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최고령 MC 이름 딴 빼어난 비경의 옥연지, 송해선생의 푸근한 미소와 음성 서려있는 듯

  • 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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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2   |  발행일 2022-09-02 제38면   |  수정 2022-09-0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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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정으로 가는 데크로드 주변의 옥연지 풍경.

달성군 옥포 소재 송해공원

걷기만 해도 100세 무병장수한다는 '백세교'
수중 보름달·풍차 반대편 로드 지나다 보면
이름부터 웃음 부르는 '담소·실소 전망대' 만나

故송해선생, 세계 최고령 MC 기네스에 등재
부인 故석옥이씨 고향 옥포를 제2고향 삼아
'송해기념관'선 선생 삶 반추하며 어록 되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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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송해공원 내 옥연지 분수 풍경.

송해공원. 정말 찰진 이름이다. 전국에 공원이 허다하지만, 이름 하나만으로도 독보적인 유명세를 떨친다. 여기도 송해공원이 되기 전에는 그냥 하나의 유원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송해공원이 되고, 우리가 송해공원을 불러 주었을 때 하나의 의미가 되고, 관광의 꽃이 되었다. 마치 김춘수의 시(詩) 꽃처럼.

옥포 옥연지가 송해공원 얼개다. 8월 어느 날 오후, 호수는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비슬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호수에 검은 물그림자를 만든다. 그 뭐랄까, 아무르 하구의 검은 강처럼. 그 밖에 물빛은 하늘이 잠겨서인지 파르라니 하다. 어쩌면 우리가 태어날 때, 몸에 번져 있던 스탬프 푸른 몽골 반점과 같은 때깔이다.

물레방아와 생태연못을 관람하고 걷기를 시작한다. 하트터널을 지난다. 사랑의 파문이 가슴에 인정 샷을 한다. 걷기만 해도 100세까지 건강하고 너끈하다는 백세교를 건너, 팔각정 백세정에 오른다. 옥연지의 빼어남이 눈자위에 얼룩진다. 풍경은 언젠가 가 닿고 싶었던 상상의 화면이다. 고요한 수면을 응시한다. 정적이 감도는 저 무언의 못에 강력한 힘이 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에서 솟구치는 부력이 느껴진다. 이런 굴절이 지워진 원초의 에너지가 나를 바꾸는 첫걸음이라 생각된다. 백 세까지 애면글면 살면 인생의 정답이 될까. 루소는 '식물은 재배에 의해 가꾸어지고, 인간은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다'라고 했다. 산다는 건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는 것이다. 가장 잘 산 사람이란 가장 오래 세월을 산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가장 잘 체험한 사람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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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공원 내 송해기념관.

이즘에서 문득 송해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분은 어떤 삶을 경험하며 살아왔을까. 송해의 닉네임과 대명사를 에둘러 찾아보자. 국민의 대축제, 격식 없는 흥겨움, 우리 시대의 딴따라, 세대 간의 연결, 유쾌한 웃음, 일요일의 남자, 전국팔도 유람. 이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전 국민과 함께 울고 웃던 영원한 국민 MC 송해(Song Hae). 세계 최고령 MC 기네스 등재.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노래자랑'의 최장수 진행자, 가수, 희극인, 영화배우, 라디오 DJ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부르는 호칭은 영원한 오빠, 선생님, 할아버지, 선배님, 해형 등 매우 많다. 이는 세상과 이어진 송해의 폭넓은 삶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구순을 넘은 연세에도, 무대에서 관중과 함께 시시콜콜 웃고 울며 우리 모두의 '형님, 오빠'가 될 수 있었던 속살은 송해만이 가진 구수함 때문이다.

그럼 송해 선생님의 일생을 간략하게 무꾸리 해보자. 그분은 1927년 4월27일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송복희이다. 어릴 적부터 장난기 많고 인사 잘하는 개구쟁이로 마을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재능이 남달랐다. 1949년 아버지의 반대에도 해주음악전문학교에 입학, 성악을 공부하였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머니의 뒷받침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학업 도중 6·25전쟁이 터지자 처음에는 고향 집에서 피란했다. 당시 구월산 일대에서 암약하던 북한인민군 유격대의 모병을 피하려 인근 마을에 숨었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수차례 했다. 그러다가 1·4후퇴 때에 다시 집을 나서며 어머니께 "잠시 또 피했다가 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송해에게 "얘야 이번에는 정말 조심하거라" 하며 아들을 보냈다. 송해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하고 집을 나섰다.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 자신도 몰랐다.

송해는 피아의 구분마저 없던 아수라장의 전쟁터에서 피란 행렬 따라 해주 연안까지 왔다. 여기서 피란선을 얻어 타고 연평도에 다다르게 된다. 연평도에서 유엔군이 준비한 LST에 몸을 싣고 3일 밤낮을 항해하여 부산에 도착하였다. 본명이 송복희인 그분은 피란선 함상에서 새로운 각오로 송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부산에서 혈혈단신으로 이리저리 유랑하다 국군에 입대, 대구에 있던 육군본부 통신병으로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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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군대의 허니문인 휴가가 와도 오갈 데가 없었다. 외톨이가 그분의 족쇄였다. 이를 딱하게 여긴 부대 선임이 자기 고향으로 함께 데려가 휴가를 보내곤 했다. 그 선임이 누이까지 소개해 주어 그런 인연으로 결혼하였다. 바로 석옥이씨다. 이제 송해는 부인 석옥이씨의 고향 옥포 기세리가 제2 고향이 되었다. 한편으론 서울서 창공악극단에서 데뷔하여 가수, MC, 코미디언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1988년 5월8일부터 약 40년간 '전국노래 자랑'을 진행, 국민 MC로 떠올랐다. 그러다 2022년 봄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5월 '전국노래자랑' 진행까지 맡았다. 하지만,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022년 6월8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정말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수중 보름달과 풍차의 반대편 로드로 걷는다. 담소 전망대가 나온다. 눈가에 웃음을 담고 보면 복(福)을 불러오는 행운의 풍경이 된다. 대화도 웃으면서 해야 한다. 언제나 미소를 띠고 말씀하시던 송해 선생님의 얼굴이 눈에 아슴아슴하다. 불과 250m 가면 금굴이 있다. 어디를 살펴도 금은 없고 굴만 있다. 더 깊이 멀리 파면 거기에 금이 있을까. 석가는 자기 마음속에 금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사코 마음 밖에서 금굴을 파고 있다. 왜일까. 마음속의 금, 단꿈 같은 법어다.

실소 전망대를 지나 폭소전망대에 도착한다. 실소도 폭소도 웃음이다. 박장대소를 한다. 손뼉까지 치며 파안대소도 해본다. 좀 더 참을 걸, 좀 더 베풀 걸, 좀 더 기도할 걸. 껄껄껄, 다시 통쾌하게 웃는다. 그래도 모자라서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렇게 눈물이 나도록 웃고 기뻐하면, 허공에서 송해 선생님이 함박웃음으로 실루엣을 그린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웃음과 익살로, 현실의 골문에 오버래핑 성공과 희망을 슛, 득점하시던 송해 오빠의 발효된 순발력은 우리의 감탄이고 존경이었다. 출렁다리도 구름다리도 지난다. 이제 얼추 한 바퀴 돌았다.

송해기념관에 들른다. 그분이 평소 자주 하시던 말씀이 적혀있다. '인생이란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 것.' '저는 사람을 많이 아는 게 부자다 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나이거든요.' '저는 사람을 많이 사귀면서 느낀 즐거움에서 힘을 얻어요.' 송해 오빠의 참모습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 시켜, 관중과 기쁨의 무대에서 만나는 데 있었다. 몸짓 혹은 상황만으로도 웃음을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그분의 퍼포먼스였다. 그의 일생을 다 말하기에는 벽이 너무 높다. 그분이 평소에 자주 불렀던 노래를 여기에 옮기면서 그 가사와 음정이 품고 있는 회한의 감정을 따라가면 그분의 일생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유랑청춘'은 이렇다.

"눈물 어린 툇마루에 손 흔들던 어머니, 하늘마저 어두워진 나무리 벌판아, 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 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70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

그나저나 '딴따라' 도 한번 보자.

"강산이 좋다, 사람이 좋다, 풍악 따라 걸어온 유랑의 길, 바람 속에 청춘이 간다, 인생이 이거라고 이거라고 어느 누가 말 할 수 있나, 아 오늘은 어디에서 임자 없는 노래를 불러보나,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한 인생, 나는 나는 나는 딴따라."

노래는 그분 인생의 등뼈였다. 그분은 음악과 웃음으로 일생의 퍼즐을 맞췄다. 이렇게 그분이 되찾은 무대, 되찾은 영혼, 되찾은 생명이 우리에게 저 보들레르적인 교감을 일으켰다. 그분의 인간적인 웃음과 공감이 무슨 마술처럼, 가장 일상적인 일들이 코미디가 되고, 해학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고 숙성되어 또 다른 꿈과 현실로 진화하는 것이다.

글=시인·방방곡곡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백계분 여행사진 작가

☞문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관광과 (053)668-3913

☞내비주소 :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598

☞트레킹 코스 : 물레방아 - 백세정 - 금굴 - 담소 전망대 - 출렁다리 - 구름다리 - 송해정 - 송해기념관

☞인근의 볼거리 : 용연사, 화원 유원지, 남평문씨 세거지, 비슬산 유가사, 수목원, 김광석 거리, 진골목, 제일교회, 달성공원, 도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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