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천일영화] 황혼의 달콤쌉싸름한 외출, '소풍'

  •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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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6 06:58  |  수정 2024-03-17 15:50  |  발행일 2024-02-16 제26면
'소풍'은 아직도 미성숙한
자녀를 어떻게 떠날것인가
염려하는 부모마음에 초점
관객 바라던 결말아니라도
온세대 공감할 이슈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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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3년 봄에 개봉한 '고령화 가족'(감독 송해성)은 3대에 걸친 평균 나이 47세의 다섯 식구를 보여준다. 비록 고령화 사회의 논쟁점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데는 실패했지만, 결혼의 새로운 풍속도나 가족 관계의 변화를 블랙코미디로 버무렸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 제목에 사용된 '고령화'라는 단어는 대담하면서도 시의적절하게 다가왔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매체에서는 한국이 인구절벽에 이어 국가소멸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이러한 시류를 반영하듯 영화계는 노년층이 마주한 불편한 현실 및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2월7일부터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김용균 감독의 '소풍'은 얼핏 명절용 가족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전까지 보아왔던 노년층 중심의 영화와 다소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그 차이는 먼저, 고향 친구이자 사돈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의 캐릭터 및 그 관계에서 기인한다. 은심은 10대 때 상경해 자수성가한, 제법 세련된 도시 할머니다. 파킨슨병의 증상으로 손이 자주 떨리고, 독한 약 때문인지 가끔 돌아가신 엄마의 환영을 보기도 하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지만 아들 내외에게는 병을 알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능한 사업가인 아들이 또다시 손을 벌리자 은심은 마음을 모질게 먹고 가출을 한다. 그래 봐야 아직 오랜 친구이자 사돈인 금순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정도지만 은심에게는 60년 만의 귀향이니 특별한 여행이기는 하다.

누군가는 이런 설정에서 기시감을 느끼고 흥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주인공들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들이 펼쳐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느 어르신들 중심의 영화와 달리 사뭇 밝고 경쾌하다. 몸이 불편할 뿐 은심과 금순이 재잘대는 목소리는 여전히 10대 소녀들의 그것처럼 들떠 있고, 고향에서 합류하게 된 동창 '태호'(박근형) 또한 그의 첫사랑 은심에게 60년 전 풋풋했던 감정들이 샘솟게 한다. 꽤 멋지게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듯한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자녀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립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풍'의 초점은 병든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자녀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미성숙한 자녀들을 어떻게 떠날 것인가 염려하는 부모님들에게 맞춰져 있다. 은심은 하나 남은 자신의 아파트까지 호시탐탐 노리는 아들이 혼자서 뭔가를 이뤄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다. 금순은 날 때부터 몸이 성치 않은 아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는 반면, 언젠가부터 삐딱해진 그의 태도에 신경이 많이 쓰이고, 마을의 리더인 태호는 가족과 이웃들이 나고 자란 땅이 리조트 사업으로 사라질까 걱정이다. 즉, 이들의 관심사는 노년의 병마에 지지 않는 것 외에 자녀들을 고생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삶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답이 없는 병마와 자녀들 때문에 치열한 나날을 보내던 금순과 은심은 마침내 결정을 내린다. 비록 모든 관객들이 바라던 결말은 아니라 하더라도 온 세대가 각자의 좌표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슈들이 밀도 있게 녹아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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