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공동 주택에서 사는 일

  •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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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3 06:50  |  수정 2024-02-13 06:55  |  발행일 2024-02-1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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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얼마 전 한 지인이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층간소음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지인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삶의 여러 영역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사일런트'라는 장치를 부착했다고 한다. 사일런트 장치는 피아노 소리를 이어폰에 가둬 밖에서는 들리지 않게 해준다. 문제는 소리의 성격은 디지털로 변하지만 진짜 디지털이 아니기에 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고 한다. 심지어 사일런트 장치를 끄고 피아노를 치면 건반 몇 개가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피아노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인격체를 지닌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 그가 피아노를 그렇게 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소음에 주의하며 층간소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거주 공간에 따른 사물의 운명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피아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몸에 이상한 장치가 달리고 소리를 제한당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일까. 사일런트 장치를 제거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은 제 소리를 잃은 것에 대한 시위이자 침묵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닌 인간에 의해 혹은 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잠식당한 이들의 잃은 목소리로까지 생각의 흐름이 이어졌다면 비약이 심한 것일까.

피아노뿐 아니라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반려견에게 성대 수술을 시키거나 아이들이 있는 집이면 조용히 해라, 뛰지 말아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세대수가 늘면서 생활양식에도 큰 변화가 따라왔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절대적일 수 없다. 소음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 무조건 소음을 감수하라고, 공동 주택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웃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소음을 일으키는 것 또한 당연히 옳지 못하다.

층간소음에 대한 이슈가 하루가 멀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만 벗어난다면 소음에 대한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머무는 공간이 아무리 본인의 사유 재산일지라도 말이다. 개인의 루틴과 휴식을 방해할 수 있는 존재가 타인이라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다만,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마저 듣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어쩌면 그 소리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외면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철저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에서도 제한당하는 소리는 없는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동시에 내가 침묵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그것은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한다.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가 의심되어도 신고로 쉽게 이어지지 않거나 고독사 등 이웃에 대한 무관심도 여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다.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어린 아기나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몰이해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상을 방해하는 층간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나 우려보다 큰 소리에 묻힌 소리는 없는지, 그것을 방관하거나 무감하게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성찰 또한 조금 더 비중 있게 고려되면 좋겠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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