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추(桐楸) 금요단상] 귀해서 대접받는 양동마을 서백당 향나무…귀한 향기 때문에 희생당한 울릉도 향나무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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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04 07:38  |  수정 2022-11-04 07:44  |  발행일 2022-11-04 제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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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의 서백당 마당에 있는 '서백당 향나무'. 왼쪽에 손소 불천위 사당이 보인다.

인간 삶(죽음 포함)과 관련되는 모든 것은 인간의 욕망이나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이해(利害)나 필요 여부에 따라 보호를 받기도 하고 피해를 보기도 한다. 나무 역시 그렇고, 향나무도 그 대표적 나무에 해당하는 것 같다.

경주 양동마을은 월성손씨와 여주(여강)이씨 집성촌이고, 그 대표적 인물은 양민공 손소와 회재 이언적이다. 성리학 대학자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이다.

손소(1433~1484)가 양동마을의 손씨 입향조(入鄕祖)이고, 그가 이 마을에 처음 지은 집이 손씨 대종택인 서백당(書百堂)이다. '서백'은 참을 인(忍) 자를 100번 쓴다는 의미다. 손소가 처음 자리 잡은 서백당 터는 '삼현지지(三賢之地)'라고 하는 명당이라는데 손소의 아들 손중돈과 이언적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한 사람의 현인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손소는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는 데 세운 공으로 적개공신이 되고, 4대 봉사(奉祀) 후에도 신주를 묘에 묻지 않고 영원히 기제사를 지낼 수 있는 불천위(不遷位)의 지위를 받았다. 서백당에는 손소의 불천위 신주(神主)를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이 사당 아래 마당에 거대한 향나무가 있다. '서백당 향나무'다. 손소가 1459년 서백당을 지을 때 심은 나무라고 한다. 심을 당시 20여 년 된 나무였다면 지금은 수령이 580년 정도 된다. 손소의 불천위 제사를 비롯해 이 종택에서 대대로 지내온 조상 제사의 분향에 사용되어온 나무다. 후손들이 조상 제사를 위해 대대로 돌보며 키운 덕분에 멋진 고목의 풍모를 자랑하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 향나무는 불천위 신주처럼 사람의 지극한 보호를 받으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향나무는 좋은 향기를 내는 덕분에 서백당 향나무처럼 사당이 있는 종택이나 서원, 궁궐 등에 많이 심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곳에 향나무 노거수가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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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힌남노로 인해 뿌리째 뽑힌 울릉도 도동 향나무(수령 2천 년 추정). <울릉군 제공〉

이처럼 사람의 돌봄을 받으며 귀한 대접을 받아온 향나무도 있지만, 귀한 향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무자비하게 희생을 당하기도 한다. 그 좋은 예로 울릉도 향나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옛 기록을 보면 울릉도에는 향나무가 정말 많았던 것 같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향나무를 울릉도에서 가져와 사용했고, 1882년의 한 기록을 보면 울릉도에는 '자단(섬피나무)과 향목(향나무)이 가장 많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랬던 울릉도 향나무는 왜구와 일제의 도벌, 광복 후 연료 채취, 공예 및 분재 소재용 등으로 남벌되면서 급감하게 되었다. 일제 시절의 한 사진을 보면, 주변에 베어버린 향나무 거목들이 즐비한 산등선에 한 벌목꾼이 쉬고 있고, 벌목한 향나무 주위에 서 있는 나무도 대부분 향나무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지금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험준한 절벽 상부 등에 국지적으로 자라고 있는 현실이다. 저런 곳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버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울릉도 향나무를 보면 그 생명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명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불어닥친 제11호 태풍 '힌남노'에 의해 울릉도 관문 도동항 절벽 위에 자라던 향나무(수령 2천년 추정)가 뿌리째 뽑혀 넘어졌다. 이 나무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 뽑힌 그대로 현장에 존치하는 방향으로 전문가들이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울릉도에 남아있는 천연기념물 향나무들도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다.

서백당과 울릉도의 향나무 사례를 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과 자연이 서백당 향나무처럼 서로 도움을 주며 상생하는 관계가 되면 좋지 않겠는가.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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