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돌·성혈 등 선사문화에 심취한 심후섭 전 달성교육장 인터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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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9   |  발행일 2015-05-29 제35면   |  수정 2015-05-29
“큰 바위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성혈 덮은 흙 손으로 파내며 전율”
대구 거석문화를 찾아서-性穴·선돌·선사시대路
20150529
심후섭 전 달성교육장이 지난 22일, 대구시 동구 송정초등학교 뒤 언덕에 있는 선돌을 살펴보고 있다.

초·중교과서에 작품 실린 아동문학가
나무 관련 책 5권이나 낸 나무전문가

43년 교직생활 마치고 올해 정년퇴임
대구문인협 수석부회장으로 인생 2막

‘세상에서 가장 ∼한 사람이 되는 법’
시리즈물 집필 구상중

“고3때 국사 선생님으로부터 거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돌에 대해 관심을 가졌어요. 고향이 청송 진보인데 초·중·고교를 거기서 마쳤어요. 우리 동네에도 선바위가 많았습니다. 바위 아래에서 놀다 깨진 사기그릇이나 토기파편을 줍곤 했지요.”

지난 21일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굴참나무 아래 고인돌 덮개돌에 수십 개의 성혈이 있다고 기자에게 제보한 심후섭 전 달성교육장(62)은 아동문학가이자 향토사가다.

“처음엔 그냥 돌구멍인가보다 했는데 그게 한두 개가 아니더군요. 구멍 속에 덮여 있는 흙을 손으로 파내면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너럭바위에 그렇게 많은 성혈이 있다니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론 신기했습니다.”

그가 성혈(性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때는 대구교대에 다니던 시절이다. 전북 순창군 고인돌 고분군에 여행을 갔다가 성혈을 보고 그때부터 큰 바위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일반적으로 고인돌 덮개돌이나 선돌에 성혈이 있습니다. 금포리뿐만 아니라 대구시 북구 동변동 뒷산인 학산 중턱 큰 바위에도 여러 개 있어요. 칠곡군 왜관읍 돌널무덤과 입석에도 성혈이 있고, 화원읍 화장사 요사채 앞 바위에도 있지요. 대구시 동구 송정초등학교 뒤 언덕에도 선돌 2개가 나란히 있습니다. 도로를 확장하면서 선돌을 마을 안쪽으로 옮겼는데 동심원 문양 같은 게 있어요. 눈으로 보면 잘 인식할 수 없는데 사진을 찍으면 뚜렷이 나타납니다.”

심 전 교육장은 40년간 초등학교 교직에 근무하다 올해 정년퇴임했다. 초임이 청송의 고향이었고, 나머지 교직생활 대부분을 대구에서 했다. 임지에 부임하면 먼저 학교 주변 마을의 자연과 역사에 대해 공부한 다음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설화나 민담을 채집했다. 2011년 달성군 현풍초등학교에 근무할 당시 일제강점기 일왕(日王)에게 충성을 강요 당하는 내용이 적힌 비석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바위에 흙이 덮여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글자가 쓰여 있더군요. 흙을 파내고 한자를 판독해보니 1940년쯤 만들었던 것이더군요. 영남일보에 보도되고 난 뒤 독립기념관에서 그걸 가지고 가면 안 되겠냐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문화재는 원래 그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더 빛을 발하는 겁니다.”

그는 나무전문가이기도 하다. ‘대구의 인물과 나무’를 비롯해 ‘나무도 날개를 달 수 있다’ ‘나무도 꿈을 꾼다’ ‘나무도 생각을 한다’등 나무와 관련해 다섯 권의 저서를 내기도 했다. 서울의 한 출판사가 그의 나무 책을 20여만부나 출간했다. 초등학교 국어책에 ‘세상에서 제일가는 정원사’란 제목으로 실리기도 했다. 이 밖에 그의 동시 ‘꽃눈’은 5학년 국어교과서에 있다. 음악교과서에도 그의 동시가 있다. 3학년 책에 있는 ‘외가길’과 중학교 2학년 음악책의 ‘아카시아꽃’도 그의 작품이다. 나무와 관련해 그는 대구지역에 흩어져있는 노거수의 족보를 거의 다 꿰고 있다.

“때죽나무는 떼중나무에서 유래됐습니다. 열매가 머리를 빡빡 깎은 중이 떼거리로 몰려오는 모양이라고 떼중나무였는데 나중에 때죽으로 바뀌었지요. 가죽나무란 이름도 가짜 중나무란 뜻의 가중나무(假僧木)에서, 참죽나무는 진짜 중나무란 뜻의 참중나무(眞僧木)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스님과 관련한 식물 이름 중에 중발바닥나물이나 중대가리풀이란 것도 있는데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밖에 대구의 선비, 대구의 효자, 열녀, 비각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책으로 출간했다. 대구지역의 전설과 민담 등 옛이야기에 대해 그만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강의도 줄을 잇는다. 달서도서관에선 ‘대구지방 설화의 교훈적 활용’을, 담수회에선 ‘대구유학의 원류를 찾아서’를, 금오공대에선 ‘영남선비’에 대한 특강을 하고 있다. 현재 대구향교 앞에 위치한 우리예절원의 원장이기도 하다.

그는 시골에서 태어나 청소년이 될 때까지 자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자연이 나의 스승’이라 한 교육운동가 페스탈로치처럼 자연이 그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 왔는데 문명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연이란 백지에서 도시문명을 스펀지처럼 흡수했지요.”

그는 소와 나무 외에도 최근엔 새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취재를 하고 있다.

“한고조, 기파조, 상상조, 불사조란 새를 들어봤나요. 중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새들인데 아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새와 관련한 사진을 많이 찍어왔습니다. 하하하.”

그가 문학을 시작한 건 부친이 별세하고 난 뒤부터다.

“손이 귀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에선 저를 ‘붙들이’라고 불렀어요. 건강하게 잘 자라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통음을 했는데 실수로 그만 다리에서 떨어져 병원에서 6개월간 신세를 졌습니다. 그때 ‘아, 이렇게 허망하게 살다 가면 무엇 하겠나’싶어 펜을 잡았지요.”

그는 1980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동시와 동화를 쓰다 동화에 전념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동화 ‘눈 내리던 날의 아버지’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등단한 뒤부터 동화집 ‘의로운 소 누렁이’ ‘미끼 없어도 잡을 수 있다는데’ ‘옛날 옛적 우리 할배 할매는’ 등 총 70여권의 저서를 냈다. 새벗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제1회 MBC창작대상 등을 수상하는 등 상도 많이 받았다.

심 전 교육장은 퇴직하고 난 뒤의 인생 2막이 더 바쁘다. 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집필을 구상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한 사람이 되는 법’시리즈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법’이고요, 둘째는 ‘힘 센’, 셋째는 ‘용감한’, 넷째는 ‘큰 부자가’ 등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고, 힘 센 사람은 ‘초컬릿을 반으로 나눠 반만 먹고 반은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용감한 사람은 ‘모르는 것에 대해 숨기지 않고 질문하는 사람’이고, 큰 부자는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이 밖에 ‘어른이 꼭 읽어야 할 100가지 새 이야기’와 ‘돌 이야기’도 포함돼 있습니다. 또 선비이야기 8권을 썼는데 4권을 더 써 1~12월까지 매듭을 짓고 싶습니다.”

지난 22일 심 전 교육장과 함께 대구시 동구 송정초등학교를 찾았다.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어린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그를 둘러싼 채 참새처럼 종알거렸다. 그는 일일이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기만점이었다.

“2007년 교장이 되고 난 후부터 매일 아이들보다 먼저 출근해 교문에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악수를 했습니다. 한 1년쯤 하다보니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울 정도가 되더군요. 점심시간에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식사를 했어요. 책읽기를 강조했습니다. ‘책 읽어서 성공한 사람’이란 책을 3권 냈어요. 왜 책을 읽어야 하나, 무엇을 읽어야 하나, 어떻게 읽어야 하나가 중요합니다. 전 아이를 보면 가장 좋습니다. 43년간 정말 행복했어요. 아이들이 달리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이들이 침묵하면 돌멩이가 말한다’는 말이 있어요. 젊은 시절엔 아이들에게 더러 매를 댔는데 참 미안해요.”

심 전 교육장은 교직에 처음 나갈 때 선친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후배 교사들에게도 꼭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입니다. 즉 화를 옮기지 않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과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된다면 내가 있는 곳이 모두 참되다는 것입니다.”

협찬=(주) 지오씨엔아이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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