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추 거문고 이야기]〈8〉줄 없는 거문고(하) 정신은 찾지 않고 껍데기만 좇을 뿐…고요함 속 찾은 깨달음의 경지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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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26 08:06  |  수정 2024-04-26 08:07  |  발행일 2024-04-26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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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1545~1611)의 '월하탄금도'(부분). 이 그림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옛말에 이르기를 거문고는 악(樂)의 으뜸이라, 군자가 항상 사용하여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군자가 아니지만 거문고 하나를 지니고 줄도 갖추지 않고서 어루만지며 즐겼더니, 어떤 손님이 이것을 보고 웃고는 다시 줄을 갖추어 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길게 혹은 짧게 타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옛날 진나라 도연명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두고 그것으로 뜻을 밝힐 뿐이었는데, 나는 이 구구한 거문고를 가지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하니 어찌 옛 사람을 본받겠는가?"

시·거문고·술을 너무나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던 이규보(1168~1241)가 남긴 내용이다. 그 역시 도연명의 무현금의 세계를 동경했음을 알 수 있다. 줄 없는 거문고 '무현금'의 세계는 이처럼 한국의 선비들에게도 깊이 스며들었다.

소리가 없음에 느끼는 오묘함 체득
귀한 줄이나 채 가져도 부질 없는 것
귀로 듣는게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
선비들에 깊이 스며든 무현금 세계

◆조선의 선비와 무현금

이규보는 도연명의 무현금 세계를 찬미하는 시를 적지 않게 남겼다. 다음은 도연명의 시에 대해 읊은 작품 '독도잠시(讀陶潛詩)'이다. 도잠(陶潛)은 도연명의 본명이다. 연명(淵明)은 도잠의 아호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연명은(吾愛陶淵明)/ 그 말이 너무도 평담하다(吐語淡而粹)/ 항상 줄 없는 거문고 어루만졌다지(常撫無絃琴)/ 그러기에 시도 모두 그렇구나(其詩一如此)/ 지극한 음률은 소리가 없는 법이니(至音本無聲)/ 무슨 줄이 필요하겠는가(何勞絃上指)/ 지극한 말은 문체가 없는 법인데(至言本無文)/ 어찌 꾸밈을 일삼으랴(安事彫鑿費)/ 자연에서 나온 그 평화로운 말들(平和出天然)/ 음미할수록 진미를 느끼네(久嚼知醇味)/ 인끈 풀고 전원에 돌아와(解印歸田園)/ 세 갈래 좁은 길 소요하면서(逍遙三徑裏)/ 술 없으면 친구 찾아가(無酒亦從人)/ 날마다 취해 쓰러졌지(頹然日日醉)/ 한 평상에 희황이 누웠으니(一榻臥羲皇)/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온다(淸風颯然至)/ 순수한 태고 시절 백성이요(熙熙太古民)/ 고상하고 뛰어난 선비로세( 卓行士)/ 그 시 읽고 그 사람 상상하며(讀詩想見人)/ 천년토록 높은 의리 숭앙하리(千載仰高義)'.

이규보의 또 다른 시 '소금(素琴)'이다. '천뢰(우주)는 처음부터 소리 없는데/ 흩어져 만규(萬竅)의 소리를 내는구나/ 오동은 본래 고요한 것이나/ 다른 힘을 빌려서 소리가 나네/ 내가 줄 없는 거문고로/ 유수(流水)곡 한 곡을 타네/ 지음(知音)이 듣기를 원하지도 않고/ 속물이 듣는 것도 꺼리지 않네/ 다만 내 마음을 쏟아/ 애오라지 한두 줄 퉁겨 보네/ 곡조가 끝나면 또 고요하게 침묵하니/ 아득히 옛사람의 뜻과 합치되네'

화담(花潭) 서경덕(1489~1456)은 '무현금명(無絃琴銘)'을 남겼다. 무현금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琴而無絃)/ 본체는 놓아두고 작용을 뺀 것이다(存體去用)/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非誠去用)/ 고요함에 움직임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靜基含動)/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聽之聲上)/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不若聽之於無聲)/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樂之刑上)/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不若樂之於無刑)/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樂之於無刑)/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乃得其)/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聽之於無聲)/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乃得其妙)/ 밖으로는 있음에서 체득하지만(外得於有)/ 안으로는 없음에서 깨닫게 된다(外得於無)/ 그 가운데에서 흥취 얻음을 생각하면(顧得趣平其中)/ 어찌 줄에 얽매이겠는가(爰有事於絃上工夫)/그 줄은 쓰지 않고(不用其絃)/ 그 줄의 줄 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用其絃絃律外官商)/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吾得其天)/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樂之以音)/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樂其音)/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音非聽之以耳)/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聽之以心)/ 저 종자기가(彼哉子期)/ 어찌 나의 거문고 소리를 귀로 들으리(曷耳吾琴)'

종자기(鍾子期·BC 387~299)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의 사람이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종자기만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종자기가 죽은 후에 백아는 지음(知音)을 잃었다고 탄식하며 거문고를 다시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전기 문신인 이영서(?~1450)가 남긴 시 '무현금(無絃琴)'이다. 여기에서도 이런 선비의 삶을 잘 읽을 수 있다. '도연명이 거문고 하나를 가졌는데(淵明自有一張琴)/ 줄을 매지 않았지만 뜻은 더욱 심오했었네(不被朱絃思轉深)/ 참된 맛을 어찌 거문고 소리로써 얻을 것인가(眞趣豈能聲上得)/ 천기란 모름지기 고요함 속에서 찾아진다네(天機須向靜中尋)/ 좋은 거문고 줄과 채는 모두 부질없는 것(鯤絃鐵撥渾閑事)/ 유수와 고산을 켰다는 악곡도 헛애만 쓴 것이네(流水高山 苦心)/ 옛 거문고 가락 속인의 귀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니(古調未應諧俗耳)/ 천년 세월이 흘러가도 그 곡조 아는 이 없으리(悠悠千載少知音)'

'곤현(鯤絃)'은 곤어(鯤魚) 가죽으로 만든 줄로, 좋은 거문고 줄을 의미한다. 곤어는 북해에 산다는 상상의 큰 물고기이다. 그리고 '철발(鐵撥)'은 쇠로 만든 채(현을 퉁기는 도구)를 말한다. 좋은 악기나 연주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리 이전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 관건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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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줄이 없는 거문고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쓸모가 없는 물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연명은 무현금 하나를 가지고 어루만지면서 심오한 뜻을 추구했다. 참다운 맛은 거문고에서 나오는 소리로 얻어지는 게 아니며, 귀한 거문고 줄이나 채를 가졌다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 백아가 아양곡을 잘 타고 종자기가 그 가락을 잘 알아들었다는 것도 헛애만 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연명이 줄 없는 거문고에서 들었던 그 곡조를 알고자 하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동양의 대표적 고전인 '채근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고작 유자서(有字書)나 읽을 줄 알았지 무자서(無字書)를 읽을 줄은 모르며, 유현금(有絃琴)이나 뜯을 줄 알았지 무현금(無絃琴)을 뜯을 줄은 모르니, 그 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쫓아다니는데 어찌 금서(琴書)의 참맛을 알 도리가 있겠는가.' 이처럼 선비들, 군자와 성인이 되고자 했던 옛 지식인들은 그들이 추구한 인격을 완성해 가는 동반자로 무현금을 가까이했던 것이다.

무현금의 세계를 추구한 것은 선비들뿐만이 아니다. 선사들, 불교 수행자들은 '몰현금(沒絃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 줄 없는 거문고라는 비유를 통해 탐진치(貪嗔痴)를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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