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 봄버들(1)…이른 봄날에 천변·들판서 연둣빛 인사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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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5   |  발행일 2022-03-25 제33면   |  수정 2022-03-25 08:32
봄꽃의 향연 시작전 한발 앞서 노란빛 물들이는 '버들'
강아지풀 같은 꽃, 사람 눈길 끌 만큼 화려하진 않아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자태가 더 매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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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한창 피어난 금호강 수양버들 가지. 버들도 꽃이 먼저 핀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지만 버들 꽃에도 벌과 나비들이 모여든다.

지금 대구와 주변 지역에는 목련, 개나리, 살구꽃 등 다양한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꽃들에 이어 온갖 초목들이 새싹과 새잎을 피워내며 완연한 봄 천지를 펼치고 있다. 이처럼 온갖 봄꽃들이 본격적으로 피어나며 산야를 본격적으로 수놓기 전, 연두색·녹황색 기운으로 하천 변과 들판 곳곳을 연둣빛으로 물들이는 나무가 있다. 버들이다. 이른 봄, 설레는 마음으로 '봄빛'을 기다릴 때, 매화 다음으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나무다.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대체로 매화를 비롯해 노란 영춘화와 산수유 꽃이 거의 동시에 피어나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 이때는 이런 꽃을 볼 수 없는 곳은 여전히 회색빛 천지다. 이런 시기에 야외에 나가면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시각적으로 봄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버들이다. 버들이 피우는 꽃 덕분이다.

그 꽃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지만, 버들도 매화처럼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잎이 난다. 봄버들은 이른 봄에 봄기운을 제대로 느껴보려는 사람들에게 매화와 더불어 가장 반가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온갖 봄꽃들이 본격적으로 피어나면서 화사한 봄천지를 펼치는 것을 한발 앞서 인도하기 때문이다.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초기 봄버들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기운을 잘 느낄 수 없다. 회색빛 천지 속에 안개 속처럼 흐릿하게 그 빛을 드러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주 옅은 연두색이나 녹황색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어떤 색인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꽃봉오리들이 가지마다 촘촘히 맺혀 있어, 꽃이 피기 전이라도 그 봉오리들이 봄기운에 따라 점점 커지는 가운데 그 빛을 드러내면서 은은하게 빛난다. 꽃을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하면 그 빛이 점점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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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촌 금호강변의 수양버들 풍경.

매화나 산수유 말고는 꽃을 볼 수 없는 이른 봄, 멀리서 황금빛·연둣빛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봄버들이라고 봐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연둣빛 구름을 두르고 있는 듯하다. 봄버들은 이렇게 멀리서 보는 맛이 제격이다. 강아지풀 꽃처럼 생긴, 꽃 자체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구는 3월 초순부터 버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봄꽃에 시선이 먼저 가겠지만, 금호강이나 신천 등에 가보면 곳곳에서 연둣빛 완연한 수양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경산 반곡지 왕버들도 황홀한 자태로 많은 상춘객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봄버들이 선사하는 봄의 정서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그림이 있다. 바로 단원(檀園) 김홍도(1475~?)의 걸작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다. 봄이 오면 언제나 떠오르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제목이 말해 주듯이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느 봄날, 말을 타고 가던 한 선비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길 옆의 수양버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연둣빛 수양버들 가지 위에는 꾀꼬리 두 마리가 놀고 있다. 길옆에는 풀들이 새싹을 내밀고 있다. 이맘때의 수양버들 모습이다.

부채를 들고 갓을 쓴 선비가 문득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를 듣고는, 말을 멈춘 뒤 수양버들을 올려다보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반가운 정경에 반해 넋을 놓고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을 너무나 잘 담아내고 있다. 이른 봄의 정취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화면 왼쪽 위에는 화제(畵題)가 있다. '어여쁜 여인이 꽃 속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불고 있나(佳人花底簧千古)/ 운치 있는 선비의 술상 위에 올려진 한 쌍의 밀감인가(韻士樽前柑一雙)/ 수양버들 늘어진 언덕을 어지러이 오고 가는 금빛 베틀북이여(歷亂金梭楊柳崖)/ 봄 날 강가에 자욱한 비안개 끌어다가 고운 비단을 짜고 있구나(惹烟和雨織春江).'

화제의 내용도 멋지다. 이른 봄, 황량한 들판 곳곳에서 연둣빛을 띠기 시작하며 먼저 봄을 알리는 버들을 볼 때 이 그림을 떠올리곤 한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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