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모방 욕망과 정치 과열

  • 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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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5 06:53  |  수정 2024-03-15 06:56  |  발행일 2024-03-15 제26면
지금 우리 정치 난장판 만든
큰 원인은 국회의원의 '특권'
국민은 먹고사느라 힘든데
권력투쟁하는 정치인 보니
'정치는 4류'라는 말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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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업 객원논설위원

4·10 총선을 앞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욕설과 비난, 고발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다. 전국 254개 지역에서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무려 800여 명이 넘고, 46석의 비례대표 희망자까지 더하면 1천명이 넘는다.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은 정치예비군까지 포함하면 아마 수천 명을 넘어 다섯 자릿수가 거뜬할 것이다. 거짓말과 막말을 일삼는 정치꾼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설쳐대는 이 난장판은 국민들에게 정치란 곧 분노 유발자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가 최근 발표한 2023년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ies)' 국가로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한국, 대만을 선정했다.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인구는 세계인구의 7.8%뿐이다. 반면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는 전 세계 167개국 가운데 114위다. 경제는 2류, 정치는 4류라 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이 맞는가 싶다. 국민들은 세계로 열린 시장에서 먹고사느라 힘든데, 정치인들은 먹이 걱정 없는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서로 뜯어먹으려고 권력투쟁을 벌이는 모습이 그렇다.

지금 우리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180여 개의 엄청난 특권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의 구현이란 정치하는 목적은 지금 우리의 정치판에는 이상일 뿐이다. 보통 사람은 누릴 수 없는 특권은 곧 권력이고 체통이고 위엄이다. 자기보다 나을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권력을 꿰차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에 선망과 시기로 너도나도 정치에 입문한다.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은 왠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면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권력층의 수를 늘리면 경쟁과 갈등이 덜해질 것인가? 수요가 많으니 공급을 늘리면 시장도 안정된다는 경제원리가 작동될 것인가?

시장경제주의자는 경쟁과 갈등의 원인으로 재화의 희소성을 전제한다. 인간사회에는 모두의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화가 없기 때문에 각 개인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가격이 조정자 역할을 하여 적정한 공급을 이루어지게 한다. 개인의 이기적 욕망(수요)은 공급을 유도하고 수요가 늘면 공급도 증가하여 전체 사회의 복리를 늘린다는 것이 현대 경제학의 기본 명제다. 개인의 이기성과 탐욕, 과시적 욕망이 사회적 선이 되는 가치전도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탐욕과 이기심에 부정적인 도덕과 윤리 가치의 상실은 필연적일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여 생겨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는 이중 욕망 모방은 선망과 시기, 질투와 같은 갈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타인이 가진 권력을 향한 선망과 시기는 욕망을 낳고 이는 정치 과열이란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 갈등들은 공동체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는 폭력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르네 지라르의 시각으로 보면, 시장경제 논리는 재화의 희소성 때문에 경쟁이 발생한다고 보지만, 오히려 모방적 욕망에서 비롯한 선망과 시기, 경쟁 때문에 재화의 희소성이 생기며, 이 경쟁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본다. 경제성장은 결핍을 해소하지만, 그 해소는 얼마 안 가서 더욱 큰 결핍을 낳는다. 시장경제는 더 큰 성장을 통해 이 부정적 결과를 메우려 한다.

특권을 확산하거나 확대하면 지금의 정치 과열과 언어폭력 현상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 그것은 오로지 특권의 제거와 삶의 다양성의 존중 그리고 사회적 선을 지키려는 도덕적 가치와 이를 선택하는 국민들의 몫이다.
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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