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과학자는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합니다

  •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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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8 08:06  |  수정 2024-04-08 08:07  |  발행일 2024-04-08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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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오늘 4월21일은 '과학의 날'입니다. 그래서 매년 4월이면 다양한 과학 문화 행사가 진행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처음 과학의 날이 등장한 것은 1933년이라 합니다. 경성공전 출신 과학자 김용관이 조국 근대화와 산업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 과학기술을 부흥시키겠다는 취지로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김용관 선생님이 과학의 날을 4월19일로 정한 이유는, 그 당시 일반인에게 진화론으로 잘 알려진 찰스 다윈 박사 때문입니다. 1933년 4월19일이 다윈 박사가 세상을 떠난 지 51주년이 되는 날이라 특별히 이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럼 왜 향기박사는 4월21일을 과학의 날이라 한 것일까요? 그건 1967년 4월21일에 과학기술처가 중앙 행정기관으로 독립하였고, 1968년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가 현재 과학의 날인 4월21일로 변경하였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세계 과학의 날'은 11월10일인데 유네스코 주도로 2001년에 정해졌답니다. 그러니 '과학의 날' 역사로만 보자면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할 수 있죠. '과학의 날'의 의미는 과학의 책임 있는 이용을 강조하고, 과학과 사회를 더욱 밀접하게 연결하며, 과학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과학의 날'을 생각해낸 김용관 선생님 역시 과학대중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저변 확대와 발전으로 조국 근대화를 기대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현대와 맥을 같이 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과학의 날' 역사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국제적 선구자인데, 최근 우리나라는 이공계의 위기라 걱정합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이에 필요한 이공계 인력양성이 전폭적인 국가적 지원을 통해 진행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국가의 지원도, 학생들의 이공계에 대한 관심도, 현격히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암흑 같던 1933년, 김용관 선생님은 과학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더 많은 학생들이 과학자를 꿈꾸며 미래를 준비하고, 정부와 사회는 이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이 과학자로의 꿈을 차분히 고민하고 찾아가기에는 최근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빠릅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로의 꿈을 꾸는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페인 신경과학자, 그리고 향기박사가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 라몬 카할 교수는 그의 저서 'Advice for a Young Investigator(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에서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과학의 어떤 영역이 매우 성숙해 보인다면, 다른 분야는 발달과정에 있고 또 다른 분야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음을 명심하자."

이 말씀을 몸소 실천한 한국의 융합 의과학자이신 윤일선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윤일선 교수님은 193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버클리) 물리학과 소속인 로렌스 교수님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사이클로트론(cyclotron, 입자 가속기의 일종으로 방사선 치료에 활용됨)'이란 장비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로렌스 교수님에게 그 장비 원리와 활용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윤일선 교수님은 "뢴트겐이 X선을 발견했을 당시 아무도 이것이 의학에 기여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사이클로트론도 앞으로 의학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지 모른다"라는 꿈을 갖게 되었고, 이후 의학과 물리학을 융합한 방사선의학에 관심을 갖고, 이를 이용한 암 연구에 매진하게 됩니다. 윤일선 교수님의 꿈은 50년이 지난 1986년, 우리나라 원자력병원이 스웨덴에서 도입한 중성자 치료기로 암을 치료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이란 물리학 연구실의 장비를 보고 방사선의학을 상상한 윤일선 교수님처럼 미래 과학자가 되길 꿈꾸는 학생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신과학기술을 사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파악하고 타 분야 외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그 너머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학자란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힘들 때도 있지만, 즐겁고 보람이 상당히 큽니다. 과학의 날이나 과학의 달이 아니더라도 늘 사회와 정부가 과학자의 여정을 격려하고 지원해주는 것은 너무나 절실합니다. 윤일선 교수님의 경우처럼, 한 과학자의 꿈이 사회와 국가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남일보 독자 여러분, 이번 달은 대구국립과학관이나 향기박사가 연구하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을 방문하여 꽃구경도 하면서 자녀들과 함께 멋진 과학자로의 꿈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내시면 어떨까요?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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