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이라도…” 비장한 삭발에 군민 5천여명 뜨거운 응원

  • 조규덕,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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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6 07:26  |  수정 2016-08-16 07:26  |  발행일 2016-08-16 제5면
■ ‘사드반대’ 삭발식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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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성주군 성주읍 성밖숲에서 열린 ‘사드철회 평화 촉구 결의대회’에서 908명의 대규모 삭발식이 진행된 가운데 한 여성이 삭발에 동참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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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철회 평화 촉구 결의대회’에서 행위예술가 이정씨가 삭발한 성주군민의 머리카락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나비를 그리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靑 넘어 백악관까지 들리게”
주민 모두가 결의에 찬 얼굴

불볕더위에도 이탈주민 없어
투쟁의 순간 모아 사진전 열어

자른 머리카락 대형 붓 묶어
평화의 상징 ‘파란나비’ 그려


◇…15일 오후 3시 ‘사드 철회 평화 촉구 결의대회’ 장소인 성주군 성주읍 성밖숲. 결의대회 시작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수많은 주민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황금연휴의 마지막 날을 즐기고 있을 시간이지만 ‘사드 배치 반대’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두른 군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결의에 차 있었다. 주민들은 성밖숲에 있는 59그루의 왕버들 아래에서 저마다 사드와 삭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가한 주민 수는 5천여명.

◇…식전 행사로 열린 성주연합풍물패의 길놀이 공연에 이어 만장 130개, 작은 깃발 500여개가 입장하자 분위기가 고조됐다. 오후 4시, 드디어 김안수 투쟁위 공동위원장의 ‘삭발에 임하는 선언서’ 낭독과 함께 삭발식이 거행됐다. 삭발 참가자는 모두 908명. 이들의 목에는 번호가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단체 삭발을 돕기 위해 성주와 인근 지역 미용사 100명과 자원봉사자 30명이 동원됐다. 삭발을 하는 동안 성주군합창단은 ‘애국가’ ‘고향의 봄’ 등을 연주했고 이어 대국민 호소문, 대통령에게 올리는 호소문, 사드 철회 평화 촉구 결의문이 차례로 낭독됐다.

◇…가족과 이웃의 삭발 모습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했다. 일부는 눈을 감았고, 일부는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후 4시44분 한국기록원 관계자가 삭발식 공식 종료를 알리자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삭발을 마친 참가자들은 중앙무대 앞쪽에 마련된 자리에 차례로 앉았다. 출구에서 기다리던 주민들은 열렬한 응원전을 펼쳤다. 일부 주민은 ‘사드 배치 결사 반대’ 구호를 계속 외쳤고, 참가자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격려하는 주민도 많았다. 여성 삭발 참가자 주영미씨는 “나의 삭발로 사드 배치가 철회된다면 100번이라도 삭발할 수 있다”고 결의를 드러냈다.

◇…투쟁위는 사드 배치 철회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와 체험 행사를 열었다. 성밖숲 한 부스에서는 촛불집회부터 상경집회, 유림단체 상소문 전달, 주요도시 1인 시위까지 투쟁의 순간들을 모은 ‘사드 배치 철회 사진전’이 열렸다. 노트북 6대를 준비해 그동안의 집회 관련 동영상도 상영했다. 이 밖에 고무신 나비 그리기, 표어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포토존 등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코너도 마련됐다. 주민 김모씨는 “지난 한 달여 성주군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군민이 더욱 똘똘 뭉쳐 사드를 반드시 막아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 불볕더위 때문에 투쟁위에는 비상이 걸렸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생수, 모자, 빵, 건빵 등을 비닐봉투에 담아 나눠줬다. 집회장 군데군데 시원한 생수를 마련해 두었고, 대형 선풍기도 여러 대 가동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가 끝날 때까지 집회장을 이탈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삭발봉사자로 참여한 이지현씨(46·성주읍)는 “매우 무더운 날씨였지만 평소와는 다른 엄숙한 마음으로 삭발식에 임했다. 성주지역 미용사 모두 마음으로 사드 배치 철회를 간절히 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주읍에서 서예가로 활동하는 이정씨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머리카락 행위예술’을 선보였다. 이씨는 주민들이 삭발한 머리카락으로 대형 붓을 만들어 가로 5m에 달하는 흰 종이에 ‘성주군민이 힘을 합하면 무쇠도 자를 수 있다’라는 뜻을 담은 ‘동심기리단금(同心其利斷金)’이란 글귀와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 나비 그림을 그렸다. 이씨는 “사드 반대 투쟁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주민들이 삭발하고 남은 머리카락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자진해서 (퍼포먼스를) 하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삭발 참가자 가운데 815번째로 삭발을 한 주인공은 성주읍 이신곤씨(47). 그는 지난달 15일 황교안 국무총리 방문 당시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항의하며 자신의 트랙터를 끌고 왔던 인물이다. 그는 “타 지역 사람들이 성주에 와서 응원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성주 주민들이 목소리를 더 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목소리가) 청와대를 넘어 백악관까지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여 이웃 주민이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과거 무명의 백성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부지깽이를 들고 싸웠던 의병정신이 이번 908명의 삭발식에 깃들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주=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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