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영화, 음식을 캐스팅하다] ‘반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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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9   |  발행일 2018-10-19 제40면   |  수정 2018-10-19
“우리도 상추쌈을 젓가락으로 먹지 않아요…손으로 먹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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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두비’ 한장면


피부색 다르고 잘 살지 못한다는 편견
단지 손으로 밥 먹는다고 미개인 취급
서로다른 의식주 문화 외면 차별·착취
다양한 사람들 부끄러운 민낯 까발려

차이 이해 못했지만 잘못 깨닫고 후회
갖가지 음식 손으로 함께 먹으며 공감
여고생과 이주노동자가 나누는 우정


9월 초순,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초밥집 하나가 오픈했다. 길에 널린 게 초밥집인 세상이니 뉴스감도 못된다. 그런데 이 집에는 특별한 게 있다. 개인 접시와 젓가락 외에 나무로 만든 사각함이 그것이고 안에는 거즈로 만든 물수건(오시보리)이 담겨 있다. 손으로 초밥을 먹는 손님을 위한 배려다. 손으로 쥐어 만든 음식이니 손으로 집어먹어야 제격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본의 초밥 장인들은 손가락을 사용해 초밥을 먹도록 손님에게 권한다. 젓가락으로 초밥을 거꾸로 들어 간장 찍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좋은 초밥일수록 밥 부분을 성기게 뭉친다는 데 있다. 밥알 사이에 많은 공기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재료가 입 안에서 녹아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인의 다수는 손으로 초밥을 먹는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쥐고 잡히는 대로 먹는다. 분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성장하면서 도구 사용을 익히고 수저나 포크 등을 이용해 식사를 한다. 청결과 위생에 관한 교육은 맨손 식사를 배제하고 도구 사용을 명문화한다. 맨손을 야만으로, 도구를 문명으로 구분한 이분법적·서구적 사고의 산물이다. 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 손으로 음식을 먹는 건 유아기적 행동 또는 미개한 짓이라고 배웠다.

신동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반두비’는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에 대한 비판서다. 대학 진학에 뜻이 없는 여고생과 이주노동자가 나누는 우정이 메인 플롯이다.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도덕적 하자 가득한 사람들이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여고생의 엄마와 무능력한 그의 애인, 성인마사지 숍을 드나들다 학생과 마주치는 선생님과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하고도 뻔뻔한 중소기업 대표가 그러하다. 감독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 세계화 시대의 부끄러운 민낯을 까발린다. 개인의 윤리도 바로 서지 않은 사람들이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착취한다.

주인공 민서가 카림을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을 주목하자. 방글라데시에서 온 카림은 한껏 차려입기 위해 옷가게에 간다. 매장 종업원은 거스름돈을 쇼핑백 위에 올려놓는다. 외국인 노동자 손과 살이 닿기 싫다는 표시다. 그와 만난 한국인들은 선뜻 악수하지 못한다. 양 손 가득 음식재료를 들고 나타난 카림. 정성스레 재료를 손질하고 난(naan)을 굽고 인도 커리를 만들어 한 상 가득 차려낸다. 손으로 커리와 밥을 비벼 먹는 카림과 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민서의 모습이 투샷으로 잡힌다. 민서는 왜 손으로 밥을 먹느냐고 묻는 대신 “손으로 그러면 튼데 쓰리지 않아?”라고 돌려 말한다. 그녀 역시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잘사는 나라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믿는다. 손으로 밥을 먹는 것도 이상하고, 유행에 둔감한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기준을 한국 문화와 정서에 두었기 때문이다. 차이를 외면한 채 차별로 대응하는 미성숙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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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의식주 문화 저변에 깔린 가장 중요한 개념은 오염 인식이다. 생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오염을 시키고 방사돼 전염된다는 개념이다. 불교에서 사람을 ‘흘리는 존재’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을 치우는 일을 항구적으로 하는 사람은 비천한 하층 카스트이고, 육식을 하는 것은 죽은 동물을 먹는 것이니 그 또한 오염된 일이라 여겨 브라만 계급은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인도인들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도구를 남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씻어서 깨끗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물리적인 청결이고 관념으로는 오염된 것이다. 비록 더러운 손일지라도 물로 씻고 나면 물리적·관념적으로 깨끗해진다는 믿음에 내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게다가 인도 음식은 우리 호떡 같은 빵 종류가 많다(남부로 가면 쌀로 만든 밥 종류도 많다). 그 빵을 손으로 뜯어 커리에 찍어 먹거나 싸먹는데 숟가락이나 포크를 쓰기 곤란한 거 아닌가. 영화에서 카림이 정성스레 식재료를 씻어내는 장면을, 그의 손을 그토록 오랫동안 보여준 건 이 때문이다.

어릴 적 왼손잡이에 대한 금기가 있었다. 군사독재 시절이었기에 ‘왼쪽’은 무조건 경원했던 것일까, 아니면 왼손잡이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을까. 동생은 왼손잡이로 시작했으나 자라면서 오른손잡이가 되었고, 부모님은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하는 동생을 보며 뿌듯해 하셨다. 편견과 차별의 시대가 낳은 슬픈 자화상이다. 문화란 환경에 맞게 발전할 뿐 일방의 기준으로 고급과 저급을 구분짓는 행위는 마땅하지 않다. 인도인과 식사할 경우 같이 손으로 먹어주진 못하더라도 이상한 눈초리는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반두비’의 압권인 엔딩시퀀스, 즉 카림의 진심을 알게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너무 늦어버린 것을 자책하던 소녀가 어엿한 숙녀로 변신해 이태원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인도 식당에 들어간 민서는 음식을 주문한다. 부조리하고 편견 가득한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던 소녀가 마침내 갖가지 음식을 제 손으로 집어 드는 순간, 스크린을 비집고 들어와 유영하던 정치코드와 도발적 언술은 한순간 사라지고 만다. 이것은 참으로 희귀한 경험이다. 100분여를 좌충우돌 종횡무진 달려와 놓고는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어 비비면서 머쓱하게 미소 지을 때의 당당하고 넉넉한 표정. 이제 민서는 손으로 인도 음식을 먹는다.

만촌동 초밥집에서 나는 처음으로 초밥 몇 개를 손으로 집어먹었고 이내 익숙해졌다.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누군가 왜 젓가락 대신 손으로 먹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상추쌈을 젓가락으로 먹지는 않잖아요.”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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