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맞으며... "공경하면 뜻이 서고 성실하면 진실해져" 군자·현인이 되고자 새로운 다짐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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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30 08:08  |  수정 2022-12-30 08:35  |  발행일 2022-12-30 제34면

토끼상-흥덕왕릉
경주 흥덕왕릉의 둘레석에 새겨진 12지신상 중 토끼상.

임인년 호랑이해가 가고, 계묘년(癸卯年) 토끼해인 2023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새해를 맞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저마다 이런저런 목표를 세우고 각오를 다진다. 사람들은 다이어트, 운동, 금연, 저축 등 다양한 결심을 한다. 대부분 육체적 건강이나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마음과 관련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한 삶의 바탕이 되는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中 탕왕, 세숫대야에 쓴 '일신우일신'
손발 씻을 때마다 마음도 깨끗이 정진

사욕을 극복하지 못해 인욕에 들어도
이제라도 사욕 극복하면 천리가 회복

道는 큰길과 같아 보고 걸을 수 있어
만사를 행하는데 부지런히 노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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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을 뜻하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이 있다. 후덕한 정치를 펼친 어진 통치자의 대명사로 꼽히는 중국 탕왕(湯王)이 세숫대야에 새겨놓은 글귀라고 한다. 상(商)나라를 세운 탕왕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관성에 빠지는 마음을 돌아보며 마음을 항상 맑게 유지하기 위해 매일 마주하는 세숫대야에 '진실로 하루가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고 새겼다. 이 아홉 자를 새겨 얼굴이나 손발을 씻을 때마다 몸만 씻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깨끗하게 했던 것이다.

탕왕이 세숫대야에 새긴 글을 반명(盤銘)이라고 하는데, 그 후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주변의 물건 등에 새겨 각오를 다지는 글귀를 좌우명(座右銘)이라고 불렀다.

보통 사람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온갖 유혹에 수시로 흔들려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이렇게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그 유혹에 빠져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을 불행으로 이끌게 된다. 옛날 선비들은 이런 좌우명과 함께 새해를 맞을 때도 군자가 되고 현인이 되고자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글을 짓기도 했다.

경북 안동의 선비였던 경당(敬堂) 장흥효(1564~1633)가 말년에 새해를 맞으며 지은 글을 소개한다. 장흥효는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군자의 학문을 공부하고 실천하는데 전념한 선비다. 퇴계 이황의 대표적 제자인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의 가르침을 받았고,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도 공부했다.

그릇의 밥이 자주 비어도 그것을 개의하지 않으며 군자의 길을 걸었던 장흥효는 당시의 명사 중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를 따르기도 하고, 자제를 보내 가르침을 받게 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그의 집 앞을 지날 때면 그를 찾아가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존경하며 따랐고, 난폭한 사람들도 감화되어 복종하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책인 '음식디미방'의 저자이자 '여중군자'로 유명한 장계향이 그의 딸이다. 장흥효의 학문은 외손인 이휘일, 이현일 형제를 통해 뒷날 영남 퇴계학파의 주류를 형성했다.

먼저 1631년 새해를 맞으며 적은 글이다.

'경오년(1630년)을 보내고 신미년(1631)을 맞았으니, 악은 경오년과 함께 떠나보내고 선은 신미년과 함께 맞이하련다. 저 그윽한 산골짜기에서 벗어나 이곳 춘대(春臺)에 오르니, 요사한 안개는 걷히고 순풍이 감도는구나.

분함(忿)은 누르기를 산을 꺾듯이 하고, 욕심(慾)은 막기를 골짜기를 메우듯이 하면, 분함과 욕심이 사라지게 됨을 구름이 걷히는 가운데 해를 보듯 할 것이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바르지 못한 것들이 드러나지 못하게 되니, 사해팔황(四海八荒:천하)이 모두 나의 문(마음의 문)에 들 것이다.

이전 날에 기욕(己慾: 사욕)을 극복하지 못해 인욕(人欲)에 빠져들었더라도, 이제부터 기욕을 극복한다면 천리(天理)가 회복될 것이다. 극복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소인이 되고 군자가 될 수 있으니, 군자가 되려 한다면 반드시 기욕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금수가 되느냐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도 그 우열이 겨루어지는 바가 아주 미미한 것에서 비롯되니, 금수 되기를 면하려 한다면 어찌 조심하고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저 새들도 오히려 머물 곳을 아는데, 사람이 되어서 머물 곳을 알지 못해서야 될 것인가. 머물 곳을 알고 머물 곳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도는 큰길과 같아서 눈으로 볼 수 있고 발로 걸을 수도 있다. 만리(萬理: 모든 이치)를 밝게 보는 것도 한 번 보는 것에서 비롯되고, 천 리를 가는 것도 한 번 걷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 한 물(物)에 격(格)하고 내일 한 물을 격하며, 오늘 한 사(事)를 행하고 내일도 한 사를 행하여, 한 물을 격하는 것으로부터 만물을 격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리고 한 가지 일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만사를 행하는 데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노력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여야 비로소 군자가 됨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 말고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음은 그가 별세한 해인 1633년(계유년) 초하루에 지은 잠언이다.

'임신년(1632년) 정월 초하루를 맞아서도 잠언을 지어 스스로 삼가 조심했고, 계유년 정월 초하루를 맞아서도 잠언을 지어 스스로 조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말한 것을 실천하지 못했으니, 단지 스스로 잠언을 지어 삼가 조심하고 돌이켜서 나 자신에게 그 원인을 찾고자 해야 할 것인바, 오직 성실(誠)하고 공경(敬)해야 할 것이다. 공경하면 곧 뜻이 서고, 성실하면 곧 마음이 진실하여진다. 하지만 경하지 않으면 서지 못하고, 성하지 않으면 진실하여지지 못한다.

천리(天理)가 그쳐 없어지면 온갖 인욕(人欲)이 일어나는데, 이(理)와 욕(欲)은 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욕이 서로 다툴 때 욕이 강하고 이가 약하면, 강한 것은 날로 자라고 약한 것은 날로 없어진다. 마치 큰 손님을 만나듯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지켜나가야 맑은 들판(마음)이 벽처럼 견고해져서 사(邪)의 해를 받지 않는다.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며 기욕과 사사로움(私)을 극복하고 제거해야, 확연히 대공(大公)해져서 하늘이 맑고 땅이 평온해진다.

공자 제자인 안회와 염옹의 학문도 이같이 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엉성하고 게을러 모양을 갖추지 못한 나는 세월만 부질없이 흘려보냈도다. 늙음은 세월과 더불어 더해지고 덕은 날마다 녹아 없어지니, 학문으로써 명망(名望)이 되어 사람과 사물에 수완을 펼 수 있게 해야 하리라.

아! 우리 동지들이여, 옛것을 본받아 오늘을 삼가야 달(月)마다 달라지고 해마다 변화되어 안자(顔子)의 낙(樂)을 모름지기 이어가게 될 것이니, 이 노부가 말한 무익한 것은 배우지 말고 성현의 가르침을 배워야 할 것이다. 힘쓰기 바란다, 동지들이여.'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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