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세계화장실의 날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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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8   |  발행일 2017-11-18 제23면   |  수정 2017-11-18

영국 런던을 비롯한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는 화장실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심지어 방이 700여개 있고 5천여명이 살았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은 없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크로스 스토루’라는 대소변 겸용 요강을 사용했는데 요강이 차면 하수구나 길거리에 내다 버렸다. 2층 이상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불편하자 점차 창문 밖으로 던지는 일이 잦아졌다. 당연히 거리는 오물로 넘쳐났고 결국 페스트 등 전염병 창궐로 이어져 17세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다. 알고 보면 오늘날 여성들의 필수품인 하이힐도 정장을 하고 외출할 때 옷자락에 분뇨가 묻지 않도록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것에서 유래했다. 드레스도 공중변소가 없어 여성들이 거리에서 쉽게 볼일을 볼 수 있게 만든 옷이다.

화장실·변기를 뜻하는 영어 ‘toilet’도 공중화장실이 없었던 유럽의 현실이 반영된 단어다. 프랑스어 망토(toile)에서 유래했다. 18세기까지도 공중화장실이 없었던 파리에서는 길을 가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망토와 양동이를 들고 다니는 이동식 화장실 업자에게 돈을 내고 망토 안에 들어가 대소변을 해결했다. 지금도 유럽의 공중화장실에서는 돈을 받는 곳이 많다.

19세기 이후 수세식 변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화장실 위생이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아직도 지구촌에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이 많다. 유엔아동기금이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 중 24억명은 위생적인 화장실 없이 생활하고, 9억4천600만명은 아예 화장실이 없어 야외 공간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물과 음식이 오염되면서 해마다 영아 수십만 명이 설사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유엔은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2013년부터 세계화장실의 날을 제정해 위생적인 화장실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11월19일, 바로 내일이 그날이다.

이용하기가 무서웠던 우리나라 공중화장실도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치르면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특히 내년 1월부터는 개정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모든 공중화장실에서 휴지통이 사라진다. 하지만 오랜 습관에 젖어 사용한 휴지를 바닥에 버리거나 온갖 쓰레기를 변기에 마구 넣지 않을까 걱정이다. 흔히 화장실은 그 나라의 얼굴이며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한다. 제도 개선 못지않게 공중화장실을 내 집 화장실처럼 아끼는 시민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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