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경계를 넘는 힘이 필요한 시대

  •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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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4 06:57  |  수정 2024-02-14 06:58  |  발행일 2024-02-14 제26면
"AI와 철학, 기술과 인문학
달라보여도 지향점은 인간
특정영역 강화 또 다른 병폐
과학과 예술, 경제와 윤리
영역사이의 경계 허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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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필자는 IT 분야 사업을 경영하며, 동시에 프롬프트 엔지니어(Prompt Engineer)로 활동하고 있다. AI로부터 정교한 답을 이끌어 내고, 그 방법을 연구하는 신생 직업이다. 국내에서는 개념조차 생소하여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해외에서는 이미 고액 연봉 직군으로 자리 잡아 그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필자를 만나는 이마다 늘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 그런 필자의 전공이 바로 컴퓨터 공학이나 인공지능 따위가 아닌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기술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인공지능과 철학, 기술과 인문학이 표면적으로는 상이하게 보일 수 있으나, 그 지향점이 '인간'에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은 인간의 편리와 효율을 위해 발전하고,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고민한다. 다만 이렇게 기술과 인문학을 다른 범주로 분류하고 엄격히 구획하는 현상은 비교적 최근의 유산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자가 수학자나 기술자의 역할을 겸하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뉴턴의 시대까지도 과학은 '자연 철학'으로 간주되지 않았던가? 본래 인간의 지적 활동이란 이러한 경계를 설정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던 것이다.

산업혁명이 촉발한 근대의 '전문화'와 '분업화'는 기술과 인문학을 별개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렸다. 같은 현상을 두고서 이루어지던 수많은 논의가 '사실'과 '경험'에 기반하는 기술과, '가치'와 '의미'에 천착하는 인문학으로 나뉘어 버렸다. 결국 산업과 기술의 영역에서 극대화된 효율성과 이윤 추구는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한 이해를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더욱 명확해졌다. 바로 우리 시대가 마주한 병폐다. 물론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인문학적 가치를 회복하자'는 구호로 갈음하는 것은 너무 안일하고 위험하다. 특정 영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또 다른 병폐를 낳기 십상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오직 '경계로부터의 탈피'다. 기술과 인문학, 과학과 예술, 경제와 윤리, 이러한 영역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철학 전공이라는 필자의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수도 없이 경험했다. AI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문제 해결력'이다. 여기에는 그 문제가 실제로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잠재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왜'나 '어떻게'와 같은 질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알고리즘을 설계하기 위해 혹은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 또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가? 모두 인문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지점이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언어와 감정, 문화 등 복잡한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 없이 이러한 기술이 발전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에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앞서 고연봉을 받는다는 해외 프롬프트 엔지니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 역시 주로 컴퓨터 공학이나 인공지능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철학, 인문학, 심리학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필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AI를 다루는 업무를 하고, 개발을 한다는 것도 분명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계를 허물고, 그 경계를 설정하지 않고 나아가는 지혜야말로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시대의 방향이라 믿는다.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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