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픽토리텔링 大選; 거짓을 이야기하다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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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7   |  발행일 2022-03-17 제23면   |  수정 2022-03-1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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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기간 동안 치열하게 상대방을 물어뜯던 모습과는 달리 이재명 후보는 24만여 표 차이라는 초박빙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윤석열 당선인도 통합과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멋진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선거 기간에 나타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 이번 대선 기간 가짜뉴스와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가 쏟아지면서 건전한 정책 대결은 뒤로 밀렸다. 상대 후보나 가족 흠집 내기에 치중하다 보니 '막말'이 오가는 난장판이 됐고 그 속에서 진실보다는 거짓이 더 진실처럼 보였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거짓말부터 상대방 깎아내리기·확인되지 않은 사실 유포·침소봉대 등 과거 어느 대통령 선거보다 지저분한 전쟁을 치렀다. 외신들조차 '추한 대선'이라고 비판했으니 나라 망신이다.

필자는 이번 대선을 '픽토리텔링' 선거라고 정의내렸다. 픽토리텔링은 스토리텔링의 하나의 기법인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것'(picture+storytelling)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의 픽토리텔링은 픽션(fiction)과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결합이다. 픽션은 '사실이 아닌 상상(想像)에 의해 씌어진 이야기나 소설' 또는 '실제에 근거를 두지 않고 만들거나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이야기하다'는 의미다. 이 둘을 합친 픽토리텔링은 '거짓을 이야기하다'로 정의할 수 있겠다.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양측은 사실이 아닌 추측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진실처럼 퍼트리기에 바빴다. 거짓을 만들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작은 흠집을 부풀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선거에 이기는 것이 최선이었던 픽토리텔러들에게 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품기 전에 진실을 감출 또 따른 거짓을 만들어내기에 바빴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가짜뉴스는 시정잡배들이 술자리에서 만들어내는 것처럼 저급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픽토리텔링'은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을 거치며 더욱 각색되고 불변의 진실이 됐다. 거짓과 진실의 경계에 서 있었던 일반 유권자들이 진실을 알기 쉽지 않았다. 경박한 언론들은 거짓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기보다 특종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까발리며 거짓 퍼트리기에 일조했다. 거짓과 진실이 혼재된 상황에서 많은 유권자들은 조선 시대 책 읽어 주는 사람인 '전기수(傳奇수)'의 맛깔난 입담에 빠져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기수를 살해했던 사람처럼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1790년 8월 서울 종로의 한 담뱃가게에서 소설 '임경업'을 읽어주던 전기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기수가 펼쳐 놓은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갔던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간신 김자점의 모함으로 누명을 쓰고 임경업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갖고 있던 흉기로 전기수를 그 자리에서 살해했던 것이다.

선거기간 동안 윤석열과 이재명을 둘러싸고 나돌던 수많은 가짜뉴스로 인해 두 패로 나뉜 국민들이 아귀다툼하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하다. 앞으로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두 번 다시 진흙탕 선거에 국민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거짓에 진실이 가려지는 시간은 없어야 한다.

전 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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