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27] 中 푸젠성 샤먼, 中·대만 긴장의 땅에서 서화가 정섭의 작품과 만나며…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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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9 08:06  |  수정 2023-01-20 08:12  |  발행일 2022-08-19 제35면
동서양 혼재된 이색적 풍광 '구랑위'
샤먼여행 중 호텔에 걸린 판교의 작품
굴곡진 삶·시서화 기록도 꼼꼼히 남겨
예술과 함께 백성위한 구제책 큰 사랑
그림 한폭·글씨 한자락도 귀히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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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구랑위의 한 해변 풍경. 작은 섬인 구랑위는 19세기 서구의 건축물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샤먼의 대표적 관광지다.
중국 남동부에 위치한 푸젠성은 대만 해협과 접하고 있는데, 무이산(武夷山)과 샤먼(廈門)이 대표적 관광지다. 무이산은 독특하고 수려한 지형과 무이암차로 유명하고, 샤먼시는 푸젠성의 대표적인 해안 도시로, 대만과 가장 인접해 있다. 샤먼은 특히 최근 중국 정부와 대만 정부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샤먼에서 3.2㎞ 떨어진 거리에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가 있는데, 대만 국방부는 지난 6일 진먼다오 상공을 비행하는 무인기 7대를 쫓아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의 '대만 포위' 무력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진먼다오와 마쭈(馬祖) 열도 상공에는 중국군의 무인기가 잇따라 출몰해 왔다. 2017년 여름 무이산과 샤먼을 여행했다. 샤먼에서는 유명 관광지인 구랑위(鼓浪嶼)를 둘러봤다. 작은 섬으로 영국 조계지였던 구랑위는 19세기 열강 국가들의 영사관, 성당, 교회, 저택 등이 남아있어 동서양이 혼합된 이색적인 풍경과 뛰어난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관광지다. 2017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정섭-난득호도
정섭의 대표작 '난득호도(難得糊塗)'. '어리숙하기 어렵다'는 의미.
정판교 작1-2
샤먼의 한 호텔 로비에 걸려 있는 판교 정섭(1693~1765)의 서예 작품.
샤먼 여행에서는 각별히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숙박한 호텔에서의 일이다. 한가운데 중정이 축구장 정도로 넓은 큰 호텔이었지만 호텔 이름은 기억이 없는 그 호텔에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눈에 익은, 내가 좋아하는 중국 서화가의 대형 작품이 로비 벽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판교 정섭(1693~1765)의 서예 작품이었다. 매우 반가웠다. 멀리 반대편 벽에도 작품이 걸려 있는데, 정섭의 작품인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난초 화분 및 대나무 가지가 화제와 함께 그려진 그의 작품이었다. 둘 다 세로로 긴, 세로가 2m 넘어 보이는 작품이었다.

정섭은 시서화 모두에 뛰어난 작가여서 대나무와 난초 그림의 화제나 서예작품의 글귀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지은 것을 썼는데, 이곳에서 본 서예 작품의 글은 중국의 유명한 선사가 남긴 시였다.

중국 당나라 때 대매(大梅) 법상(法常)이라는 스님의 시 중에 이런 시가 있다.

'꺾여진 고목이 찬 숲에 의지하여/ 몇 번이나 봄이 와도 변함이 없었네/ 나무꾼이 만나도 돌아보지 않거늘/ 먼데 사람이 무엇 하러 애써 찾겠는가// 작은 못의 연잎으로 옷 지어도 다 입지 못하고(一池荷葉衣無盡)/ 몇 그루 소나무 꽃으로도 먹고 살 만하네(數樹松花食有餘)/ 사람들 내가 있는 곳 알아버렸으니(剛被世人知住處)/ 다시 띠 집 옮겨 더 깊은 곳으로 가서 살아야겠네(又移茅屋入深居).'

대매 법상(752~839)이 이 시를 짓게 된 연유가 있다.

염관(鹽官) 제안(齊安) 국사의 제자 한 사람이 산에서 지팡이로 쓸 나무를 구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끝에 법상이 머물던 암자에 이르러 법상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얼마나 사셨습니까?"

"산이 푸르게 변하고 누렇게 변하는 것만 보았소."

"산을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물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시오."

이런 문답 후 그 스님이 절로 돌아가 겪은 일을 말하자 제안 국사는 "이전에 내가 강서에 있을 때 한 사람을 만났는데 혹시 그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법상 스님을 모셔 오라고 시켰다. 다시 찾아간 스님에게 그 말을 들은 법상은 위 시를 지어 완곡한 거절의 뜻을 나타냈던 것이다.

호텔에서 본 작품은 정섭이 이 시의 후반부를 가져와 쓴 것이다. 이 작품 원본은 중국 양저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원본을 토대로 더 고급스럽게 만든 복제 작품인 것 같았다. 반대쪽 작품도 마찬가지로 만든 복제품인 듯했다.

귀국 후, 흥미롭고 각별한 감동을 주는 그의 삶과 작품을 다시 살펴보며 여행의 여운을 즐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굴곡진 삶과 시서화 작품에 대한 기록을 꼼꼼히 남겼다.

◆'양주팔괴' 서화가 정섭

문인이자 서화가인 정섭(鄭燮)은 청나라 건륭 연간(1661~1722)에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에서 활약했던 여덟 명의 대표 화가를 이르는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핵심 인물이다. 호는 판교(板橋). 시서화 모두에 뛰어났던 그는 괴팍한 성격과 독특한 예술적 성과를 아우르는 의미의 '광방(狂放) 예술가'이면서, 관직에 있을 때는 보기 드문 선정을 펼쳐 백성들이 생사당(生祠堂·살아있는 관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을 세울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던 청백리이기도 했다. 늦게 관리를 했으나 곤궁에 처한 백성을 위한 구제책을 두고 상관과 부딪히면서 결국 사직 후 고향에 돌아가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다 별세했다.

먼저 그가 쉰일곱 살 때 남긴 '판교자서(板橋自敍)' 중 일부다.

"어렸을 때는 특별히 남과 다른 점이 없었으나, 장성하자 신체는 커졌지만, 용모가 볼품이 없어 모두 업신여겼다. 게다가 큰소리치기를 좋아하고, 지나친 자부심을 지닌 채 때를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남을 꾸짖곤 했다. 그 바람에 여러 선배는 다들 눈을 흘기며 주위 사람들이 나와 내왕하지 않도록 막았다. 그러나 학문에 임할 때는 스스로 분발하여 각고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스로 낮추어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 낮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탐구하여 선인들의 오묘한 경지를 느끼면서 그 성정과 재주, 능력을 아낌없이 펼쳤다.

사람마다 '판교는 독서 기억력이 뛰어나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내가 기억을 잘해서가 아니라 암송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판교는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반드시 백 번 천 번 읽었다. 배 안, 말 위, 이불 속에서도 줄곧 읽었다. 식사 때는 젓가락질을 잊기도 하고, 손님이 앞에서 하는 말도 듣지 못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도 있었다. 이 모두가 책을 암송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하지 못할 책이 어디 있겠는가.

평생 경학(經學)을 좋아하지 않고, 주로 사서(史書)와 시(詩)·문(文)·사(詞)를 담은 문집을 탐독하였으며, 전기·소설류를 읽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때로 경전을 이야기할 때도 경전 속의 아름답고 기이하며 현란한 문장을 좋아했다. <중략> 서법을 즐겨 스스로 '육분반서(六分半書)'라 부른다. 틈이 날 때 난과 대나무를 그렸는데 여러 왕공·대인·공경·사대부·시인묵객·산중 노승·도사들까지 그림 한 폭, 글씨 한 자락을 얻으면 다들 진귀하게 여기며 소장했다. 그러나 판교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기대어 명예를 얻고자 하지 않았다."

이듬해에 이를 보충한 그의 글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판교는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다. 오래된 소나무, 황폐해진 절, 넓은 모래밭, 멀리 흐르는 강, 솟구친 절벽, 쓸쓸한 묘지 사이에서 오래 노닐었지만, 그렇다고 그 어디를 가든 독서를 하지 않은 적은 없다. 정교함을 추구하고 마땅함을 요구하니, 마땅하면 거친 것도 다 정묘하게 되는 법이고, 마땅치 않으면 정묘함도 다 거칠게 되는 법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귀신에게도 통한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엿볼 수 있다. 대나무를 즐겨 그린 그의 서화작품에 대한 자세와 생각은 어떠할까.

화제로도 여러 번 썼던 '대나무와 바위(竹石)'라는 시다.

'청산을 악물고 놓아주지 않은 채(咬定靑山不放송)/ 뿌리를 쪼개진 바위틈으로 내려 세웠네(立根原在破巖中)/ 천 번 만 번 두들겨도 꼿꼿하기만 하니(千磨萬擊還堅勁)/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람이야 불든 말든(任爾東西南北風).'

이 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좋아해 종종 인용하던 시이기도 하다. 그는 이 시의 앞 두 구절을 '기층으로 깊이 들어가 놓지 않으며(深入基層不放송)/ 군중 속에서 뿌리를 내렸네(立根原在群衆中)'로 바꾼 시를 소개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생각을 드러낸 적도 있다.

정섭의 묵죽도 제화 중에는 이런 시도 있다.

'해마다 대나무 그려 맑은 기운 사는데(年年畵竹買淸風)/ 맑은 기운 사건만 가격은 낮춰 부르네(買得淸風價便송)/ 고아함은 많길 바라고 돈은 적게 내려 드니(高雅要多錢要少)/ 대부분 주점 주인에게 주고 만다네(大都付與酒家翁).'

화제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정신을 한 곳으로 몰입하여 수십 년을 각고 분투하다 보면 신도 도와줄 것이고, 귀신도 알려줄 것이고, 사람도 깨우쳐줄 것이고, 사물도 (그 이치를) 드러낼 것이다. 각고 분투는 하지 않으면서 그저 빠른 효과만 얻으려 한다면, 젊어서는 허장성세에나 빠질 것이고 노후에는 막다른 길에 봉착하게 될 뿐이다.'

'가난한 선비(貧士)'라는 글도 소개한다.

'가난한 선비 너무도 궁색한데/ 밤중에 일어나 휘장을 밀치네/ 뜰을 배회하다 서 있으려니/ 밝은 달 새벽빛을 흩뿌리네/ 좋은 옛 벗이 생각나니/ 사정 알리면 거절하지 않겠지/ 문 나설 땐 기세 자못 당당했으나/ 반쯤 길 가다가 벌써 풀이 죽는구나/ 만나 보니 차가운 말만 내뱉기에/ 하려던 말 삼킨 채 되돌아오네/ 돌아와 마누라와 마주하자니/ 풀 죽어 위신을 세울 길 없네/ 뉘 알랴, 아내는 외려 위로해주며/ 비녀 뽑고 헌 옷을 전당 잡히네/ 부엌에 가 부서진 솥에 불지피니/ 연기 자락 아침 햇살에 뒤엉키네/ 쟁반 위 어제 남은 과일과 떡을/ 주린 자식들에게 고루 나누네/ 이 내 몸 부자 되길 고대하다가/ 귀밑머리 짧아지고 성글어졌네/ 행여 새로 나온 꽃가지 만나/ 조강지처 탓하지나 말게 하소서.'

정섭을 상징하는 글귀이기도 한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그의 작품이 있다. '어리숙하기 어렵구나'라는 의미다. 이 네 글자 아래에 그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써놓았다. '총명하기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 되기는 더 어렵네. 하나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나면 바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법, 나중에 복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네(聰明難 糊塗難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非圖後來福報也).'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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