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추 금요단상] 만어산에서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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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1   |  발행일 2022-03-11 제33면   |  수정 2022-03-11 08:22
만어사 미륵전 미륵바위 향해
1만마리 물고기가 돌로 변한 '만어석' 돌강
오랜만에 꾼 기분 좋은 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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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만어산 만어사 앞 산비탈에 펼쳐진 만어석(萬魚石). 동해 물고기들이 이곳으로 올라와 크고 작은 바위로 변했다는 설화가 전하는 암괴류(巖塊流)로, 축구장 넓이의 16배 정도 된다.

한때는 내가 날아다니는 꿈을 많이 꾸었다.

날개로 나는 것은 아니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 난다. 두 다리를 굽힌 뒤 바닥을 구르며 하늘로 박차고 올라 허공을 날게 된다. 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느낌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빠르게도 움직일 수 있다.

이런 꿈을 몇 년 전에는 한동안 종종 꾸었다. 날아다니는 곳은 아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낯선 곳이었다. 그리고 항상 혼자였고 누구와 같이 날지는 않았다. 꿈을 꾸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요즘은 이런 꿈을 꾸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다.

얼마 전 밀양 만어산(萬魚山) 만어사(萬魚寺)에 다녀왔다. 따뜻한 날 이곳에 오르니 꿈속인 듯했다. 만어사는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만어산(해발 670m) 정상 아래에 만어사가 있고, 그 아래에 산비탈을 따라 '암괴류(巖塊流)', 말하자면 '돌강'이 넓게 펼쳐져 있다. 너비는 일정하지는 않지만 100m 정도, 길이는 700m 정도 된다. 면적은 축구장 16개 정도 넓이 되는 11만5천149㎡. 검은색의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펼쳐져 있다. '천연기념물 제528호 만어산 암괴류'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바위 위를 건너다니기도 어렵지 않다.

이 보기 드문 '돌강'은 동해의 용과 수많은 물고기들이 불법(佛法)의 감화를 받고 이곳으로 올라와 바위로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서려 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다.

만어산은 옛날에는 자성산(慈成山)으로도 불렸다. 이 일대를 다스리던 가야 수로왕 때 일이다. 당시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독룡(毒龍)이 살고, 자성산에는 악귀인 나찰녀(羅刹女) 다섯 명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서로 왕래하고 교접하면서 때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져 4년 동안이나 농사를 망치게 되었다. 왕이 주술로 막아보려 했지만 효과가 없자 부처에게 설법을 청했다. 부처의 설법을 들은 이들이 오계(五戒)를 받게 되면서 폐해가 없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동해의 용과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찾아와 돌로 변해 경쇠 소리를 내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런 설화가 더해진다.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나온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죽을 때가 되자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수많은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그들이 멈춘 곳이 만어사다. 이곳에서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바위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들 또한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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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 미륵전에 모셔진 미륵바위.

돌강 가장 위에 있는 미륵바위는 높이가 5m 정도인데, 고래가 물 위로 머리를 내민 모습이 연상된다. 이 미륵바위는 만어사 미륵전에 봉안돼 있다. 2층 전각을 지어 자연석인 이 미륵바위를 미륵불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미륵전 앞마당에 서면 1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미륵바위를 향해 돌로 변한 '만어석(萬魚石)' 돌강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 만어석 중에는 두드려보면 쇳소리가 나는 바위가 곳곳에 있다. 조선 세종 때 이를 채굴해 악기를 만들었으나 음률이 맞지 않아서 폐지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동해의 수만 마리 물고기들이 용을 따라 낙동강을 지나 밀양 만어산으로 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오랜만에 꾸어본 기분 좋은 '백일몽(白日夢)'이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과학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하던 신화와 전설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필요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과학만능·물질만능적 사고가 행복한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오히려 우리의 삶을 각박하게 하고 정신적 허기를 더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밥만 먹고살 수는 없다. 배 부르고 필요한 물건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지도 않다. 신화나 설화가 오히려 더 필요한 시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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