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이윤학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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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8 07:05  |  수정 2024-03-18 07:05  |  발행일 2024-03-18 제21면

오른손 검지 손톱 밑 살점이 조금 뜯겼다.

손톱깎이가 살점을 물어뜯은 자리

분홍 피가 스며들었다.



처음엔 찔끔하고

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

한참 동안,

욱신거렸다.



누군가 뒤늦게 떠난 모양이었다.



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

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위성 안테나가 생긴 모양이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이윤학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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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시인

자신의 몸이 세상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건 시인의 생각이다. 그때 몸은 예민하리라. 따라서 민감한 몸이 이별을 먼저 알게 된다. 감정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선연하다. 수용하기 힘든 감정은 분홍 피처럼 몸에 새겨진다. 마치 "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 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새"이다. 그러기에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라는 언술은 너와의 이별을 차츰 받아들인 품새이다. 잘 받아들이거나 억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몸에 새긴다. 어떤 이별은 몸이 잊지 못하게 만든다. '너 잘 견디고 있어'라고 위로를 건네지만 커다란 이별은 슬픔에서 위로까지 모두 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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