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기레기와 언론중재법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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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6   |  발행일 2021-09-16 제23면   |  수정 2021-09-1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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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 경북부장

오는 27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다. 악법이라고 규정하고 폐지를 외치는 쪽과 밀어붙이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개정에 찬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동안 언론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측면이 큰 것 같다. 그러나 지금처럼 어떤 목적을 두고,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언론중재법을 두고 생각나는 단어가 '기레기'다. 진실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일단 터트리고 보자는 '낚시성 폭로'에 대해 국민들이 보여주는 언론과 기자에 대한 인식이 함축된 말이다.

국민의 언론중재법에 대한 감정이나 '기레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폭로성 기사로 인해 사건 당사자가 피해를 입었지만 구제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진실이 밝혀져도 처음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있을 정도로 정정보도를 해 주지 않는다. 민사소송을 통해 승소하더라도 경제적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허위나 조작 보도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언론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신뢰를 잃었다고 해서 여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이 옳은 것은 아니다. 여당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몇몇 조항들을 보면 언론개혁 의지를 담았다기보다는 언론자유에 재갈을 물리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변호사를 비롯해 언론학자 등 많은 전문가들도 현재 여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에 대해 말들이 많다. 가장 큰 화두인 고의·중과실 보도에 대한 피해 보상액을 손해액의 5배 이하까지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도 한다. 여당은 언론보도 피해 구제를 현실화하겠다는 표면적 이유 아래에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언론사와 기자에게는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된다. 기자는 제보나 정보를 바탕으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기에 처음부터 100% 완벽하게 실체와 내용을 갖추기 어렵다. 처음 문제 제기는 비리의 10%가, 1%가 될 수도 있다. 많은 권력형 비리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은 하나의 단서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기사를 완성하고 비리의 실체를 밝혀낸다.

지금의 언론중재법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기자들은 누군가의 비리를 세상에 터트릴 수 없다. 10%의 제보를 기사화하했을 때 기자와 언론사는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제기한 '고의적인 언론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에 따라 한순간에 가해자가 되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오히려 선량한 피해자로 둔갑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5배 이하까지 정해 놓은 손해배상액은 기자들의 취재에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국민들의 불만을 부추긴다. 언론중재법이 여당이 저지른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 추진되는 것인지, 국민들의 진정한 알권리를 위해 추진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바츨라프 하벨은 "기대감을 높이면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당은 언론중재법으로 국민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구제하고 가짜뉴스를 없앨 수 있다고 기대감을 높이고 있지만, 어떤 목적하에 급조된 법은 국민들을 실망시킬 뿐이다.

분명 언론중재법도 여당이 원하는 대로 기자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방향으로 통과될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어떤 위험과 고난에 처할지라도 자신에게 할 일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펜을 들 것이다.
전 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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