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 펭귄마을 엿보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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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8   |  발행일 2017-12-08 제34면   |  수정 2017-12-08
폐품으로 골목 치장하며 탄생 ‘펭귄마을’
한 주민의 걸음걸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
펭귄시계점 등 골목 자체가 노천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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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펭귄마을 골목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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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자신의 텃밭과 골목을 동민들과 함께 각종 폐기물로 예쁘게 꾸며 양림9동을 펭귄마을로 거듭나게 하는 데 일조한 촌장 김동균씨.

난 광주에 와서 두 동네를 심층적으로 파고 싶었다. 남구 양림동과 동구 동명동. 대구도 골목의 고장인데 광주도 그랬다. 그 골목에 박힌 징한 정서를 읽어내지 못하면 광주의 속살을 만날 수 없다. 광주의 맛이 광주의 멋에서 시작된다면, 단연 그 멋은 문화예술에서 발아될 것이고, 그래서 나는 두 골목에서 ‘광주예기(光州藝氣)’를 품어보려고 했다. 광주 신도심은 솔직히 너무 위세당당하다. 광주스러움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양림동은 양림산과 사직산 아래 있는 작은 마을. 버드나무가 울창해 ‘양림(楊林)’으로 불렸다. 100여년 전 벽안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교회를 짓고 선교의 터를 다졌다. 광주기독병원, 호남신학대, 수피아여고 등의 역사도 이때 시작된다. 이때 지어졌던 우일선 선교사 사택(1908년), 오웬기념관(1914년)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양림동 예술가들로는 ‘가을의 기도’로 잘 알려진 시인 김현승,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 ‘봄비’의 시인 이수복 등이 대표적이다. 양림동의 인물들을 보려면 마을 복판에 있는 ‘다형다방’을 찾아가면 된다. 양림동의 상징처럼 알려진 이곳은 작은 전시관이자 찻집이다. 커피를 좋아했던 시인 김현승의 호를 따 다형이라 했다.

카우보이 모자를 즐기는 주민 김동균씨. 이제 펭귄마을의 유명인사다. 다들 ‘촌장’이라 한다. 닉네임은 ‘펭귄아저씨’. 2013년 폐품과 골동품을 이용해 만든 작품을 하나둘 자기 텃밭과 담벼락에 걸기 시작했다. 여러 예술가와 도심재개발사업이 가세되면서 골목은 노천 전시관이 됐다. 펭귄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펭귄시계점. 다양한 모양의 고장난 시계들이 벽에 주렁주렁 매달려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그 골목 중심부에 장승처럼 서 있는 헬멧과 골프채를 잡고 있는 펭귄 캐릭터가 웃음을 자아낸다. 펭귄마을이란 이름은 마을 주민 이모씨의 뒤뚱뒤뚱 걷는 걸음걸이 때문에 탄생했다.

영남일보도 올해 ‘달빛소나기’란 대구·광주교류행사 일환으로 펭귄마을에서 행사를 벌인 바 있다. 하지만 골목 만들기에 대한 호흡 조절도 필요할 것 같다. 요즘 관광객들은 양림동의 역사문화보다는 핫플레이스로 부상된 ‘펭귄마을’에서 인증샷을 찍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길처럼 땅값이 폭등했다. 보다 못한 김민희 양림펭귄마을협동조합 대표이사가 나섰다. 서울에서 잘나가던 목공예전문가인 그녀는 25년 만에 귀향해 ‘민희공방’을 차리고 귀신집 같은 기와집을 무인카페 ‘달콩이 휴게소’로 리모델링했다. 여긴 원두커피를 우습게 본다. 드라마 ‘전원일기’로 뜬 ‘양촌리 달달커피’를 1천원에 판다. 거길 나와 추억의 불량식품 상점을 운영하는 구선임 할매집으로 갔다. 할매가 달고나를 하나 내민다. 요즘 딸 펭희씨가 벽에 적어놓은 자작시 ‘펭귄로드’와 ‘펭귄마을의 봄비’가 즐거움을 준다. 시 마지막에 적은 자기 소개 글귀가 웃음을 자아낸다. ‘이 집 담벼락 주인 딸내미’.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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