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촌 ‘新먹방 특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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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33면   |  수정 2018-03-09
마지막 황손 이석 한옥촌 영구 입촌 후 붐 일조
전동스쿠터·왕발통 몰고 다니는 한복행렬 풍경
기생옷 버전으로 코스프레한 젊은 남성도 급증
꼬치와 생맥주 든 모습 ‘꼬맥’‘한맥’ 불리기도
20180309
일제강점기 전주를 파고드는 일본 세력에 맞서 토박이들이 짓기 시작한 풍남동·교동 일대의 한옥마을. 쇠락기를 걷다가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정해 개발의 기치를 내걸었고 현재 연간 1천여만명이 찾는 핫플레이스 도심관광지가 됐다. 현재 650여 채의 한옥이 밀집돼 있고 2004년 마지막 황손 이석씨가 승광재에 영구 입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 경복궁에서 바람을 일으킨 한복코스프레는 6년 전쯤 한옥촌에 상륙했다. 숱한 한복대여점은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제 한옥촌은 꼬치와 한복 인증샷이 새로운 트렌드문화로 정착했다(아래 사진).

보는 만큼 아는 게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안다는 건 일종의 ‘관심’. 그 관심은 자기 인식의 한계를 감지할수록 더욱 인문학적으로 작렬하게 된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소읍이라도 살갑게 파고들면 도처가 배울 거리. 하지만 소비적 욕망뿐인 사람에게는 1천년 이상의 고도(古都)를 보여줘도 따분해 하며 “볼 게 아무것도 없다”고 투덜댈 것이다.

음식만 아는 것과 음식문화를 동시에 아는 것은 천양지차. 특정 음식을 키워낸 배후를 알면 그 음식이 더 각별해 보일 수밖에 없다. 전주음식도 그럴 것이다.

아무튼 난 방금 한국 비빔밥문화의 신지평을 열었던 전주(全州)에 도착했다. 요즘 대구의 대다수 관광객이 방천시장 김광석길로 모이듯 전주 관광객도 일단 수백 채의 한옥이 몰려 있는 ‘한옥마을’로 온다. 한옥 650여 채와 비한옥 171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는 을사늑약(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주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성문 밖에 살던 일본인들이 양곡수송을 위해 전주와 군산 사이를 잇는 ‘전군가도(全群街道)’를 개설할 때 성곽이 강제 철거된다. 그들은 점차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거처를 옮겨왔다. 이에 한국인들은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교동과 풍남동에 한옥촌을 짓기 시작한다. 광복 후 한옥촌은 쇠락을 면치 못한다. 그러다가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된다. 기사회생된 것이다.

한옥촌 붐에 일조한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이다. 그가 이 한옥촌에 영구 입촌한 것. 2000년 들어 조선을 일으킨 태조와 마지막 황손이 각기 다른 포스로 전주로 들어온다. 2008년 10월23일 서울에 있던 이성계의 어진(御眞·임금 초상화)이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풍남동 경기전(慶基殿)으로 옮겨져 온다. 경기전은 태조 어진을 봉안한 전각. 국보 어진이 경기전에 오자 덩달아 어진박물관도 생겨난다.

하지만 황손의 전주 입성 과정은 너무나 가련했다. 1941년 고종의 차남 의친왕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수였다. 1967년 ‘비둘기집’으로 주목받지만 생활고에서는 전혀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비관해 몇 번 자살 시도까지 한다. 딱하게 여긴 서울시에서 그를 위해 북촌 한옥마을의 민박 방 한 칸을 내밀었다. 그는 ‘생색내기용’이라 생각해 거절해버렸다. 그러다가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의 주선으로 2004년 10월 전주한옥촌에 입택한다. 전주시가 그를 위해 ‘승광재(承光齋)’란 한옥을 지어준다. 승광재는 이제 전주의 상징적 포토촌이다.

여기 오면 실감하게 되는 이 한옥촌만의 대표적 풍속도가 있다. 두 명 중 한 명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꼬치를 먹고 있다. 일명 문어를 갖고 요리한 ‘문꼬치’. 흥미로운 건 이들의 차림새다. 한옥촌에 오면 다들 한복대여점으로 몰려간다. 전통한복에서 한참 멀어진, 금박을 알록달록 극채색으로 박아넣은 퓨전 한복이다. 그들은 꼭 잘 치장한 ‘바비인형’ 같다. 한복 때문에 여기도 번쩍 저기도 번쩍. 이제 한복족 때문에 ‘한복마을’로 변해버린 것 같다. 그 힘을 활용하기 위해 전주시가 2012년 제1회 ‘한복데이’를 만든다. 한복대여 특수가 일면서 무려 30여 업소가 몰려들었다.

서울 경복궁에서 한복입기 신드롬을 주도했다. 한복을 입으면 고궁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흐름이 6년 전쯤 이 한옥촌에도 상륙한다. 여기에 오면 외모의 변별성이 싹 사라진다. 한복이 부족한 외모를 메이크업시켜 주기 때문이다. 옷을 입으면 다들 ‘미소쟁이’. 전동스쿠터와 왕발통을 몰고 다니는 한복의 행렬. 그 몸짓이 많은 걸 생각게 한다.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처음엔 젊은층이 한복을 주도했는데 이젠 3대가 커플룩 차림으로 돌아다닐 정도다. 심지어 ‘기생옷 버전’으로 세몰이 하는 20대 남성들도 폭증한다. 한 손엔 꼬치, 또 한 손에 생맥주. 그들이 든 맥주는 이제 ‘꼬맥’ 혹은 ‘한맥’으로도 불린다. 세대를 초월한 ‘한복 코스프레(캐릭터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행위) 광풍’이랄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조금은 씁쓸한 한옥촌만의 트렌드랄까. ☞ W2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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