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잉카제국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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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1   |  발행일 2017-09-01 제37면   |  수정 2017-09-01
태양의 신전 위엔 태양을 묶어놓는 돌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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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지기의 집에서 바라본 마추픽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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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얀타이탐보의 요새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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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묶어놓는 기둥이라는 인티우아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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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신전.

나의 남미여행 목적의 반은 마추픽추였다. 땅에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공중도시’이자 175구의 미라만 남긴 채 어느 날 갑자기 몽땅 사라져버린 ‘잃어버린 도시’ 등의 별명은 늘 나를 그곳으로 끌었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에서 마추픽추의 입구 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는 약 112㎞의 거리다. 쿠스코에서 곧장 가는 직행열차도 있지만 이렇게 직행코스를 택하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직행열차 가격이 비싼 이유도 있지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가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성스러운 계곡의 켄코, 푸카푸카라, 탐보마차이, 피사크, 오얀타이탐보 등의 잉카 유적지들 때문이다.

마추픽추의 관문인 오얀타이탐보 거쳐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기차로 90분
골목마다 카페·레스토랑·안마소 즐비

장대비 퍼붓는 새벽 버스로 와이나픽추
해발 2천여m 마추픽추 호위하듯 우뚝
한 사람 겨우 지날 小路 빙글빙글 걸어
‘망지기의 집’선 잃어버린 도시 한눈에

이 가운데 오얀타이탐보는 마추픽추의 관문 역할을 한다. 보통은 이 마을에서 기차를 타거나 잉카 트레일을 따라 도보로 마추픽추로 들어간다. 잉카 트레일은 말이 없었던 잉카시대에 이어달리기로 소식이나 물자를 전하던 전령사 ‘차스키’들이 다니던 길이다. 잉카 제국은 쿠스코를 중심으로 네 방향으로 통신로가 뻗어 있었고, 도로에는 1.4㎞마다 2개의 초소를 설치해 4명에서 8명의 차스키를 두었다고 한다. 차스키들의 발이 얼마나 빨랐던지 210㎞ 떨어진 태평양 해안에서 아침에 잡은 생선이 당일 저녁 쿠스코의 왕의 밥상에 올랐다고 한다. 이동시간을 12시간으로 잡고 대략 환산해도 시속 17.5㎞로 달린 셈이다. 걷기도 힘든 고산의 산길을 이처럼 빨리 달렸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잉카시대의 마을 형상을 그대로 간직한 오얀타이탐보는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에 맞서 최후까지 항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잉카인들은 거의 5년 동안이나 이곳에서 스페인에 맞섰다. 깊은 계곡과 사람 키보다 높은 계단식 밭이 천혜의 요새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나도 마추픽추의 여행을 이곳에서부터 시작했다. 여기에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는 기차로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기차는 깨끗하고 서비스도 좋았지만 페루 레일 자체가 영국 소유이다 보니 물가에 비해 가격이 비쌌다. 기차의 천장에도 유리창을 만들어 성스러운 계곡의 절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전형적인 관광열차였다. 열차는 계곡 사이를 뚫고 지나가면서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푸른 숲들, 그곳의 원주민들, 이런 애피타이저 같은 장면들에 정신을 팔다보니 어느새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역에 도착했다. 역이 유난히 어두운 것은 어스름 녘에 도착한 탓도 있지만 역 옆에 버티고 서있는 우뚝한 산봉우리 때문이었다. 해발 2천40m의 이 산봉우리가 마을의 높이를 실감케 한다.

‘뜨거운 물’이라는 뜻을 지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는 마추픽추로 가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을길을 산책한다. 아기자기한 골목마다 카페와 레스토랑, 안마소가 즐비한 것이 작은 관광마을 같다. 와이나픽추 등반까지 예약한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시끄러운 빗소리에 잠이 깼다. 생각지도 못한 굵은 빗줄기가 그치지 않는다. 이런 비라면 와이나픽추 등반은 고사하고 마추픽추 관광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갑자기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며 잠을 달아나게 한다. 그런데 장대비가 퍼붓는 새벽녘의 정류장에는 벌써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그 줄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우르밤바강의 물살은 밤새 내린 비로 더욱 사납게 굽이치고 있었다. 버스 한 대 겨우 지날 법한 가파른 비탈길을 버스는 용케도 교행을 하며 잘도 오른다. 한참을 가자 매표소가 보였다. 예매한 티켓을 체킹하고 입구로 들어서니 바위 모서리에 하이럼 빙엄의 동판이 보인다.

이 유적지의 발견자로 기록된 빙엄은 미국 예일대의 역사학자였다. 1911년에 빙엄은 전설의 도시 빌카밤바를 탐험하다가 아구아스 칼레엔테스에 사는 11살 소년에게서 마추픽추 이야기를 듣고서 이곳을 탐험하게 됐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했듯이 빙엄도 이곳을 빌카밤바로 알았던 것이다. 빙엄이 이곳의 발견자로 행세하고 있는 것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 못지않은 제국주의의 억지다.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대대로 살던 땅이고 줄곧 봐왔던 도시인데 발견이라니. 어쨌든 빙엄은 세 차례에 걸쳐 토기·보석·유골 등 무려 5천여 점에 달하는 유물들을 연구목적의 단기 반출 허가를 받아 예일대로 실어 날랐다. 연구가 끝났지만 그 유물들은 여전히 예일대에 있고, 미국은 반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아직까지 페루로 돌아온 유물은 없다고 한다. 아직도 돌려받지 못한 우리의 유물들을 생각하니 남 일 같지 않다.

씁쓸한 마음을 누르며 모퉁이를 돌자 구름 속에서 언뜻언뜻 잃어버린 도시의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조각만으로도 짐작이 가는 도시의 실루엣이 그대로 가슴을 밀고 들어온다. 숨이 턱 막혀왔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수없이 봤던 광경이 이렇게 낯설 줄이야. 이것이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아우라이리라. 그러나 애써 자세한 눈길을 거둔다. 마치 맛있는 과자를 손에 쥔 아이의 심정이랄까. 하루 500명으로 입장이 제한돼 있는 와이나픽추부터 등반한 후 천천히 아껴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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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봉우리’라는 뜻의 와이나픽추는 ‘늙은 봉우리’ 마추픽추를 호위하듯 우뚝 서 있다. 오전 7시부터 입장이 시작된다고 했지만 비가 내리는 날씨 때문인지 출입구가 닫혀 있었다. 30분쯤 지나자 거짓말처럼 날이 개고 그제야 관리인이 개찰을 시작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소로를 따라 좁은 산봉우리를 나사처럼 빙글빙글 돌며 오른다. 어떤 곳은 경사가 너무 급해서 앞사람의 엉덩이만 보인다. 굽이진 강과 협곡은 올라갈수록 아득해진다. 산중턱에 드리운 구름은 마추픽추의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서야 그간의 수고를 보상하듯 구름이 물러가며 마추픽추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조그맣게 보이는 도시와 계단식 밭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꼭 키다리 개구쟁이가 레고 블록으로 쌓은 듯한 모습이다. 수레도 없었던 시대에, 사방이 막힌 이곳에, 저 큰 돌을 어디에서 어떻게 가져왔을까? 또 어떻게 저처럼 정교하게 깎고 다듬었을까? 이런 곳에 왜 이렇게 도시를 만들어야 했을까? 여기에 살았던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추측은 많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잉카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이처럼 자꾸 의문만 생긴다.

의문만 잔뜩 품은 채 와이나픽추에서 내려와 마추픽추로 들어갔다. 그러자 의문문은 이내 감탄문으로 바뀌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나왔다. 먼저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망지기의 집’부터 들렀다. 와이나픽추 아래로 펼쳐진 마추픽추 전경의 사진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잡은 앵글이다. 마추픽추는 크게 계단식 경지로 이뤄진 남쪽지역과 주거지역으로 이뤄져있는 북쪽지역으로 구성돼 있으며, 가운데는 수로가 있다. 계단식 경지는 25개인데 1.5~2m 높이에 2~3m 폭으로 산의 결대로 길게 펼쳐져 있다. 주거지역은 또 중앙광장을 가운데 두고 큰 돌들을 정교하게 쌓은 상류층의 주거지 및 경작지와 가까운 낮은 곳으로 갈수록 조금씩 허술하게 쌓은 평민들의 거주지로 나뉜다. 상류층 주거지에는 왕의 거처와 신전 및 귀족층 거주지가 있었고, 하류층 주거지역에는 농민, 방문객 숙소, 수공업장, 감옥 등이 있었다고 한다.

마추픽추 유적지 가운데 우선 봐야 할 곳은 중앙광장 위쪽에 있는 ‘인티우아타나’다. 케추아어로 ‘인티’는 태양을 뜻하고, ‘우아타나’는 연결이란 뜻이니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의미다. 해시계로 추정하는 이곳은 태양을 숭배하는 잉카인들이 태양을 붙잡아 바위에 묶어놓는 성소로 여겼다. 중앙광장은 마추픽추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으로 주변에는 여러 신전과 궁전이 있고, 잉카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는 수로가 있다. 중앙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말굽 모양으로 생긴 태양의 신전이다. 태양의 신전은 마추픽추 유적지에 있는 200여 개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독특한 모양이다. 태양의 신전 주변에는 유일한 복층건물인 왕녀의 궁전을 비롯해 왕릉으로 추정되는 인공동굴, 곡식창고, 향기의 방,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냥 지금 우리의 지식으로 규정하는 추정일 뿐이다. 실제로 이 유적 앞에 서면 얕은 생각으로 함부로 예단하면 안될 것 같다는 위엄이 느껴진다. 파블로 네루다, 빅토르 하라, 체 게바라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의 선구자들이 하나같이 이곳에서 삶의 전환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이곳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그저 선입견 없이 다니며 느끼는 일뿐이었다. 그러다보면 가끔 돌들이 속삭이는 잉카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다가 언젠가 삶이 무거울 때 슬며시 꺼내볼 생각이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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