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대한민국 정치; 저주와 비난의 문화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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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3 06:33  |  수정 2022-10-13 06:39  |  발행일 2022-10-1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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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방송국에서 활약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있다. 방송국에 다니던 시절에 필자는 그가 얼굴이 굉장히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했다. 방송을 통해서만 본 것이지만, 그의 언행에서도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가 정치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서 국회의원이 되자 얼굴은 이전에 보았던 선한 표정이 아니라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성마른 표정이 되어 갔다.

표정이 변해가는 동안에 그와 관련되어 매일매일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상대 당과 의원들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과 싸우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한 명 걸리기만 걸려라, 오늘 내가 완전히 박살을 내주겠다"는 것처럼.

언론에서 해당 의원의 사진이나 영상을 사용하면서 언짢은 표정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접하는 그의 표정은 과거의 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매일 수없이 되풀이되는 정쟁의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정치인이다 보니 좀 더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선한 모습이 사라진 그의 얼굴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사실 그만이 이렇게 변한 것은 아니다. 정치인이 되기 이전에 자기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빛나던 사람들이 '정치'라는 옷을 입고 '정당'이라는 완장을 차면서 말이 거칠어지고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논리정연하던 언변은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한 날카로운 칼이 되었으나, 칼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초보 무사의 손에서 칼은 상대를 베기 이전에 자신에게 먼저 깊은 상처를 입혔다. 주변 사람을 아우르고 작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던 부드러운 심성은 상대의 무릎을 꿇게 하겠다는 생각에만 빠져 분노와 비난만이 가득했고,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불편하게 했다.

이런 사람들의 변화는 우리나라 정치의 '저주와 비난의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잘한 일을 칭찬하면 자기편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받아야 하고, 자기편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상대편의 실수나 잘못을 침소봉대해 저주를 퍼부어야만 하는 그런 저급한 정치문화다.

대통령선거를 비롯해 국회의원선거·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선거 등 선거라는 이름만 붙으면 비난과 저주가 칼춤을 춘다. 이렇게 국회나 정치판에 입성한 사람들이다 보니 악다구니와 비난은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언론매체에 얼굴 나올 기회가 없는 사람들은 SNS를 통해서라도 누군가를 저주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2개의 화분에 심은 식물 가운데 한쪽에는 매일매일 "예쁘다" "아름답다"는 칭찬을 하고, 다른 한쪽에는 나쁜 말들만 하는 실험이 있었다. 나쁜 말만 들은 식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시들해지다 죽었다. 그러나 칭찬을 받은 식물은 평균 수명 이상으로 예쁘게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식물도 이렇게 반응하는데 사람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특히 남이 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생사를 넘나들 정도인데, 자신이 생각하고 직접 말하는 것은 아마도 그 이상일 것이다. 정치인들이 모두 저주와 비난의 문화에 빠져 악다구니를 쏟아낸다면 우리나라 정치도 저주를 받은 식물처럼 시들어 죽고 말 것이다.

정치인들은 매일매일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생각해 보라. "내가 지금 저주와 비난의 칼춤을 추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 영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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