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추(桐楸) 금요단상] 반가사유상이 일깨워 준 진리,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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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7   |  발행일 2022-10-07 제33면   |  수정 2022-10-07 08:21
성지암 무설전 앞
경북 청도 성지암 무설전에서 바라본 마당 풍경. 잔디마당 위에 반가사유상 작품이 하나 설치돼 있다.

국보_제83호_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표현한 여러 형태의 신상(神像)들을 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각들에는 어딘지 인간적인 감정의 자취가 남아 있어 절대자만이 보여 주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미륵상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독일의 유명 철학자 칼 야스퍼스(1883~1969)가 일본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을 보고 남긴 말이다. 이 반가사유상과 매우 유사한, '쌍둥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닮은 반가사유상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국보 83호인 금동반가사유상이다. 야스퍼스가 금동으로 만든 이 반가사유상을 보았다면, 더한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국보 83호는 신라 때 작품이고, 일본 목조반가사유상은 신라에서 만들어 선물한 것이라는 주장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보 83호 작품이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함께 새로운 공간에 전시돼 그 진가를 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반가사유상 2점을 상설로 전시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사유의 방'을 2021년 11월 개관,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개관 3개월 만에 1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국보 83호는 로댕의 조각 작품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세계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이 반가사유상이 1천200년 후에 탄생한 '생각하는 사람'과 900년 후에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더 많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날이 머지않기를 기대한다.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후 경북 청도의 한 암자(성지암)에 다녀왔다. 여성 친구들이 다니는 암자인데 그녀들의 권유로 함께 갔다. 산속에 있는 이 암자를 방문한 날이 특히 청명한 날씨여서 가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법당(무설전)이 하나만 있는 작은 암자다.

이 법당 안에 들어가 홀로 앉았다. 좌우와 뒤쪽 모두 창문으로 되어 있어서 주변의 자연을, 그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왼쪽으로는 푸른 잔디 마당, 그 뒤의 산등성이 곡선과 하늘이 심신을 상쾌하게 했다. 오른쪽으로는 낮은 돌담과 멀리 보이는 산자락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쾌청한 초가을의 기운에 서서히 내가 스며들어 갔다. 눈으로는 초록을, 코로는 가을의 내음을, 귀로는 벌레나 새소리를, 몸으로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특히 남쪽 잔디마당 쪽의 풍경이 좋았다. 마당 한가운데 적당한 크기의 반가사유상 조각 작품(김호성 작)이 있는데, 절 마당에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근과 좁고 긴 철판 등을 연결해 만든, 속이 빈 이 반가사유상 작품은 국보 83호를 모델로 한 것이다.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을 배경 삼은 잔디마당에 자리한 이 반가사유상은 이 암자에 특별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걸작 국보 83호의 힘이다. 1천300년 전에 탄생한 우리의 반가사유상은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 시대의 작가와 스님에게도 영감을 주어 청도의 한 암자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무설전 안에도 법당에 어울리는 특별한 작품이 있다. 김길후 화가의 와불(臥佛) 작품이다.

성지암 마당의 반가사유상을 통해서도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이치를 확인할 수 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반가사유상도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제행무상은 불교의 세 가지 진리이자 근본교리인 삼법인(三法印) 중 하나다. 모든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하다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일체는 무상한데 사람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를 품고 산다. 거기에 모순이 있고, 그래서 괴로움과 불행이 초래된다.

'반가사유상의 사유'를 통해 제행무상의 진리를 항상 잊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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