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한국의 다카시’ 꿈꾸는 성승모 정신과 전문의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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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5   |  발행일 2017-12-15 제35면   |  수정 2017-12-15
“수입의 10%는 꼭 책을 사고 지난 봄 日 다카시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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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전문의 성승모씨가 자주 찾는 서점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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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승모씨가 올해 3월 방문해 찍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빌딩. <성승모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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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득한 성승모씨의 서재.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고양이 빌딩’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서재를 가진 다치바나 다카시를 부러워할 것이다. 다카시는 수 만권에 이르는 책을 보관하기 위해 일본 도쿄 시내에 고양이 빌딩을 지은 것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30㎡ 정도 되는 자투리땅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은 이 건물은 내부 서가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무려 700m에 이른다고 한다.

성승모씨(50·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 역시 다카시를 자신의 제1 롤모델로 삼고 있다. 지난 3월 직접 다카시를 찾아가서 만나고 왔다는 그는 “다카시처럼 많은 책을 가질 수는 없지만 그처럼 책을 사랑하고 많이 읽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매달 봉급의 10% 정도를 책 구입에 쓰고 있다는 성씨는 자신이 읽을 책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선물할 책도 많이 산다. 자신이 독서를 통해 얻은 그 행복을 여러 사람과 나누려는 것이다.

“독서의 행복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서
다카시처럼 책을 사랑하고 많이 읽으려
매달 50∼60권, 좋은 책은 100여 권 구입”

“3년 前 이사 오며 1500여 권을 버렸지만
바닥에 쌓인 책들로 여전히 보관 어려워
최근엔 PDF 변환·전자책으로 방법 강구”

저자 사인 담긴 책·절판된 중고책 큰 애정
“책 쌓아두고 안 쓰는 것도 ‘정신적 비만’
내년부터는 관심 분야의 책을 써볼 계획”


▶소장하고 있는 책이 어느 정도 되는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수천권은 될 것이다. 집에 2천권 정도의 책이 있고 병원에도 꽤 많은 책이 있다. 자주 읽거나 최근 산 책은 집과 병원에 있고 오래된 책들은 다른 장소를 마련해 보관하고 있다.”

▶가족들이 책 구입을 말릴 정도라고 했다.

“한달에 평균 50~60권은 산다. 매달, 매주 받아보는 잡지와 서점에 가서 구입하는 잡지만 해도 10여권이다. 좋은 책이 나왔을 때는 다른 분들에게 선물도 하기 때문에 100권 넘게 살 때도 있다. 그동안 선물로도 많이 주고, 읽지 않는 책은 대거 버렸지만 버리는 속도가 구입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다 보니 책이 점점 많아져 집안이 엉망이다.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아 내 책방을 따로 마련해 보관하고 있는데도 방에 가득히 들어차 있어서 곧 다시 책 정리를 하거나 책을 보관할 다른 장소를 마련해야 할 듯하다.”

▶책이 들어있는 방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사진 찍을 상황이 아니라고 거절하셨다.

“3년 전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1천500여권을 버렸다. 또 새집에 마련한 책방에 슬라이딩책장을 만들어 책을 좀더 많이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도 너무 많아서 방바닥에 쌓아놓다보니 책들이 숲을 이뤄서 지나다니기가 쉽지 않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책을 분류해서 쌓아두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해서 무너져 버리면 도미노현상으로 수습이 불가능하지 싶어서 죄송하지만 사진촬영장소를 바꾸자고 했다.”

▶매달 이렇게 많은 책을 사면 다 읽는가.

“구입한 책을 읽기는 다 읽는데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는 못한다. 예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으려 노력했지만 요즘은 재미있는 책은 이렇게 읽지만 그렇지 않은 책은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다. 외부칼럼 등을 요청받았을 때 보통 5~10권의 책은 물론 논문까지 본다. 글을 잘 적지는 못하지만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많은 책을 사는 것 같다.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책이 출간돼 어떤 책을 사야될지 잘 모르겠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 것 같아서 샀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고 몇몇 부분들만 마음에 쏙 들어오는 책도 있다. 물론 서너번 읽어도 좋은 책도 많다. 오랫동안 많은 책을 구입해왔기 때문에 이 부분에 어느 정도 노하우가 있는데도 때로는 실수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책을 고르고 구입하는 과정이 즐겁다.”

▶책을 많이 사는 이유가 궁금하다.

“집안에 형제가 많았다. 부모님께서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책은 돈을 아끼지 않고 늘 사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고 커서도 이 습관이 이어졌다. 직장을 가지면서 경제적 여유가 좀 생기자 점점 더 많은 책을 사게 됐다. 책은 아무리 사도 돈이 아깝지 않았다. 다만 책을 보관하는데 좀 어려움이 있다.”

▶즐겨 있는 장르의 책이 있는가.

“대학시절 때는 전공서적을 비롯해 철학, 심리학 책을 즐겨 읽었다. 아직도 이 책들은 꾸준히 읽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술·음악 등의 예술서적을 비롯해 자기계발, 재테크 관련 책도 읽고 있다. 미술, 음악책을 읽으면서 미술작품도 사고 음악공연도 많이 다니고 있다. 좋은 공연들이 있을 경우 일본까지 가서 보고 온다. 일본은 1박2일로 다녀올 수 있어 공연 관람과 책 구입을 위해 자주 가는 편이다. 좋은 공연을 보고 좋은 책을 사서 오는 그 느낌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른다. 아주 큰 행운을 얻어오는 기분이랄까.”

▶최근 저자의 사인이 담긴 책에 깊은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여름 일본 도쿄의 한 서점에 들렀다가 할리우드 스타가 사진 위에 사인을 해 놓은 것이 고가에 팔리는 것을 보고는 사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입구에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도서기부행사를 하는데 우연히 들르게 됐다. 저자가 사인한 책을 사서 그 구입액을 기부하는 행사였다. 김훈, 유홍준, 유시민, 신경숙 등의 사인본 50여권을 사서 몇 권은 소장하고 나머지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니 너무 좋아했다. 이때부터 서점에서 여는 저자 사인회에 더욱 자주 찾고 유명인사의 사진이나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사인이 적힌 앨범 등을 구입하고 있다. 사인이 들어간 책이나 앨범은 저자, 가수 등의 온기가 느껴져 더 친근감을 준다.”

▶얼마전 귀한 사인본을 하나 구입해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신간도 사지만 중고서적도 많이 구입한다. 절판이 된 책을 사려고 중고서점을 찾았는데 기대치 않은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중고책 구입에 재미를 들여서 인터넷을 통해서도 구매하는데 최근 윤이상에 대한 각종 논문과 대담자료, 윤이상의 강연 자료 등을 모은 탄생 75주년 기념 문집이랄 수 있는 중고책을 하나 구입했다. 그런데 거기에 윤이상이 쓴 장문의 글이 있었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수확이었다. 그 책을 받은 날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책 선물도 많이 하는 것 같다.

“명절이나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을 때 내가 읽고 감동을 받았던 책들을 선물한다. 특히 저자의 사인이 들어간 책을 많이 드린다. 그래서 좋은 책은 저자 사인회 등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서 수십권을 구매하고 일일이 사인을 받아온다.”

▶하버드대학 졸업생과 관련한 책도 많이 구입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있는가.

“2000년대 미국 하버드대 정신과 펠로로 있었다. 이런 인연도 있고 정신과의사이자 하버드대학 교수인 조지 베일런트가 하버드대학 졸업생의 인생과 행복을 연구한 책을 보고 하버드대학 졸업생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많은 중고서점을 찾아다니며 하버드대학 졸업생 관련 책자를 사기 시작했다. 동문회에서 5주년, 10주년 기념책자를 내는데 처음에 재미삼아 한두권 구입하다보니 어느 새 10여권이 됐다. 이밖에 하버드대학 졸업생들이 쓴 책도 꽤 가지고 있다. 이런 책을 통해 세계 최고 지성들의 삶과 업적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최근 책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보관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했다.

“꼭 책으로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책들은 고성능 스캐너를 장만해서 책 내용을 PDF와 같은 컴퓨터 파일로 변환시켜 보관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고 필요하면 프린터로 출력해서 읽을 수 있다. 또 킨들과 아이패드를 사용해 전자책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들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책 보관 공간의 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많은 책을 사봤으니 나름의 책 구입요령도 있을 것 같다. 독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보통 베스트셀러를 많이 구입하는데 나는 이런 책은 잘 안 산다. 베스트셀러는 광고를 많이 해서 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광고와 연계되어있다보니 상업성이 강할 가능성이 많다. 베스트셀러보다는 나온 지 오래되어서 곧 절판될 책이나 시중에서 잘 보기 힘든 책을 많이 구입한다. 이런 책은 눈에 띄었을 때 사지 않으면 다시 구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베스트셀러는 당장 사지 않더라도 내가 사고 싶을 때 언제라도 살 수 있다. 참고문헌이 잘 갖춰진 책, 이론 중심의 책보다는 자신의 인생경험이 잘 묻어난 책을 산다. 또 다작을 하는 작가보다는 일평생에 1~2권을 내는 사람들의 것을 많이 구입한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책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도 쓰고 싶다고 했다.

“책만 쌓아두고 스스로 책을 안 쓰는 것도 일종의 ‘정신적 비만’ 혹은 ‘정신적 소화불량’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년부터는 관심 분야의 책을 써보려 한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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