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상 월급차이 있지만 이것저것(집값·물가·시간적 여유) 빼면 서울보다 대구가 이득”

  • 신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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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24   |  발행일 2015-04-24 제3면   |  수정 2015-04-24
‘나, 서울 안 가!’ 지역 직장생활의 재발견
20150424
그래픽=김유종 인턴기자

영남대 기계공학부를 지난해 졸업한 2년차 직장인 조진현씨(가명·27)는 대구 최고 수준의 중견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같은 대학 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한 김수혁씨(가명·28)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서울 소재 정보통신 분야 대기업의 2년차 직장인이다. 이들의 월급은 공히 300만원선, 연봉으로 환산하면 이것저것 포함해 3천500만~4천만원으로 비슷하다. 김씨는 대구의 조씨가 “부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구에 대기업 본사가 있었다면 당연히 대구에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역 최고중견기업-서울 대기업 ‘2년差’
연봉 비슷하나 방값·생활비 등서 큰 차
"서울 생활 땐 연봉 500만원 덜 받는 셈”
대기업선 단편적 업무 승진기회도 제한

"연봉만 보고 서울 고집은 어리석은 선택”
탄탄한 ‘人프라’·경제적인 여유 고려를

대구 취준생의 두 갈래 선택

◆대구 알짜기업, 서울 대기업보다 ‘우수’

지난해 8월 대구A기업에 입사한 조씨는 300만원의 월급 중, 적금에 150만원을 넣고 있다. 승용차 기름값 20만원과 별도의 주택청약적금 10만원, 통신비 8만원을 제하고 나머지 112만원은 자기 계발과 용돈으로 사용한다. 집이 있는 북구 동변동에서 회사까지는 교통이 편리해 출퇴근 시간도 20분에 불과하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주로 운동이나 영어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조씨는 “서울 대기업과 연봉을 비교했다기보다 일단 집이 가까워 계속 대구에 있었다”며 “진짜 가고 싶은 기업이 있으면 가는 게 맞지만, 큰 차이가 없다면 굳이 서울로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조씨는 “서울 대기업 생활과 비교해 집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인 부분의 이득과 시간적인 여유 외에도 대구에서 초·중·고·대학을 나온 개인적 인프라가 탄탄해서 좋다”고 강조했다. 조직이 크지 않아 많은 일을 배울 수 있어 업무 능력을 키우기도 쉽고, 승진의 기회도 많다는 장점도 꼽았다. 대기업에 취직하여 지극히 단편적인 업무에 머무는 제한된 역할보다는 기업 업무 전반을 익히며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지난해 1월 서울 대기업 L정보통신에 취업한 김씨는 현재 19.835㎡(약 6평)의 집(전세 7천만원)이 있는 서울 지하철 7호선 이수역에서 회사가 있는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까지 지하철로 출퇴근 중이다. 300만원의 월급 중 205만원(적금 165만원·주택청약적금 20만원·연금보험 10만원·보험사 개인연금 10만원)을 저축하고 있다. 나머지 95만원 중 교통비 4만원, 점심값 14만원, 통신비 5만원, 전셋집 관리비 6만원을 제한 나머지 60여만원을 용돈과 데이트 비용으로 사용한다. 한달에 두번 정도 주말이면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고향집을 찾기 위해 대구로 온다. 내려올 때는 KTX를 타지만 올라갈 때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비교적 싼 버스를 탄다.

김씨는 “방값과 생활비 등으로 대구 취준생(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서울 대기업에 취업하면 본래 연봉에서 500만원을 뺀 것이 진짜 연봉이라는 말이 있다”며 “내 경우는 집에서 전셋값을 해결해줘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월급의 상당 부분을 방을 얻고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써야 해, 경제적 여유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선배들을 보면 일찌감치 ‘이른 퇴직’까지 대비해야 할 것 같다”는 김씨는 “집값도 물가도 비싸 결혼을 하려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러모로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대기업 막연한 선호 ‘위험’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모두 “단순히 서울 대기업 사원을 우월하게 바라보는 주위 시선 때문에 대기업을 선호한다면 이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역 우수 중견기업인 제이브이엠의 경우, 전체 임직원 359명 중 281명, 78%가 지역 인재다.

박진홍 제이브이엠 기획전략팀장은 “제이브이엠은 지난해 기준 845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163억원을 올렸고, 현재 북미·유럽·중국 등 해외 33개국에 진출했으며, 더 많은 지역에 공격적으로 영업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서울 대기업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제이브이엠만의 복지 제도도 있으니 지역 인재들이 많이 지원하길 바란다”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대구 A기업의 조씨도 “비슷한 월급 조건과 같은 직종의 직장이 대구에 있다면 굳이 서울 대기업에 갈 필요가 없다”며 “인프라가 탄탄한 대구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젊은층이 대구를 떠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대구에 양질의 직장이 많지는 않으니 타지역으로 청년층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대구지역 기업의 월평균 임금 수준은 235만2천원으로 수도권 320만원, 전국평균 283만8천원에 비해 50만~80만원 정도 낮다. 중소 제조업 및 자영업 위주의 산업구조로 고용환경이 열악한 데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사무·전문·관리직과 같은 일자리 비율이 수도권(45%)에 비해 크게 낮은(35%) 실정이다.

김씨처럼 서울에 취직한 적지 않은 이들은 “연봉만 보고 서울로 가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며 “대구라는 연고지에서 일한다는 것은 엄청 큰 메리트다. 비슷한 직종의 비슷한 조건이라면 연고지를 선택하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방대생들이 지역 내 중소기업 취업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는 ‘수도권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더 비전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391명 중 27.6%로 가장 많았다. 이외에도 낮은 복리후생(14.1%)과 기대 이하의 임금 수준(13.3%)도 주요 이유로 꼽혔다.

반면, 지방근무를 선호하는 이유로는 응답자의 40.9%가 ‘수도권의 주거비,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고용노동부 조사)라는 답을 들었다. 이어 ‘지방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26.1%),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이 지방에 있어서’(13.5%), ‘가족이나 애인과 떨어져 생활하기 싫어서’(12.9%) 등의 이유를 꼽았다.

신인철기자 runchu@yeongnam.com

대구시, 연봉의 30% 채용장려금 등 中企 지원 온힘

지역 인재들이 머물게 하려면

정부가 중소기업에 일정기간 근무하는 직원에 대해 세제상의 혜택 등을 부여하는 유인정책을 쓰고 있지만 구직자들의 지역 중소기업 취업기피 현상은 여전하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대구 실업자 절반 이상인 2만4천명이 ‘일자리 미스매치’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생산직 취업 기피와 고용 당사자 간 임금 수준 불일치, 수도권 선호 현상에 따른 직장과 주거지의 불일치 등이 그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역의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우수한 인재가 유입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중소기업에 대한 행·재정상의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회사 이미지 제고 즉 회사 홍보나 채용 방법상의 선진화도 필요하다. 근로자가 장기재직할 수 있는 여건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대구시도 지역청년 인재의 역외 유출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 지역 우수기업 인사담당자와 지역 대학을 직접 찾아가는 리크루트 투어, 업체당 3천만원을 지원하는 청년고용 우수기업 지정, 지역 유망기업 유치 및 중견기업 육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월드 클래스 300’ ‘월드 스타 기업’ 등을 선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구시는 지역 간 임금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전문인력 채용장려금을 연봉의 최대 30%까지 지원하는 등 다각화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신진교 계명대 교수(경영학과)는 “대구 기업의 보수가 낮다 해도 서울에 비해 물가가 낮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에서 이득이 있고, 절차가 엄격하고 한 분야의 능력만 극대화하는 대기업 시스템보다 중견기업은 개인 역량을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진단했다.

또 “대기업의 경우 개인 능력을 평가받는 시간이 짧아야 5년이라면 중견 기업은 2~3년 이내에 확실히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신인철기자 runc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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