게 된다. 절망에 빠져 있는 동생이 안타까웠던 그는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 생각하며 범행에 가담하게 된다.


각본가 테일러 셰리든 ‘시카리오…’ 이은 범죄물
크리스 파인·제프 브리지스 등 연기파 배우 열연
美 사회 구조적 모순 다룬 ‘현대판 서부극’으로 불려



은퇴를 앞두고 있는 텍사스의 베테랑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은 두 사람의 범행을 수사하게 되고,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던 사건은 점점 그 규모가 커져 급기야 연쇄 강도 범죄로 변모해 간다. 일정한 패턴과 함께 치밀한 범죄 수법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해밀턴은 수사망을 좁혀 태너와 토비 형제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멕시코 사상 최악의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 국경 무법지대에 모인 세 명의 요원이 서로 다른 목표로 대립하는 내용을 그린 범죄 스릴러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각본가 테일러 셰리든의 차기작이다. 실제로 텍사스 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테일러 셰리든은 과거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이번 작품을 기획했다고 한다. 국경 개발과 함께 원유를 발견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빈부 격차가 순식간에 벌어지고,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인구이동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도시가 점차 황폐해지는 등 당시 상황들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베테랑 형사 해밀턴 역의 제프 브리지스의 열연이 돋보인다. 제프 브리지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크레이지 하트’부터 ‘더 브레이브’ ‘트론: 새로운 시작’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해온 자타 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다. 그는 “옳고 그름을 떠나 모든 캐릭터가 가진 양면적이고 모호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렉’ 시리즈의 크리스 파인의 절제된 카리스마와 ‘론 서바이버’의 벤 포스터의 야성적인 매력도 눈길을 끈다. 크리스 파인은 토비를 영리하고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조용하지만 강한 남성적인 매력의 소유자로 탄생시켰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으로 이름을 알린 벤 포스터는 인생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태너를 그려냈다.

데이빗 맥켄지 감독은 캐릭터의 감정 표현과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했다. 감독의 독특한 연출력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은행 총격신에서 돋보인다.

서부 텍사스 특유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영화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다룬다.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장르:범죄·드라마,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102분)

김명은기자 drama@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