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추 금요단상] 전선에 보도블록에 고통받는 도시 가로수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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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08   |  발행일 2022-04-08 제33면   |  수정 2022-04-08 08:06

가로수
가로수를 심을 때도 그 환경을 고려해 신중하게 수종을 정하고, 50년이나 100·200년 후를 생각해 심을 자리를 정해야 한다.

온갖 초목이 충만해진 봄기운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각기 타고난 성품대로, 모습대로 꽃을 피우고 신록을 펼쳐내고 있다. 덕분에 화사하고 싱그러운 봄천지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봄날 천지에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있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가지나 뿌리가 온전함을 유지할 수 없는, 그 '고통'이 느껴지는 살풍경의 도시 가로수들이다.

밑둥치와 뿌리 부분은 시멘트나 쇠로 만든 족쇄가 꽉 죄고 있다. 나날이 해마다 자라나지만 족쇄에 맞춰 수시로 잘려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가지는 전선을 비롯한 온갖 선을 위해 크든 작든 일정 범위 밖은 무조건 잘린다. 빠르게 성장하는 나무일수록 빨리 이런 고통을 당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 자란 이후에는 온전한 생태를 유지할 수가 없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나무 모습이 아니다. 성장할수록 그 모습은 더욱 기형적으로 된다. 잎이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살풍경한 모습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로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어쩌다 인간의 손에 이끌려 와 '생지옥'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불쌍한 가로수들이다. 그런 대표적인 가로수가 플라타너스다. 플라타너스는 빨리 잘 자라고, 30~50m까지 크게 자란다. 이런 나무인데도 가로수가 되면 5m나 10여m 이상 자랄 수가 없다. 몇 년 지나지 않으면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가 없고, 아래위가 볼썽사나운 '괴물'로 관리된다.

가로수
대구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거리.


도로의 여건이 괜찮아 잘 관리되고 있는, 볼만 한 플라타너스 가로수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못해 살풍경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도 적지 않다. 해마다 이른 봄이면 모든 가지가 몽당 빗자루처럼 일정하게 잘린다. 새 가지와 잎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 여름이 되면 한 번 더 가지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가로수는 보기가 흉할 뿐만 아니라 관리 비용도 많이 든다. 뿌리와 밑둥치는 왕성한 힘으로 차도·보도 경계석이나 보도블록을 들어 올리기 때문에 수시로 뿌리를 제거하고 경계석과 보도블록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 도로의 여건상 임계치에 거의 도달한 가로수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은행나무 가로수도 오래된 것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를 보게 된다.

가로수를 이렇게 관리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인간의 편리만 생각하고 가로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로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가로수를 도로 환경에 맞춰 무자비하게 다룰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가로수가 우선이 되면 좋겠다. 가로수를 심을 때도 그 환경을 고려해 신중하게 수종을 정하고, 50년이나 100·200년 후를 생각해 심을 자리를 정해야 한다. 살풍경한 가로수는 계속 그대로 관리할 것이 아니라 제거해 버리고 수종을 교체하거나 작은 관목 위주의 화단으로 조성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의산잡찬(義山雜簒)'에서 살풍경(殺風景)의 예로 든 것 중에 이런 것이 포함돼 있다. '꽃 아래서 옷을 말리는 일(花下쇄곤)' '이끼 위에 돗자리를 까는 일(苔上鋪席)' '시선 가린다고 수양버들 가지를 잘라버리는 일(斫却垂楊)' '소나무 숲에서 길 비키라고 소리 지르는 일(松間喝道)' '달 아래서 횃불 드는 일(月下把火)' 등이다. 이상은이 위에서 언급한 가로수를 보았다면 살풍경의 첫 사례로 꼽았을 것이다.

최근 출근길에 재개발 사업으로 아파트 건축이 진행되는 곳 일대의 오래된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제거된 현장을 보았다. 속이 시원했다. 이런 경우라도 많이 생겨 살풍경한 가로수들이 빨리 없어지면 좋겠다. 도시에는 시민들이 항상 접하게 되는 수많은 가로수가 있다. 이 가로수만 멋지게 잘 관리해도 도시의 품격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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