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죽은 링컨의 사회

  • 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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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6 06:58  |  수정 2024-02-16 06:58  |  발행일 2024-02-16 제26면
"레가툼 세계지수에 따르면
개인과 개인, 국가제도 관련
한국은 국민신뢰 매우 낮아
이러한 불신사회서 정직과
공정이란 가치는 힘을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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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업 객원논설위원

최근 중국의 국가신뢰도가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월 중국 국가통계국이 작년 GDP 성장률을 5.2%로 발표하자 외신들은 즉각 의문을 제기했다. 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투자가 9.6% 감소했고, 수출입도 0.2% 증가에 그쳤는데 5%대의 성장률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비롯한 각국 연구기관들은 알려진 대로 이미 중국의 통계를 믿지 않으며, 심지어 개발도상국이나 러시아, 파키스탄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본다.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최근 보고서에서 고질적인 신뢰 경시풍토는 "오늘날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 국가와 사회,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일반 대중 사이의 역학을 재편하고 있고 정치적 불안정, 정책 예측 불가능성, 사회적 분열, 다른 거버넌스의 도전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며, 그러한 위험은 중국식 현대화를 함정에 빠지게 한다"고 분석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그의 명저 '트러스트(Trust)'에서 한 국가의 경쟁력과 미래 발전 잠재력은 그 사회가 가진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사회 구성원이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면, 거래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줄어들고 예상치 못한 손해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도 감소한다. 반면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위험회피 비용이 항상 따른다. 그래서 법과 제도, 계약은 신뢰와 결합할 때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정부 규제 역시 신뢰부족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중국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시진핑 체제가 주창한 소위 '중국몽'대로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도하는 G2의 야심이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인구만 많은 중진국이 되느냐 기로에 서 있다. 다만 낙후된 신용체계를 바로잡고, 중국 사회 내부에 만연한 고질적인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9년 시작한 '사회 신용체계'가 개인정보보호법이 없는 중국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2023년 발표한 레가툼 세계 번영지수(Legatum Prosperity Index)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교육, 보건, 개인의 자유 등 사회 여건 전 부문에서 양호한 평가를 받고 있으나 개인과 개인의 신뢰, 국가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부문에서는 턱없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법 시스템 신뢰 지수는 167개국 중 155위에 그쳤고 정치권(114위), 정부(111위)도 경제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모두 한심한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북유럽 수준의 신뢰 자본 없이는 4%대의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저서 "불공정사회"에서 우리의 이러한 현실을 분석한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는 우리 사회는 타인을, 나아가 갈등을 조정하는 법과 제도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각자의 자기방어 본능만 남아 서로 부딪히는 초저신뢰사회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이겨야 할 경쟁 상대라고만 판단하여 존 롤스가 말하는 '공정한 협력체계'가 존립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위기상황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병적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 정치세력의 양극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번영을 선도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은 중상과 모략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정직이 가장 큰 무기라는 신념으로 평생을 일관하였다. 별명도 '어니스트 에이브(정직한 에이브)'로 정직한 지도자의 표본이 되어 지금까지 모든 정치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전설이 되고 있다. 하지만 불신사회에서 정직과 공정이란 가치는 힘을 잃는다. 지금 우리는 '죽은 링컨의 사회(Dead Lincoln society)'에 살고 있다.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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