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여름날 꽃 폭포 능소화 이야기(2)...도시 빌딩 위로 흙돌담 위로 핀 청량함…무더위 속 일상 곳곳서 특별한 풍광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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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22   |  발행일 2022-07-22 제34면   |  수정 2022-07-22 08:37
'하늘 향해 오르는 꽃' 청운의 꿈 품은 양반가서만 심어
대봉동서 25년전 심은 두 그루, 빌딩 한쪽 덮으며 장관
한옥마을 담장 위로 꽃 피우며 옛 운치…명소로 각광
400년전 부친 편지 '원이 엄마' 소재 소설로 쓴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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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의 능소화. 〈blog.naver.comguryesns〉

능소화가 피어나기 시작하던 지난달 중순, '경산 능소화'의 밑동이 잘려 더는 그 꽃을 볼 수 없게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경산시 자인면 자인초등 정문에서 자인시외버스정류장 방향으로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오래된 목조주택(적산가옥) 벽체 아래 자라던 능소화가 그 주인공이다.

이 능소화는 50여 년 전에 집주인이 씨앗을 뿌려 심은 것이라고 한다. 벽을 타고 오른 능소화가 꽃을 피운 모습이 적산가옥과 어울려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선사해 온 곳이다. 20여 년 전부터 사진 동호인 사이에서 출사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5년쯤 전부터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지난 1월 누군가에 의해 잘려 나간 이 능소화 절단 사건에 대한 뜨거웠던 반응은 멋진 능소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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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대봉동 능소화 폭포'의 능소화 풍경. 1997년에 심었다고 한다.


◆능소화 명소

△대구 '대봉동 능소화 폭포'= 능소화가 한창 꽃을 피우는 6~7월이면 많은 사람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능소화 명소가 곳곳에 있다. 대구의 능소화 명소로는 '대봉동 능소화 폭포'를 꼽을 수 있다.

대구시 중구 대봉1동 행정복지센터 옆의 건물(경일빌딩) 동쪽 벽을 타고 올라 '능소화 폭포'를 만들어내는 능소화 두 그루가 유명하다. 최근 '대봉동 능소화 폭포'라는 이름을 지어 명패까지 달아놓았다. 1997년 건물 준공과 함께 주인이 심은 두 그루가 잘 자라 지금은 지상 4층 건물의 옥상까지 치솟아 있다. 능소화 나무 앞은 주차장이다. 덕분에 빌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능소화의 장관을 잘 감상할 수 있다. 도심의 빌딩 숲 골목에 이렇게 크게 자라 주황색 꽃 폭포를 펼쳐내는 이 능소화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추억을 선사한다.

이 능소화를 보며 40층 이상 되는 아파트 벽 아래 능소화를 심어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구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능소화=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본리세거지도 많은 사람이 찾는 능소화 명소다. 이곳은 100여 년 전에 형성된 남평문씨 집성촌으로, 전통 한옥 70여 채가 멋진 흙돌담 길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로도 유명하다. 1995년 대구시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마을이다.

주택 안에 심은 능소화가 담장 위로 꽃을 피운 모습이 기와를 얹은 황토흙돌담과 어우러져 이곳만의 특별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흙돌담 사이의 정갈한 고샅길 바닥에 떨어져 내린 꽃들의 모습도 각별하다. 이곳에서는 마을 입구 연못에 핀 다양한 연꽃, 붉은 꽃이 흐드러진 배롱나무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진안 마이산 탑사 능소화= 특별한 능소화 명소로 전북 진안 마이산 탑사 능소화를 꼽을 수 있다. 진안 마이산(馬耳山)은 이름 그대로 두 개의 말귀 모양과 닮은 독특한 형태의 산이다. 조선 시대 태종이 남행하면서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마치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붙였다. 동쪽 봉우리를 숫마이봉(681.1m), 서쪽 봉우리를 암마이봉(687.4m)이라고 부른다.

탑사 뒤 암마이봉 절벽을 타고 35m까지 오르며 자란 능소화가 수많은 꽃을 피우면 보는 이는 탄성을 절로 자아낸다. 마이산의 기이한 지형, 사찰의 돌탑과 어우러진 능소화 절벽의 풍경은 신선이 사는 세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탑사에서 능소화를 심은 것은 1985년이라고 한다.

△구례 화엄사 능소화= 구례 화엄사 능소화도 볼 만하다. 능소화가 피는 계절에 산문을 들어서서 돌계단을 조금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높게 솟은 능소화가 저절로 눈에 들어와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 능소화는 벽을 타고 오르며 자란 것이 아니라 마당 귀퉁이에서 지지대를 타고 위로 올라가며 자란다. 홀로 높게 치솟아 있어서 하늘을 넘본다는 능소화 명칭의 의미와 어울리는 모습이다.

△서울 뚝섬한강공원 능소화벽 등 = 서울 뚝섬한강공원 능소화벽도 서울 시민이 많이 찾는 명소다. 한강 변에 5m가 넘어 보이는 벽이 150m 정도 이어지는데, 거기에 주홍색 꽃이 만발하는 능소화벽이 펼쳐진다. 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하다.

경기도 부천 중앙공원 능소화 터널도 사람이 많이 찾는다. 이곳 능소화는 인공터널로 조성된 철제 구조물 위에 피어난다. 초여름에 접어들면 주홍색 꽃잎으로 화려하게 뒤덮여 10여 년 전부터 사진작가들에게 촬영 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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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로 심어놓은 능소화.


◆능소화 이야기

능소화는 담쟁이덩굴처럼 줄기의 마디에 생기는 흡착 뿌리로 건물의 벽이나 다른 물체를 타고 오르며 자란다. 가지 끝에서 나팔처럼 벌어진 주홍색의 꽃이 초여름부터 두 달 정도 피고 진다. 꽃이 한 번에 다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덕분에 개화 기간 내내 싱싱하게 핀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능소화는 동백꽃처럼 꽃봉오리 전체가 뚝 떨어진다.

능소화의 고향은 중국. 다른 물체를 감고 오르는 등나무를 닮은 데다 황금빛과 비슷한 꽃을 피워 금등화(金藤花)라 불리기도 한다. 옛날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아름다움이 각별해 양반집에서만 이 꽃을 심을 수 있게 하였기에 양반꽃으로 통했다. 평민은 능소화를 함부로 기르지 못했으며, 기르다가 적발되면 관아로 끌려가서 매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능소화(凌소花)라는 이름은 넘어선다는 의미의 '능(凌)'자와 하늘을 뜻하는 '소(소)'자를 쓰고 있어, '하늘을 향해 높이 오르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높은 하늘을 향해 웅비하는 기상을 지닌 꽃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꽃말도 명예다.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는 양반가 자제들에게 어울리는 꽃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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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주암정 뒤 암벽에 핀 능소화.

능소화와 관련해 이런 전설이 있다.

왕이 사는 궁궐에 아리따운 '소화'라는 궁녀가 있었다. 소화는 어느 날 임금님의 눈에 띄어 하룻밤의 성은을 입으면서 빈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궁궐 한 곳에 처소도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임금님은 그 후 소화의 처소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여우 같은 여러 빈들이 시기와 계략으로 임금님의 발길을 차단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소화는 임금님이 찾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혹시나 임금님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을까, 임금님의 발걸음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내야 했다. 소화는 그렇게 지내면서 끝내 임금님을 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여름날 결국 눈을 감게 되었다. 소화는 눈을 감으며 시녀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저를 처소 담장 아래에 묻어주세요. 죽어서라도 임금님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담장 밑에 묻힌 소화는 이듬해 여름,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했다. 그 꽃이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날, 덩굴을 뻗어 담장 너머로 꽃을 피우는 '능소화'라고 한다.

이런 능소화가 더 큰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1998년 안동시 정하동 택지 개발지에서 '원이 엄마 편지'가 발굴됐다. 한글로 된 이 편지는 1586년 안동 고성이씨 가문의 이응태가 젊은 나이(31세)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가 써서 남편의 관 속에 넣은 것이다. 편지와 함께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도 발견됐다. 조선 양반가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412년 만에 알려진 것이다. 편지에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의 사랑과 행복, 죽은 후의 일을 기약하는 애달픈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2006년에 원이 엄마 이야기를 소재로 능소화와 연결해 쓴 조두진의 소설 '능소화'가 출간됐다. '400년 전에 부친 편지'라는 부재를 단 이 소설에서 원이 엄마는 능소화를 심은 뒤 죽은 남편의 뒤를 따른다. '한 여름날 크고 붉은 능소화를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 주세요'라는 대목도 나온다. 이 소설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2015년에는 '원이 엄마'를 소재로 한 테마공원이 안동 정하동에 조성됐다. 안동시가 편지를 발굴한 정하동 귀래정 주변에 2천100여㎡ 규모의 원이 엄마 테마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공원에는 원이 엄마 편지글을 그대로 새긴 조각상과 현대어 번역본, 쌍가락지 조형물, 야외무대 등이 설치돼 있다. 주변 곳곳에는 능소화를 심어놓았다. 지금 한창 능소화가 피어나고 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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