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추 금요단상] 밀양 위양지와 완재정…저수지가 품은 5개의 섬…그 가운데 섬에 지은 정자…그 못의 화룡점정이 되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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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03   |  발행일 2022-06-03 제33면   |  수정 2022-06-03 07:56

위양지(밀양)
주변의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고, 완재정 앞의 이팝나무 꽃이 핀 풍경의 위양지.

밀양에 있는 위양지(位良池)라는 못이 가볼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못 안의 섬에 있는 완재정(宛在亭)이라는 정자에 대한 사연과 함께.

이팝나무 꽃이 한창 피어나던 때 가보았다. 그다지 큰 저수지는 아니었지만, 농사를 위해 만든 저수지가 이렇게 멋진 곳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저수지를 위양지처럼 만들어 가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위양지는 신라 때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의 못은 임진왜란 후인 1634년 밀주(밀양) 부사가 다시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둑 전체에 다양한 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꾼 점이 특별했다. '위양(位良)'은 양민(良民)을 위한다는 뜻인데, 백성을 위해 농사용 물 공급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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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지 둑의 숲길.

저수지 둑의 나무들을 언제부터 심어 가꾸었는지 모르겠지만, 노거수들이 많았다. 그중 왕버들을 보면 두세 사람이 안아야 할 정도로 굵고 커서 수백 년은 된 듯하다. 완재정의 내력을 담은 그 기문(記文)을 보면, 오래전부터 위양지의 풍광이 대단히 좋았던 모양이다. 전체 면적이 6만2천790㎡인 저수지 안에 5개의 작은 섬이 있다. 섬 중 한 곳에는 완재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주변 풍경이 비치는 맑은 물과 노거수들 덕분에 둑길을 한가롭게 걸으며 풍광을 즐기기에 최고의 못인 것 같다. 소나무와 왕버들, 느티나무, 팽나무 등 노거수들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눈이 내린 듯 하얀 꽃이 만발한 이팝나무와 어우러질 때는 더욱더 멋지다.

완재정이 있는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으나, 지금은 섬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둑길에는 곳곳에 의자가 설치돼 있고, 정자도 있어 느긋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완재정에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완재정의 주인공은 학산(鶴山) 권삼변(1577~1645).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산청에서 의병으로 궐기했지만, 왜군에 잡혀 일본에서 10여 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1604년에 사신을 따라 귀국한 후 이곳에 새롭게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그는 5개 섬이 있는 위양지 경치가 중국 양양(襄陽)의 못과 같다 하며 좋아했다. 그래서 가운데 섬에 정자를 짓고자 마음먹고 '완재'라는 이름까지 정한 뒤 시도 남겼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정자를 건립하지는 못했다. 3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인 1900년 후손들이 그의 뜻을 받들어 비로소 정자를 지었다.

완재정 마루 위에 걸린 완재정기(宛在亭記)에 이러한 사연이 담겨 있다. 기문은 이만도가 지었다.

'밀양 시내에서 20리 되는 곳에 화악산(華嶽山)이 있고, 산 아래에 위양리(位良里)가 있다. 동네 앞에 양야지(陽也池)가 있는데 양양지(陽良池)라고도 부른다. 주위가 4~5리이고 가운데 작은 섬 다섯이 있다. 수많은 전답에 물을 대고 사방 둑에는 모두 아름다운 나무와 화초가 있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근원이었으며, 은자가 소요하던 곳이다.

우리 조선 시대에 학산 권삼변(權三變)이 단성(丹城)에서 본 동네로 와서 살면서 본 못이 중국 양양(襄陽)의 습씨지(習氏池)와 같음을 즐겨, 일찍이 정자를 짓고자 하여 완재정이라 이름을 지었다. 시는 이미 완성하였으나 집은 짓지 못하여 자손들의 한이 된 지 300여 년이 되었다. 경자년(1900)에 우중, 중영, 중우, 만석, 병석, 중기 등이 비로소 다섯 섬 중 가운데 작은 섬 하나에 그 조상이 남긴 뜻을 이루어 집 세 칸을 짓고 네모진 배를 갖추어 왕래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완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주인공이 바로 권삼변이라고 말하고 있다. 완재는 '시경'에 나오는 '물가 한쪽에 있는 저 사람, 물길 거슬러 올라가려니 길이 막혀 험하고 멀지만, 물길 따라 내려가니 완연히 물 한가운데 있네(遡游從之 宛在水中央)'라는 구절 중에서 가져온 것이다.

정자가 지어진 사연이 아름답고 멋있지 않은가. 덕분에 위양지 풍광의 화룡점정이 되어, 더욱더 멋진 장소로 만들게 된 것이다.

국내 곳곳에서 물과 주변 풍광이 좋은 저수지를 보게 되는데, 대부분 둑이나 둘레에 나무가 없어 아쉬워하곤 했다. 많은 저수지가 위양지처럼 변모해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면 좋겠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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