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연꽃(1) 천년 전 모습과 그대로… 연밭에 핀 순수의 결정체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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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6   |  발행일 2022-08-26 제33면   |  수정 2022-08-26 07:55
함안 성산산성서 700년전 고려시대 연꽃 씨앗 출토
싹 틔워 꽃 피우는데 성공…'아라홍련' 이라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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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연꽃테마파크의 홍련. 이 연꽃테마파크는 경남 함안군이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700년 전의 연꽃 씨앗의 싹을 틔운 '아라홍련'을 중심으로 조성해 2013년에 개장했다.

'본래 흙먼지 기질이 아니라서(本無塵土氣)/ 스스로 구름 비치는 물에서 자라네(自在水雲鄕)/ 곱고 선명하여 닦은 듯 정결하고(楚楚淨如拭)/ 높이 쭉쭉 뻗어 묘한 향기 내는구나(亭亭生妙香).'

중국 원나라 때 여류시인 정윤서(鄭允瑞)의 시 '연(蓮)'이라는 작품이다. 연의 성품을 잘 담아내고 있다. 연은 흙먼지 이는 땅이 아니라, 하늘의 구름이 비치는 연못이 고향이다. 잎은 언제나 씻고 닦은 듯 깨끗하고 푸르다. 꼿꼿하게 위로 뻗은 꽃대 위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은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맑고 은은한 향기를 뿜어낸다.

이러한 연이 있는 연밭은 오랜 옛날부터 청춘남녀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사랑을 나누는 최적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런 풍경을 담은 '연밥 따는 노래(採蓮曲)'가 적지 않게 전한다.

먼저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채련곡(採蓮曲)'이다.

'약야(若耶) 개울가에 연밥 따는 저 아가씨/ 웃으며 연꽃 너머로 얘기 나누네/ 새로 단장한 모습 햇살 받아 물속까지 밝고/ 향기로운 옷소매 공중에 나부끼네/ 언덕 위에는 누구 집 한량들인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버들 사이로 어른대네/ 자류마는 울면서 떨어진 꽃 사이를 지나다가/ 이를 보고 머뭇머뭇 공연히 애태우네.'

아가씨들은 연꽃 사이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말 탄 젊은 한량들은 버들 그늘 사이로 아가씨들을 기웃거린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한량들이 타고 가는 말들이 애태우고 있다며 이백 특유의 낭만과 유머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 시대 문신이자 시인인 신흠(申欽)은 이런 한시 '채련곡'을 남겼다.

'동쪽 마을 아가씨 버선도 신지 않고/ 서리 같은 하얀 발로 시내를 건너네/ 시냇가에서 노 흔드는 이 누구 집 총각인고/ 연꽃 꺾어 주고 웃으며 얘기 나누네/ 배를 타고 어디론가 함께 갔는데/ 별포(別浦)에서 원앙 한 쌍 놀라서 날아가네'

연밭에서 아가씨와 총각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요즘은 연밭을 찾은 이들이 사진 찍느라 바쁜 풍경이 펼쳐지지만, 꽃을 피운 연의 모습은 1천 년 전이나 다름없다.

연꽃 가득 핀 연못을 몇 군데 둘러봤다. 함안군이 '아라홍련'을 테마로 조성해 2013년 여름에 개장한 경남 함안 연꽃테마파크도 찾아갔다. 이야기로만 접했던 '아라홍련'을 직접 한번 보고 싶었는데, 무더운 날씨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연꽃들이 가득 피어난 드넓은 연밭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평일인데도 많은 관람객이 찾아 다양한 연꽃을 즐기며 더위를 잊고 있었다.

2009년 5월 함안 성산산성에서 연꽃 씨앗이 출토되었는데, 연꽃 씨앗은 분석 결과 700여 년 전 고려 시대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듬해 함안박물관이 이 씨앗을 파종해 싹을 틔우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정성을 다해 키운 끝에 7월에 꽃을 피우는 데도 성공했다. 700년 만에 꽃을 다시 피운 것이다. 함안군은 이곳 함안지역이 본래 옛 아라가야가 있던 곳이기 때문에 '아라홍련'이라 명명했다.

고려 시대 연꽃인 '아라홍련'은 70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면서 지금의 다양한 연꽃으로 분화되기 이전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 고유 전통 연꽃의 특징을 확인해 주고 있다. 꽃잎은 하단은 백색, 중단은 선홍색, 끝은 홍색으로 현대의 연꽃에 비해 길이가 길고 색깔이 엷어 고려 시대의 불교 탱화에서 볼 수 있는 연꽃의 형태와 색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라홍련의 부활을 기념해 연꽃을 주제로 한 공원을 조성한 것이 바로 함안 연꽃 테마파크다. 3년이 걸려 조성해 2013년 8월에 개장한 함안 연꽃테마파크(면적 10만9천800㎡)는 아라홍련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연꽃단지를 비롯해 전망 정자, 분수대, 데크 시설, 쉼터, 방문객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연꽃(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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