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24] 中 우이산 하매촌, 茶 실크로드 '만리차로(萬里茶路)' 출발지…富 일구며 호화주택 마을 조성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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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7 08:29  |  수정 2023-01-20 08:13  |  발행일 2022-05-27 제35면
우이산 인근 주민 주소득원 무이암차
번성한 옛 생활환경·고택 유지 보존
茶 사업으로 거상, 가문 사당 등 건립
웅장한 문루·우아한 석각·장식 눈길
북방 초원·러시아·유럽까지 찻잎 명성
하매촌앞 하루 300척 뗏목으로 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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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산시 하매촌 풍경.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가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다.

중국 푸젠성 우이산(武夷山) 대홍포로 대표되는 무이암차(武夷巖茶)로도 유명하다. 우이산에서 나는 이 찻잎 덕분에 옛날부터 인근 마을이 번성했고, 지금도 무이암차는 우이산 주변 주민들의 중요 소득원이 되고 있다. 무이암차로 번성했던 대표적 마을이 하매촌(下梅村)이다.

하매촌은 청나라 때 러시아와 유럽까지 팔려나가던 무이암차의 집산지로 차시장이 크게 형성되면서 한동안 번성했는데, 지금도 당시에 지은 화려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옛날 거리와 우물, 빨래터 등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 전통 마을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물론 곳곳에서 주민들이 차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마음 한가운데로 흐르는, 200여 년 전에 인공적으로 만든 좁은 수로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집들이 늘어선 풍경이 정겹고 독특하다. 수로 위에는 곳곳에 다리가 놓여 있고, 수로 양쪽에는 지붕을 얹은 길이 나 있다. 수로 쪽에는 난간이 설치돼 있어 주민들이 흐르는 물을 보며 쉬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수로 양쪽에서 환담을 나누거나 채소를 다듬고, 책을 읽기도 한다.

500여 가구 2천500여 명이 살고 있는 하매촌은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하매'는 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 하천인 매계(梅溪)의 하류에 자리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매계 상류에 있는 마을은 '상매(上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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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매촌 추씨 사당 입구 모습. 1790년에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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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매촌 추씨 사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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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매촌 호화 고택인 대부제(大夫第)의 문살 모습. 화려한 문살 장식의 문이 많았다.

◆수로 양쪽에 늘어선 고택 거리

하매촌은 지금까지도 이처럼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 때의 번성했던 모습을 보여주며 옛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하매촌에는 두번 가보았는데, 생활환경과 주민들의 일상이 한가한 옛날 모습이어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 마을에는 송나라 때 들어온 강(江)씨를 비롯해 명대에 이주해 온 다양한 성씨들이 살아왔다. 그리고 청나라 때는 추(鄒)씨가 장시성(江西省) 난펑현(南豊縣)에서 이주해 정착하면서 마을의 번성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 이후 민국초기에도 저장성(浙江省) 룽취안(龍泉)에서 다양한 성씨가 하매촌으로 이주했다.

추씨의 경우, 1694년 추원로(鄒元老)가 가족을 이끌고 이곳으로 와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들은 여러 대에 걸쳐 창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명한 거상이 되었다. 추씨는 진상(晋商)과 합작한 차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일구었다. 사업 성공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이들은 호화주택들을 건립하고, 가문의 사당도 지었다. 또한 거액을 투자해 마을 변두리를 흐르는 물길을 마을로 끌어 들여 900m에 달하는, 당계(當溪)라는 수로도 조성했다.

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하면서 교육과 오락 공간을 겸한 하매촌의 고택은 대부분 큰 홀 하나와 여러 개의 방, 누각, 별채를 두었다. 서재와 정자도 세우고, 채광과 통풍 등을 위해 건물 사이에 네모난 뜰도 조성했다.

가옥의 정문을 보면 정교한 벽돌조각이 화려하다. 벽돌조각에는 인물과 새, 꽃, 산수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방문이나 창문에도 기하학적 무늬와 길한 의미를 가진 도안을 조각해 장식했다. 돌기둥과 건물의 기단, 화단의 난간 등에도 정교한 석각으로 장식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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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매촌의 높은 담장과 좁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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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매촌 대부제의 기둥 조각.

고택 중 청나라 때 지은 추씨 대부제(大夫第)는 하매촌의 고건물 중 가장 잘 보존된 건물이다. 추씨 가문 중 한 사람이 청나라 관직인 중헌대부(中憲大夫)를 지냈기에 저택 이름을 '대부제'라고 했다.

이 건물에서는 웅장한 문루(門樓)와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석각, 정교하고 다채로운 장식의 문살들이 눈길을 끈다. 건물 기둥과 문 등이 오래되어 보수와 정비가 필요한 상태인데도 방치되고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근처의 추씨가사(鄒氏家祠)는 하매촌의 대표적 고택이다. 추씨가문의 사당인 이 건물은 1790년에 건립됐다. 개방형 홀의 양쪽에 별채를 두고, 2층에는 무대 공간을 만들었다. 건물 내부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들보와 높은 기둥에다, '충효(忠孝)'와 '인의(仁義)' 등이 새겨진 현판, 좋을 글귀를 새긴 주련(柱聯) 등이 많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여러 인물과 생활상, 시골경관 등을 정교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새겨 화려하게 장식한 네 짝의 문이 특이 인상적이었다.

사당 입구인 문루는 크고 화려했다. 다양한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벽돌로 장식되어 있는데, 문 양쪽에 '목본(木本)'과 '수원(水源)'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가족의 번영과 융성이 나무처럼 마을에 뿌리를 내리라는 의미와 더불어, 강물의 원천인 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는 것과 같이 후손들이 조상을 돌이켜 보고 그 근본을 잊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루 입구의 좌우에 있는, 원형의 벽돌 조각은 각각 문승(文丞)과 무위(武尉)를 상징한다. 대를 이어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배출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만리차로(萬里茶路) 기점

하매촌은 우이산 차가 러시아와 유럽까지 수출되며 번창하던 당시의 대표적 차 집산지였다. 소위 '만리차로(萬里茶路)' 또는 '만리차도(萬里茶道)'의 시작 지점이었던 것이다.

중국 차상들은 차를 푸젠성 우이산에서 매입해 가공한 찻잎을 수로를 이용해 후베이성(湖北省) 한커우(漢口)에 모았다. 그리고 다시 수로로 후난성(湖南省) 북부와 허난성(河南省) 북부까지 이동시킨 뒤 육로를 통해 산시성(山西省), 내몽골, 몽골을 거쳐 모스크바까지 가져가 판매했다.

중국 북방 초원과 러시아 유목 민족은 육류와 우유 위주 식생활을 했다. 그래서 찻잎을 이용해 느끼함을 잡고 소화를 도왔으며, 비타민을 보충했다. 산시성 상인 진상이 이 사업 기회를 포착했다.

찻잎 상인들은 장거리 운송과 보관에 편리하도록 찻잎을 벽돌 모양의 차인 전차로 가공하도록 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차를 잘게 부수어 사모바르(주전자)에 넣고 끓인 후 설탕과 우유를 넣었다. 그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 차로 길고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다. 사모바르는 러시아의 가정에서 물을 끓이는 데 사용하는 주전자다. 러시아어로 '자기 스스로 끓는 용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데, 사모바르는 18세기에 홍차가 보급되면서 함께 발달했다.

진상의 차를 꺄흐따에서 수집한 러시아 상인들은 이르쿠츠크에서 서쪽으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져갔다. 이 경로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른, 한나라 때의 실크로드에 비견되는 만리차로이다.

만리차로의 노선은 우이산 하매촌에서 시작되었다. 진상들은 우이산에서 채취해 가공한 찻잎을 매입한 후 북쪽으로 운송, 양쯔강을 거쳐 한커우에 가져갔다. 우이산 하매촌은 바다와 육지 차로(茶路) 모두의 출발점이었다. 우이산 찻잎은 남북 각각 하나씩 유통경로가 있었다. 하나는 육지로 통하는 길이다. 진상들이 매집해 곳곳에 판매했는데, 한커우에서 다시 러시아 상인들에게 판매했다. 다른 하나는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네덜란드 상인 손을 거쳐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 판매했다.

당시 만리차로에서 찻잎은 하매촌에서 숭안현(우이산시)으로 운송되고, 다시 육로로 장시성(江西省)의 연산현(鉛山縣) 하구진(河口津)으로 운송되었다. 하구진에서 다시 배에 오른 차는 신강(信江)을 따라 북쪽으로 포양호를 거쳐 후베이성 한커우에 도착했다. 이 차는 다시 북쪽 몽골과 러시아까지 팔려 나갔다.

차 산업이 한창 흥할 때는 하매촌 앞 매계에는 하루 300척의 대나무 뗏목이 차를 운송했다고 한다. 하매촌 마을 입구에 '진상만리차로기점(晋商萬里茶路起點)'이라는 비석에 서 있다. 영화롭던 차집산지로서의 명성을 상징하는 표석이다.

우이산 인근의 하매, 성촌(星村), 적석(赤石) 등은 우이산 차를 생산하고 운송하는 요충지였다. 1949년 이후 우이산의 모든 개인 차기업들은 국영으로 회수되어 숭안차(崇安茶) 공장에 합병됐다.

후베이성 한커우는 1858년 '중·러 천진조약' 체결 후 중·러 찻잎 길의 중요 집산지가 되었다. 1863년 러시아 상인들은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산지에서 직접 원료를 구입해 벽돌차로 가공한 뒤 러시아로 수출했다.

1863년부터 1877년까지 러시아 상인들은 후난성과 후베이성 접경지역에 3개의 벽돌차 차창을 세웠다. 1877년 러시아 상인들은 한커우로 공장을 이전했다. 러시아 상인들은 증기기계로 차를 제조하는 선례를 열었다. 선진 제조설비로 차를 가공함으로써 효율을 높이고 표준화한 덕분에 차 매출은 크게 증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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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매촌은 푸젠성(福建省) 난핑시(南平市)의 현급 우이산시(武夷山市) 동부에 있는 촌급 행정구로, 2005년 중국역사문화명촌으로 지정되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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