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없어 비닐움막 지은 80대 노인들 “갈 곳 마땅치 않네요”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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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5 07:28  |  수정 2018-01-25 07:31  |  발행일 2018-01-25 제6면
고령사회 대비 안 된 대구 <상>
20180125
노인들은 ‘100세 시대’를 축복으로 받아들일까? 지난 9일 대구시 서구 비산2·3동 근처에서 만난 80대 할머니들은 사비를 들여 움막을 지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 생활이 고단하고 세상이 팍팍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 10% 이상)에서 고령사회로 가는 데 17년이 걸렸다. 프랑스는 115년, 일본의 경우 26년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셈이다. 장기간에 걸쳐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고령사회 진입에 대한 대책이 늦었다. 고령화는 농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대구와 부산 같은 대도시에도 고령화 그늘이 이미 드리워졌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세계적 이슈인 고령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07년 고령친화도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고령친화도시란 나이가 들어서도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건강하며 사회 및 경제적 참여가 자유로운 도시환경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중화장실 같은 외부환경에서부터 일자리와 보건영역까지 범위가 매우 넓다. 7년 뒤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대구도 고령화 추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함께 세심한 정책설계를 펼쳐야 할 시점이다.

서구 노인비율 대구 평균 이상
비산2·3동 주민 25.5% 달해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 예상
노인 건강검진 비율은 높지만
미치료율 전국 평균보다 높아
여가·문화생활도 상대적 미흡


◆“나이 들면 아프다”는 말이 더 아프다

지난 9일 오전 10시30분쯤 대구시 서구 비산2·3동 길자락. 한 빌라 건물 앞의 3.3㎡(1평) 남짓한 허름한 움막 안에 머리카락이 허옇게 세거나 허리가 굽은 할머니 2명이 벽에 기대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두꺼운 비닐을 덧댄 이 움막은 이 주변에 사는 80대 노인 12명이 돈을 조금씩 보태 지었다. 근처에 경로당이 있지만 거리가 꽤 멀어 임시로 추위를 피해 모일 곳을 마련한 것이다. 움막에 모이는 노인 연령은 모두 80대로, 오전에 자택에서 나와 끼니를 해결하고 오후 5시쯤 귀가한다.

이곳을 찾는 이복희 할머니(83)는 “집에 있으면 심심하고, (거동이 불편해) 집밖으로 멀리 나가는 건 무리다. 여기서 겨울을 보내고 여름이 되면 근처 건물 그늘 밑에서 더위를 피한다. 노인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김봉득 할머니(84)는 “나이가 들면 치아가 부실해져 질기고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식사가 제한적인데 치과 진료를 받으려니 돈이 비싸다.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론 턱도 없다. ‘나이 들면 아프다’는 말이 더 아프다. 노인이 되면 삶이 고달프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비산2·3동은 전체 주민 중 25.5%가 노인이다. 서구 평균(18.1%)에 비해서도 7.4%나 높다. 비단 이곳만 노인 비중이 많은 게 아니다. 서구는 노인 비율이 20%를 넘는 동이 총 4곳이며, 나머지 동도 대부분 20%에 육박한다. 문제는 노인 비율이 높아지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서구의 노인 비율은 2년 전인 2015년 15.5%(12월 기준)에서 2017년 18.1%(12월 기준)로 2.6%나 올랐다.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과 부산 등 8개 대도시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둘째로 높은 대구는 지난해 12월 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15년 12.7%(31만2천명)보다 1.3%(3만5천명) 증가해 14%(34만7천명)까지 이른 것.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른 도시는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0년 ‘고령친화도시’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2013년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크워크(GNAFCC) 회원이 됐다. 이어 전북 정읍, 경기도 수원시, 부산시가 가입했다. 대구도 고령친화도시로의 변화가 시급하지만 여러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다.

◆대구, ‘보건·교통안전·노동·여가’ 전국 평균 밑돌아

2014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강검진을 받은 대구지역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은 90.5%로 전국 평균(83.8%)보다 6.7%나 높았다. 하지만 병의원과 치과 미치료율(본인이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진료 받지 못한 비율) 둘 다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대구지역 노인 병의원·치과 진료 미치료율은 각각 11%, 20.3%로 전국 평균(8.8%, 18%)을 밑돌았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대구지역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평소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이는 29.3%로 전국 평균(32.4%)보다 낮았다. 건강이 나쁜 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0.6%로 전국 평균(36.4%)에 비해 4.2% 높았다.

하지만 의료서비스에 대한 노인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2012년 대구시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구 61.6%가 의료서비스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건강상태에 대한 관심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지만 정작 건강에 이상이 발견돼도 치료는 받지 않은 것이다.

대구의 병원 수는 타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다. 2015년 기준 대구지역 인구 1천명당 병원 수는 1.4개로 전국 평균(1.2개)보다 0.2개 많았다. 대구의 노인의료복지시설은 총 258개(노인요양시설 93개,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165개) 전국에서 둘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안전도 미흡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대구지역의 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는 총 1천970건으로 서울과 부산에 이어 셋째로 높다. 전체 인구가 대구보다 100만명가량 많은 부산과 50건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전체 인구수 대비 50만명 많은 인천(1천49건)에 비해 노인 교통사고 건수가 921건이나 많이 발생했다.

노인들의 일자리도 많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대구지역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고용률은 26.2%로 전국 평균(30.7%)보다 4.5% 낮았다. 2010년부터 7년 동안 전국 평균보다 최소 4.9%, 최대 7%나 차이가 났다.

대구지역 노인들의 여가·문화생활도 타 지역에 비해 낫지 않았다. 2014년 노인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지역 노인들의 경로당 이용률은 13.9%로 전국 평균(25.9%)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향후 이용희망률 역시 전국 평균(34.2%)보다 5.5% 밑도는 28.7%에 그쳤다. 경로당 이용 만족도도 낮았다.

대구에서 컴퓨터 및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노인은 13.2%로 전국 평균(17%)보다 3.8% 낮았다. 대구지역 노인의 4/5 이상이 휴대폰을 소유하고 있으나, 이 중 스마트폰 소유자는 10.4%로 조사됐다. 이 수치도 전국 평균(13.7%)을 밑돌았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대구의 1인당 도시공원 조성면적은 4.9㎡로 제주(3.1㎡)를 제외한 나머지 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좁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공원법의 1인당 공원면적 규정(6㎡ 이상)을 밑돌고, 세계보건기구 권장 1인당 공원면적(9㎡)에는 한참 못 미친다.
글·사진=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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