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영화감독이 만든 드라마 '방법'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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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7   |  발행일 2020-03-27 제39면   |  수정 2020-03-27
TV로 돌아온 영화인들, 토속신앙과 SNS 결합 신선한 충격

방법(연상호.극본-김용완.연출)_포스터
tvN 월화드라마 '방법'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극장가를 찾던 관객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몇몇 영화관들은 임시 폐점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영업을 하고 있는 곳도 평소 가장 많은 관객이 붐비는 시간대에 가도 마치 평일 조조 시간대를 보는 것처럼 관객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 많던 관객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바로 OTT(Over-The-Top)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대표적인 OTT 업체가 넷플릭스다.

나 역시 코로나19로 미리 잡혀 있던 행사나 강연이 모두 취소되면서 덕분에 개봉 때 챙겨보지 못했던 영화와 주문해 놓고 펼칠 엄두를 못냈던 책들을 하릴없이 보거나 읽고 있다. 특히 TV 드라마를 안 본지가 상당 기간 흘렀는데 그건 같은 이야기를 배우들만 바꿔서 주구장창 틀어대며 PPL만 난무하는 현장을 보고 있는 게 적잖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최근에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꼬박꼬박 챙겨본 드라마가 있었으니, 얼마 전 종영한 '방법'이다.

연상호.감독
드라마 '방법'에서 극본을 맡은 연상호 감독(사진 왼쪽)과 연출을 맡은 김용완 감독.

'방법'은 방영 전부터 여러 이유로 화제를 모았는데, 단연 주목을 했던 게 바로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들이 영화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극본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상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애니메이터로 스튜디오 다다쇼의 대표로 있을 당시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같은 문제작들을 내놓아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무엇보다 그는 '부산행'(2016), '염력'(2017)으로 한국 영화 상상력의 지평을 넓힌 바 있다.

연출을 맡은 김용완 감독은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영화동아리 '소나기'에서 활동하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독립영화 제작 과정을 수료하고 상업영화 연출부와 단편영화 제작을 맡으며 '연애세포'(2014), '우리 헤어졌어요'(2015) 같은 웹 드라마를 만들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배급해 화제를 모았던 '챔피언'(2018)으로 첫 상업영화 데뷔를 마쳤다.


영화 '부산행' '염력' 연상호 감독
'챔피언' 김용완 감독과 의기투합
tvN 월화드라마 '방법' 극본·연출
배우·스태프도 영화계 사람들 중심

인간이 품고있는 저주의 마음 이용
거대악 맞서는 사람들 이야기 그려
입소문 타고 마지막회 높은 시청률
'시즌2' 제작 이어 영화로도 진행중



출연한 주요 배우들 역시 TV보다는 영화에 주력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배우 정지소는 구혜선 감독의 '다우더', 박훈정 감독의 '대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출연했다. 특히 '기생충'의 다혜 역으로 정지소를 기억하는 관객들은 '방법'의 소진 역으로 나온 모습에 놀랐을 것이다. '방법'은 정지소가 성인이 되고 첫 주연을 맡는 작품이기도 해 더 각별하지 않을까.

대구 출신이기도 한 배우 엄지원은 곽경택 감독의 '똥개', 이준익 감독의 '소원', 이민재 감독의 '기묘한 가족'에, 배우 성동일은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 김정훈·이언희 감독의 '탐정' 시리즈, 김홍선 감독의 '변신'에, 배우 조민수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권칠인 감독의 '관능의 법칙', 박훈정 감독의 '마녀'에 출연하며 탤런트보다 영화배우로 활약했다. 특히 조민수는 '방법'으로 무려 7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법'은 연출과 극본을 맡은 두 감독, 주연을 맡은 배우들 외에 스태프 가운데 다수가 영화 현장을 경험한 이들이라고 한다. 나 역시도 시청하는 내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에 빠졌다.

그렇다면 방법이란 무엇인가. 드라마에서는 '헐뜯을 방(謗)'을 써서 '謗法'이라고 한자어를 쓰고 '사람을 저주해서 손발이 오그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6세기 조선 어문학자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에 ' '이라고 쓰고 '방법할 염'이라 훈음을 달아놓았다. '염( )'은 다른 사람에게 재앙을 내려달라고 귀신에게 기원하는 저주를 뜻하는데, 요나라에서는 군사가 출정하기 전에 암수 사슴 한 마리씩을 제물로 바쳐 적에게 재앙을 내려달라고 신령에게 기원하는 염제( 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방법'은 인간이 품고 있는 저주의 마음을 이용하려는 거대 악과 그에 맞서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올곧은 신념과 행동만으로 불의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기자 진희는 권력의 횡포 앞에서 무력감과 증오심을 동시에 느낀다. 그런 진희 앞에 저주의 능력을 지닌 10대 방법사 소진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드라마 제작진은 기획 의도에서 "인류가 현세에 존재한 이후로, 저주는 인간사회의 어둡고 깊은 곳에 함께 있어왔다. 사람들은 종교·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해왔다. 바야흐로 클릭 한 번만으로 증오심을 표출할 수 있는 시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따돌림, 욕설, 혐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심지어 삶조차 포기한다. 보이지 않는 폭력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방법'이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방증하는 동시에 각자의 어두운 마음속을 엿볼 수 있는 곁불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작진의 의도가 제대로 통한 걸까. '방법'은 '한국형 오컬트'라는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초반 2~3%대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이후 입소문을 타고 마지막화는 시청률 6.7%를 거뒀다. 이는 tvN 월화드라마 역대 시청률 5위에 달하는 기록이다. 동양의 굿이나 부적 같은 토속신앙과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이나 SNS를 결합한 신선한 시도가 돋보였다. 여기에 주연을 맡은 네 배우들의 열연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섬세한 엄지원, 광기 어린 악역의 성동일, 신들린 굿판 연기를 펼친 조민수, 악랄함과 순수함을 넘나들던 정지소의 모습은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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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연상호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불특정 인물을 혐오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에서 드라마가 출발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 각각의 캐릭터를 곱씹어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이곳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방법'을 소개하며 시청률이 3%를 넘으면 시즌2를 제작하겠다고 했다. '방법'은 현재 시즌 2뿐만 아니라 영화화도 진행 중이란다. 바야흐로 '초자연 유니버스'의 시작이 열린 셈이다. 나 같이 사실상 자가격리 중인 '드알못'(드라마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방법'을 주목하시라.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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