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좋은 기회 없다…삼성, 대구 투자 유치 시민운동이라도 하자”

  • 유선태,노인호,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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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15 07:19  |  수정 2014-09-15 07:21  |  발행일 2014-09-15 제3면
대구시-삼성, 오늘 제일모직터 개발 양해각서 체결
20140915
대구시 북구 옛 제일모직 부지. 대구시와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15일 이곳에 창업단지 조성, 삼성상회 등 삼성그룹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메모리얼 파크 개발 등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황인무기자 him792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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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대구 투자가 현실화되면서 지역민의 기대감도 한껏 높아지고 있다. 삼성상용차 퇴출 등으로 최악까지 치달았던 삼성그룹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이미 사라졌다. 오히려 시민들 사이에선 삼성그룹을 끌어안기 위해 ‘특혜에 가까운 혜택’을 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구시는 그동안 삼성그룹에 수많은 러브콜을 보냈음에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구시는 2010년 호암 이병철 회장 동상 건립, 호암로 지정, 삼성상회 터 기념공간 조성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홍보 부족으로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삼성을 끌어안기 위한 대구시의 노력과 시민의 우호적인 분위기가 합쳐진다면 ‘대구 태생인 삼성’의 지역 투자도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애증을 넘어 애정의 관계로

지금의 삼성이 있기까지 대구는 늘 든든한 우군이었다. 위기에 빠진 삼성을 다시 살린 곳이기도 하다.

삼성 창업주인 호암은 1936년 마산에서 정미소 사업을 시작해 운수·부동산업까지 확대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이후 재기에 성공한 곳이 바로 대구시 중구 ‘삼성상회’다. 인근의 사과와 동해의 수산물 등을 만주에 내다팔면서 크게 성공했다. 이후 서울로 옮겨 삼성물산을 설립했지만, 6·25전쟁으로 전 재산을 날렸다.

호암이 또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 대구다. 바로 북구 침산동 ‘제일모직’이 모태가 됐다. 사계절의 기온 차가 심한 대구는 모직공장으로는 불리한 지역이었지만, 호암은 1954년 당시 단일 공장 규모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공장을 세웠다. 이후 삼성도, 대구도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삼성그룹과 대구시민 간의 감정의 골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성서공단 내 삼성 상용차가 들어서면서 기대감에 부풀었던 지역민들은 같은해 12월 이 회사가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은 뒤 철수를 하면서 실망을 넘어 분노감을 나타냈다. 대구시의회도 삼성상용차 퇴출과 관련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삼성그룹 본사 항의 방문 등 다각적인 대응 조치에 나섰다.


상용차 철수로 생긴 감정의 골 없어져
삼성의 모태 도시 적극 홍보 한목소리


“이병철·이건희 대구 대표 브랜드로”
“시민이 밀고 市가 끌면 안될 것 없다”



성난 민심은 삼성그룹 제품 불매운동에 이어 그룹 관계자에 대한 화형식으로까지 번졌다.

당시 분위기는 대구시의회 회의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2000년 11월 열린 제94회 본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애초의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는 250만 시민에 대한 배신행위다. 삼성은 부산에 승용차 공장이 세워지자 대구 상용차 사업에는 투자하는 시늉만 했다. 삼성그룹이 그토록 열망하던 승용차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미끼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산의 승용차 사업부문을 매각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사재를 출연하네 어쩌네 하면서 그룹 차원의 노력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대구의 짝사랑에 모멸감마저 느낄 지경이다. (거기다) 지역의 삼성투자신탁을 삼성증권에 합병시켜 본사를 서울로 가져가 버렸다. 삼성 상용차 퇴출에 이르기까지 삼성그룹이 지역사회에 보여준 태도는 기업윤리를 저버리고 시민의 사랑을 배신으로 대답한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삼성그룹에 대한 분노가 이처럼 극에 달했던 것은 당시 경제위기가 심각했던 점도 한 몫했다. 삼성 상용차 퇴출과 함께 청구, 우방, 보성 등 중견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대우자동차 부도에 따른 지역협력 업체의 연쇄도산과 실직사태 우려가 지역의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이처럼 갑자기 닥친 경제위기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모두 지역을 연고로 한 삼성그룹에 쏠렸고, 이 같은 감정의 골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삼성그룹을 바라보는 대구시와 시민의 생각이 바뀌었다. ‘짝사랑에 모멸감을 느낀다’는 대구시의회에서도 삼성상회터 개발 등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1년 6월 197회 본회의에서 배지숙 대구시의원(기획행정위원장)은 “그동안 침체된 지역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그룹의 지원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오늘날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터와 북구 침산동 옛 제일모직 내에 있는 이병철 회장의 집무실, 이건희 회장의 생가 등 삼성그룹 및 이병철 회장과 관련한 스토리텔링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리치로드 시티투어라는 프로그램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시민도 모르는 호암로

14일 오후 1시쯤 대구시 북구 홈플러스와 옛 제일모직 사잇길. 옛 제일모직 정문네거리에서 남침산네거리로 이어지는 600m 구간의 도로명은 ‘호암로(湖巖路)’다. ‘제일모직로’였던 것을 호암 탄생 100주년에 맞춰 바꾼 것. 하지만 이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은 홈플러스에서 오페라하우스로 향하는 곳에 있는 작은 이정표 하나가 전부다. 거기에는 호암로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호암 탄생 100주년에 맞춰 실물대비 140% 크기로 세운 호암 동상. 멀리서 바라보면 이 동상이 누군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코 앞까지 가야 동상 좌대에 ‘호암 이병철 선생 상’이라는 문구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또 병풍석 좌우는 그가 1982년 보스턴 박사학위 기념식에서 연설한 내용과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는 게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력 30년의 택시기사 조차 이곳에 호암 동상이 있다는 걸 모를 정도다.

택시기사 김모씨(59)는 “만약 서울에서 온 손님이 호암 동상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으면 ‘그런 건 대구에 없다’고 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최고 기업을 세운 사람의 동상인 만큼 사람들이 안다면 ‘부자의 기운’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 번씩 만져보러 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울산시민 상당수는 정주영 회장을 추모해 만든 ‘아산로(峨山路)’가 시내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태화강 사이에 있는 이 길은 현대자동차가 1996년 326억원을 들여 개설한 뒤 울산시에 기부했다. 아산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호(號)다.

이보다 앞선 13일 오후 7시쯤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터 기념공간. 새롭게 꾸민 삼성상회 건물과 당시 모습을 실물보다 작게 만들어 놓은 모형, 그리고 삼성상회에 대한 설명 등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외국어로 된 설명은 영어뿐이었다. 또 안내판에는 이건희 회장의 생가 등도 기록돼 있었지만, 안내책자에는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이곳을 지나던 최재민씨(38)는 “그냥 도시경관 작업 중 하나로 만든 것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삼성상회 건물에 사용했던 간판 등 현존하는 게 있다면 그걸 다시 가져다 두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대구시민이 삼성에 러브콜 보내야

대구 오페라하우스와 삼성상회 기념공간 등에서 만난 지역민들은 “삼성그룹의 대구 투자를 위해 필요하다면 시민운동이라도 전개해야 한다. 시민이 앞장서고 대구시가 밀어주는 식이 되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업준비생인 김정인씨(여·27)는 “삼성의 대구 투자를 위해 시민서명 운동을 벌인다면 취업준비생 전원이 서명에 나서는 것은 물론 서명을 받으러 다닐 것”이라면서 “삼성이 대구와 인연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깊고 오래된 것인 줄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택시기사로 3년 정도 일했다는 최명호씨(58)는 “울산 사람들이 농담처럼 ‘울산의 특산물은 돈’이라고 말한다. 이는 현대, SK 등의 대기업이 몰려 있다 보니 월급이 타 도시보다 훨씬 많고, 그러다 보니 돈이 잘 돌기 때문”이라면서 “지금도 울산에 있는 대기업들이 지역에 공원을 지어 기부하고 있고, 여기에 울산도 해당 공원에 기업 이름을 붙이는 등 사기를 올려주기 때문에 이런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가진 문제는 분명히 있지만, 대구를 생각하면 이병철, 이건희란 인물을 대구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기업의 투자는 이해타산에 따라 이뤄지겠지만, 기업인을 우대해주는 분위기가 점차 자리 잡히고, 삼성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업 측에서 알게 되면 미래를 보고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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