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방’ 가는 노인들…“노인정과 비교할 수 없이 편하고 재미”

  • 최나리
  • |
  • 입력 2015-06-16 07:23  |  수정 2015-06-16 07:23  |  발행일 2015-06-16 제2면
하루 딸 수 있는 금액 5천원 정도
날씨 더워지면서 이용객 늘어나
도박 논란에 “경로당 오락 수준”
‘화투방’ 가는 노인들…“노인정과 비교할 수 없이 편하고 재미”
갈 곳 없는 노인들이 기원, 사무실 등을 개조한 일명 ‘노인 화투방’으로 몰리고 있다. 노인들이 화투방에서 화투를 치는 모습.

지난 12일 오후 3시 대구시 중구의 한 기원,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러 개의 테이블 위에 바둑판과 바둑알 대신 붉은색 화투패가 놓여있던 것.

테이블 앞에는 얼핏 봐도 60대는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 수십명이 자리를 잡고있었다. 이들은 곱게 깔린 녹색천 위에 연신 화투장을 내리쳤다. 일부 노인은 안쪽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하거나 담소를 나눴다.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노인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작년 1월에 문을 연 일명 ‘노인 화투방’이다. 주고객층은 60~70대로, 입소문이 나면서 이용객이 차츰 늘고 있다. 인기 비결은 적은 비용으로, 장시간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입장료 2천원만 내면 커피, 율무차 등 자판기 음료를 무한대로 마실 수 있다. 또 원할 경우에만 화투를 치면 된다. 종종 삶은 감자나 김치전 등 간식도 제공된다.

운영시간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하루 4시간이다. 동절기에는 한 시간 앞당겨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운영한다.

친구의 소개로 단골이 됐다는 장득인씨(가명·79)는 “집에 있으면 가족한테 눈치보이고 미안하다. 주말에는 산에 가기도 하지만, 평일엔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일주일에 3~4번은 찾는다”며 “노인정도 가고 복지관도 가 봤지만, 이곳만큼 편한 장소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화투방은 날씨가 무덥거나 추울때 이용객이 급증한다. 이날도 낮 최고기온이 33℃까지 오를 정도로 무더워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화투방 업주는 “하루에 평균 30~50명이 오는데, 여름이나 겨울에는 방문객 수가 늘어난다. 밖에서 놀기 힘든 노인들이 실내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틀 뒤 찾은 중구의 또 다른 ‘노인 화투방’ 상황도 비슷했다. 수십명의 노인이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앉아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화투 외에 바둑도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화투방이 늘면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화투방이 불법도박 단속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노인들은 화투방은 건전한 여가시설 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종종 화투방을 찾는다는 서철수씨(78·대구시 남구)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오히려 공원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화투판이 액수도 크고 불법에 가깝다”며 “이곳에선 하루에 딸 수 있는 최대 금액이 5천원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화투놀이”라고 주장했다.

화투방 업주 A씨 역시 “수개월 전에는 경범죄 혐의로 입건됐다. 하지만 경로당에서 노는 수준의 오락으로, 장소만 다를 뿐”이라며 “화투가 치매 예방에 도움된다고 하는데, 화투방을 단속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합법적인 기준을 명시해 제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사진=최나리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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