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추(桐楸) 금요단상] 올 3월 대구시향 지휘봉 내려놓는 줄리안 코바체프…대구를 사랑한 지휘자, 제2의 고향 '굿바이~'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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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3 07:55  |  수정 2023-02-03 07:56  |  발행일 2023-02-03 제33면
최근 찾은 무대서 쓸쓸해 보였던 코바체프
계약만료 통보받은 후 마음고생한 후일담
부드러운 지도력 호평…韓 귀화까지도 생각
지휘 중 쓰러져 의사 관객이 생명 구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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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코바체프 대구시향 상임지휘자가 지난달 6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그의 마지막 새해 음악회인 대구시향 2023 새해음악회 지휘를 마친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구시향 제공)

오랜만에 대구시립교향악단(대구시향) 연주회를 찾았다. 지난달 6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열린 대구시향 2023 새해음악회다. 상임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가 지휘하고, 소프라노 임선혜가 협연자로 무대에 섰다.

코바체프 지휘 연주회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날도 객석은 모두 관객으로 가득 찼다. 이날은 합창석까지 관객으로 채워져 분위기가 더욱더 좋았다.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을 시작으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중 '나 홀로 길을 걸을 때'(임선혜 협연), 슈트라우스 2세의 '피치카토 폴카' '천둥과 번개 폴카' 등이 관객의 큰 박수 속에 이어졌다.

그런데 경쾌하고 신나는 곡들을 감상하면서도 마음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1년 정도 만에 본 코바체프의 모습 때문이었다. 살이 많이 빠진 데다, 웃는 모습이지만 예전보다는 활기가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지휘를 마친 후 잠시 무대를 빠져나갈 때는 어깨가 구부러진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훌쩍 늙어버린 듯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싶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대구시향 관계자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들었다. 몸이 아팠던 일은 없고, 얼마 전 오는 3월 말로 끝나는 대구시향 지휘 계약 기간 만료를 끝으로 대구시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을 통보받고,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는 대구시향을 오래도록 지휘하고 싶고, 대구에 계속 살면서 생을 마쳐도 좋다는 생각이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렇지만 대구시향 지휘자 생활을 언젠가 그만두어야 함을 생각했을 텐데, 그런 통보를 받았다고 일흔을 앞둔 나이(68세)인데도 마음을 추스르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 드물게 마음이 여린 사람인 것 같다.

2014년 4월 취임한 코바체프는 부드러운 지도력으로 처음부터 대구시향 단원들과 호흡을 잘 맞춰 나갔다. 호감을 주는 언행으로 관객의 마음도 빠르게 얻어갔다. 대구시민회관을 개축해 콘서트 전용홀로 2013년 11월 재개관한 대구콘서트하우스의 연주홀은 음향 상태 등이 좋아 세계적 연주자나 지휘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것이 어우러져 코바체프가 지휘하는 대구시향 연주회는 객석 매진 기록을 이어갔다. 다른 도시 시향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대구 생활에 대해서도 좋은 인상을 수시로 표현하곤 했다. 매운 대구 음식도 입맛에 맞고, 시민이 인정이 많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대구가 고향 같다는 말도 종종 했다.

그런 코바체프에게 이 같은 인연이 짧게 끝날 뻔한 일이 일어났다. 2015년 5월29일에 열린 대구시향 정기연주회 때 앙코르곡을 지휘하다 쓰러져 버린 것이다. 직접 한국말로 '사랑의 인사'(엘가 곡)를 들려주겠다고 말한 뒤 지휘를 시작한 그는 몇 분 후 고목 나무가 쓰러지듯이 옆으로 쓰러졌다. 천만다행으로 관객 중에 의사와 소방관 등이 있어 이들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돼 심장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건강을 되찾았다. 의사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와 관련, 당시 대구시향을 담당하던 나에게 '대구는 천사들이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천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귀화까지 생각하고 절차를 알아보다, 한국어 시험 통과 문제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다. 대구시향과 대구에 대한 이 같은 각별한 사랑과 인연에 힘입어 그는 수차례 연임하면서 만 9년 동안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지휘할 정기연주회는 1회 남아있는 모양이다.

1964년에 출범한 대구시향은 그동안 10명의 지휘자가 재임했는데, 코바체프는 초대 이기홍 지휘자(15년 재임)를 제외하고는 최장기간 재임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대구 클래식 팬들에게 많은 추억과 성과, 좋은 인상을 남긴 그에게 복된 앞날이 펼쳐지길 바란다. 그리고 대구시향도 그가 쏟은 정성과 사랑을 토대로 한 단계 더 발전해 대구시민의 박수를 더 많이 받는 교향악단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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